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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졸업을 앞둔 여대생들은 거의 자포자기 상태이다. 각 기업들의 구조조정 여파가 전체 취업준비자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고 여기에다 여학생들의 대기업 취업은 더 좁은 문이 되었다.

11월 말로 대기업 공채는 종결되었고 경력사원을 대상으로 한 상시모집도 대부분 11월 말로 사실상 끝났다.

SK텔레콤이 올해 대졸 신입사원 50명, 경력사원 100명 선에서 채용을 마쳤는데 신입사원은 80대 1, 경력사원은 18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LG텔레콤은 대졸예정자 30명과 경력사원 270명, 현대전자도 700명에 그쳤다.

정보통신과 합쳐지면서 올해 3000명을 뽑은 LG전자의 경우 신규 여성인력은 10%에 그치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 11월 16일 구조조정에 따라 기존 실직자 5만명을 포함, 신규졸업자 중 미취업자 등을 합해 내년 2월까지 13만여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각 대학들은 예년에 비해 취업설명회와 추천서가 반으로 줄어 취업대책위원회를 구성한 곳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소재 6개 여대 취업정보실은 거의 울상이다. 추천서는 아예 기대하기 어렵고 취업설명회는 몇몇 외국계 회사를 제외하고는 유치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현재 취업률이 확인된 곳은 덕성여대 한 곳뿐이다. 올해 졸업예정자 1200명 중 취업률은 20%가 채 안된 것으로 취업정보실은 전했다.

또한 여대들의 올해 취업설명회 유치는 남녀공학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화여대가 22회의 취업설명회를 가진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여대들은 5회에서 8회 정도이며 아예 정확히 언급을 회피하는 곳도 있었다.

여대 취업정보실의 공통된 얘기는 대기업 취업설명회 유치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는 점이다. 서울여대 취업봉사실 박범신씨에 따르면 “예년에는 추천서도 많이 들어왔지만 올해는 구경하기조차 힘들다. 지난 9월부터 대기업 취업설명회를 유치했지만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남녀공학이나 유명대학은 기업체가 먼저 요청하지만 여대의 경우에는 애써 부탁해야 하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덕성여대 취업정보실 김승규씨도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하긴 힘들다”고 털어놓으면서 “기업체 취업설명회보다 공무원 자격증 취득이나 첨단 직종 소개, 창업 강좌, 면접요령 등을 전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3073명이 올해 졸업을 앞두고 있는 이화여대 표경희 취업정보센터 실장도 “남학생들이 있는 대학은 대기업이 자청해서 취업·채용설명회를 갖지만 여대는 교섭 단계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사실 남녀공학에서 이루어지는 취업설명회의 경우 장소제공 차원에 그치는 경우도 많아 얼마나 실제 취업과 연결되는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여대의 경우 그나마 외국계 기업에서는 전산이나 어문계열 전공자를 찾기도 한다.

노동부는 신규 졸업자 3만명 중 9000명의 대졸여성에 대한 취업지원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예비졸업생들은 지원 여부를 전혀 피부로 느끼고 있지 못하다.

박세령(이화여대 경영학과 96학번)씨는 지금까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합쳐 33곳에 응시했지만 취업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처음에는 여행사나 항공사쪽으로 관심을 가졌지만 지금은 그마저 포기한 상태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학교로 들어온 추천에 의해 특채로 응시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작년에는 그나마 주변에서 취직했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대기업 공채 입사소식도 들렸지만 올해는 아예 없었다고 한다.

이정현(서강대 경영학과 94학번)씨는 철학에서 경영으로 전공을 바꿨다. 기업체 취직을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대기업과 외국계기업 50군데에 원서를 냈지만 여성과 26세라는 나이때문에 기업체에서는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휴학기간에는 9개월동안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등 그동안 학창시절을 거의 취업준비로 보냈다. 쏟아부은 돈만도 엄청나다고 털어놓는다.

대기업 도전에 번번히 실패하는 여학생들에게 일부 선배들이 내놓은 대안이라는 것이 대기업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충고인 점도 문제이다. 대기업을 선호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취재에 응한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그래도 첫 직장은 대기업에 시작하는 것이 안정적이다”라는 생각이 강하다. 나중에 중소기업으로 옮길지언정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은 대기업이라는 생각이 확고하다. 이들에게 대기업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이니 포기하라는 것은 대안도 충고도 될 수 없다.

취업을 준비하는 여학생들을 더 불안하게 하는 것은 대기업에 응시했다 실패한 경험자들 입에서 나온 기막힌 소식들이다.

박세령씨는 “D증권사의 경우 100명 중 여성은 단 3명 뿐이었다고 한다. 또 모 대기업에서는 공식적으로 입사원서를 받았는데도 아예 남성들 원서만 추리고 여성들은 배제했으며 그나마 든든한 백이 있는 일부 여성들만 선택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 이 회사는 계열사별로 커트라인이 달랐는데 커트라인에 걸려 있는 사람들 중 남성들에게만 전화를 걸어 다른 계열에 응모할 것을 권유했다는 말을 듣고 친구들끼리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한 광고회사를 지원한 박 아무개씨는 응시했다 떨어진 D기획에 확인전화를 걸자 노골적으로 이번에는 남자사원만 뽑았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기업체에서는 여성인력 중시를 내세우며 신규채용을 확대하겠다는 것을 기업 이미지 제고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경기한파만 닥치면 여성응시자들을 아예 외면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들을 채용했을 때의 비용부담을 들어 은근히 배제하는 경향도 짙다. 지난 11월 20일 경영자총협회에서 모성보호관련 입법방향에 대한 경영계 입장을 발표한 것을 보면 기업체에서 여성들을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는지 알 수가 있다.

경총은 “모성보호 관련 법안이 여성표를 의식한 채 진행되고 있다”며 “유급생리휴가제도를 둔 채 산전산후 휴가 확대, 태아검진 휴가, 출산과 사산 휴가, 육아휴직급여, 가족간호휴직제 등이 신설되는 것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도 없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9월에도 경총은 남녀차별개선위원회 신설을 골자로 한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 개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국회에 제출했다. 표면적으로는 위원구성방식에 문제제기를 했지만 결국 남녀차별금지법이 기업의 인사, 노무 등 경영전반에 미칠 영향이 싫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여성의 출산을 자원 재생산의 사회적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로 여기는 기업체 의식이 굳건한 이상 여성의 사회진출은 근본적으로 막힐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기한파나 기업 구조조정 사태만 나오면 그 피해를 여성들이 고스란히 떠안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삼성전자에 근무하는 이아무개씨는 “95년도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대졸여사원을 대규모 채용했다. 이 때 입사한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우수한 성적과 뛰어난 업무능력을 인정받았지만 현재까지 남아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결혼 후 대부분 직장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출산이나 육아 등의 장벽에 막혀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장을 떠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후로 대규모 여성채용은 지속되지 않았다. 결국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는 것이 문제”라는 말을 남겼다.

박정 희경 기자 chkyu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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