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여성의 일상적인 경험은 남성들의 편견을 그대로 수용해 남성의 시각에 의해 구성되어 있는 게 대부분이다. 이에 새롭게 여성의 일상생활을 뒤집어 여성의 시각으로 재구성해 보고자 한다. 3회에 걸쳐 여성들의 일상용품인 생리대 이야기, 산부인과 출입, 화장실 문화에 대해 발상전환과 여성중심적 문제제기를 통해 일상으로부터의 변화를 모색하기로 한다. <편집자주>

-싣는 순서-

1. 생리대 이야기(601호)

2. 산부인과 출입(602호)

3. 화장실 문화(6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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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리대 이야기

▶'그거’에서 당당한 ‘생필품’으로

▶'깨끗 ·편리함' 주술을 풀어라

▶생리대 어떻게 발명됐을까

▶월경·생리대와 관련한 대안 사이트

‘그거’에서 당당한 ‘생필품’으로

여성은 일생의 1/8이 생리중

여성은 일생 중에 대략 1/8을 월경을 한다. 그만큼 월경은 여성에게 중요한 일상적 경험이고, 생리대는 그 경험에서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다. 그럼에도 월경은 여성들만의 은밀한 부끄러움이었고, 생리대는 다른 사람 눈에 띄면 절대 안되는 흉한 물건이었다.

여기에 미국의 글로리아 스타이넘(페미니스트잡지 <미즈> 초대편집장)은 “만약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라는 발칙한 상상과 반전, 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던졌다.

그는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월경이란 부럽고도 자랑할 만한 남성적인 일이 될 것이고, 의회는 국립월경불순연구소에 기금을 조성할 것이며,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는 생리통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할 것이고, 생리대는 연방정부가 무료로 배포할 것이다”라면서,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경험이 사소하게 치부되거나 부정적으로 이야기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역설적으로 설명했다. 이처럼 여성의 경험을 재해석하고 긍정하는 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도 스타이넘의 글이 주는 교훈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움직임들이 일어났다. 금기시했던 월경을 세상에 드러내고 부정적 이미지를 긍정적 이미지로 바꾸는 첫 시도가 바로 월경페스티벌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월경페스티벌의 기획을 맡은 여성문화기획팀 불턱의 황시현씨(23)는 “지금까지 월경하는 것을 입 밖에 내지 못하고‘그날’이라고 하거나 생리대를 ‘그거’라고 지칭할 수밖에 없는 문화였다”며, 이제는 월경의 경험을 드러내고 긍정하면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 행사의 목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월경을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인 것으로 바꿔놓는 인식의 전환이 시작됐다면, 그 다음은 구체적으로 여성의 일상에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가 남아있다. 바로 그것이 생리대에 주목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생리대 발명은 피임약 발명만큼 여성사에서 또하나의 큰 발명이었다. 우리 나라에서 생리대가 처음 생산, 판매된 것은 1971년이다. 그 전까지는 직접 광목이나 소창을 떠다가 기저귀를 만들어 사용했다. 주부 김혜숙씨(55·강남구 논현동)는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남자 가족들의 눈에 띄지 않게 피묻은 기저귀를 모아놨다가 삶아 빨아서 햇볕에 말리고...월경이 시작되면 그야말로 중노동이었어요.”

그에 비해 일회용 생리대는 여성에게 큰 편리함을 제공했다. 외국에서 생리대가 발명, 판매된 건 1920년대였는데 비해, 우리 나라에서 생리대가 판매되기 시작한 건 산업발달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비로소 소비자로서 구매력을 갖기 시작한 70년대부터였다.

이제는 아주 흔한 소비재가 됐지만, 텔레비전에서 생리대 광고를 볼 수 있게 된 것도 95년부터다. 당시 텔레비전 광고 심의기관이었던 방송위원회 한 관계자에 의하며 95년 방송광고심의규정이 개정되기 전까지 생리대는 혐오감을 줄 수 있는 품목으로 분류하여 방송 광고를 금지했다는 것이다. 생리대는 여성에게 분명 편리함을 주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생리대에 불만이 많다. 전문가들의 얘기도 과연 현재 생리대가 여성의 삶이나 욕구를 고려해서 디자인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과 몸에 관해 연구하고 있는 한설아씨(이화여대 여성학 박사과정)는 “피임약과 마찬가지로 생리대가 여성에게 이로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피임약이 자본에 의해 여성의 건강과 무관하게 사용되고 개발되는 문제점이 드러났던 것처럼, 생리대 역시 여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본과 가부장적 논리에 이용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여성들에겐 탐폰형 생리대가 낯설다. 국내에서 탐폰형 생리대 제조업체가 한 곳인 것도 그만큼 수요가 없다는 증거다. 이혜경씨(42·회사원)는 결혼후 출산을 하고 나서야 탐폰형을 쓰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 우리 나라는 처녀가 질에 이물질을 넣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순결이데올로기나 처녀막 신화가 거의 없는 미국 등은 다르다. 미국에서 생활한 지 10년된 오수경씨(위스콘신주 거주)는 미국 여성들은 패드형보다 탐폰을 훨씬 많이 쓰고 있다고 전한다. 생리혈이 흐르지 않는다는 점과 수영이나 자전거를 타는 등 운동시 활동성을 고려해서 탐폰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 성상담소 권수현 연구부장은 “생리대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활동성인데도, 처녀막 손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탐폰형 생리대를 꺼리거나 생리대 광고에서 깨끗함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생리대 선택조차 우리 사회 여성의 자아관과 얼마나 연결이 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여성들이 생리대에 갖는 주된 불만은 가격 문제이다. 가장 싼 제품도 3천원 이상은 가고 비싸게는 5천원을 넘는 것도 있다. 한 달에 4∼7일간 사용하는 생리대 양을 생각하면 만만찮은 비용인데, 생리대 업체들은 계속해서 기술발전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고 있다.

영페미니스트 웹진 언니네의 이현옥씨는 “정부에 대해서는 생리대를 무상지급하라고까지는 요구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부가가치세는 면제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미네소타주에서 살다 온 한 친구에게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그 주에선 생리대에 세금을 면제해 주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 생리대 업체들은 매번 가격을 올리고 있지만, 질의 차이는 거의 느끼지 못한다.”

또 그는 전적으로 여성들 덕에 돈을 벌고 있는 생리대 업체들은 여성들을 위해 그 돈의 일부를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업체들은 제품 개발을 위한 투자비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도 극비에 붙이고 있고, 여성 전용품 업체이면서도 여성복지와 관련한 사회환원에 나서는 업체도 전혀 없어, 이는 앞으로 여성들이 강하게 요구해야 할 부분이다.

국민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여성건강은 중요한 문제다. 그렇다면 생리대가 여성의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세밀히 연구하고 인체구조와 건강에 최적인 생리대 개발을 위해 국가에서 연구비를 지원할 수는 없을까?

지원 가능한 기금은 국민건강증진기금과 여성발전기금이다.

국민건강과 관련한 조사, 연구 등을 지원하도록 되어 있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은 올해 모유수유 촉진 홍보사업에 지원한 것 외에는 여성보건과 관련한 연구사업에는 기금 지원이 없었다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기금 관리부처인 복지부 건강증진과 관계자는 여성보건은 여성보건복지과 소관이라고 딱 잘라 말했지만, 사실 여성보건복지과의 주업무는 가임여성과 영유아 대상의 질병과 관련한 업무로 일반예산을 통해 보건소에서 주로 집행하고 있는 실정이라 연구사업은 엄두도 못 낸다는 게 담당자의 말이었다.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관리중인 여성발전기금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여성정책 개발이나 연구비 지원보다는 여성단체 지원에 주로 사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여성건강과 관련한 연구를 전담하는 국가 연구기관도 없다. 국무총리 산하의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이와 관련한 연구를 일부 하고 있지만, 연구주제도 지금까지 대부분 모성과 관련된 것이었다는 게 관계자들 얘기다.

스타이넘의 상상이 현실에서,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일어날 수 있는 날이 언제 올까. 모든 여성들의 바람일 것이다.

이김 정희 기자 jhle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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