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아 마라이니는?

“약자에 대한 부당함과의 싸움, 나의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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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이며, 이탈리아의 대표적 페미니스트인 다치아 마라이니가 이탈리아 문화원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마라이니는 8일 이화여대, 10일 한국 외국어대 특강을 가졌다. 그를 만나 그의 문학관, 생활관, 여성관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 한국방문 이후 모스크바로 간다고 들었는데.

“두달 전 나의 세 번째 작품 번역 출판기념회가 있어 중국에 다녀왔다. 그리고 한국에 오기 바로 전에는 뉴욕 워싱턴에 있었다. 한국에서의 1주일 체류가 끝나면 모스크바로 바로 갈 예정이다.”

- 예순이 넘은 나이인데 힘들지 않나.

“워낙 건강한 체력을 물려받았다. 부모님도 여든이 넘으셨는데 두 분 모두 살아 계시고 여전히 글을 쓰며 활동하신다. 부모님 여행 중에 태어나서인지 여행이 곧 나의 삶이다. 다른 나라의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는 즐거움이 피곤함을 잊게 하며 활력을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 소멸해 가는 아이누족을 연구하던 인류학자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갔다 수용소에 수감된 적도 있다는데.

“당시 2차대전 중이었는데 독일,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은 일본 정부는 부모님에게 일본지지 서명을 요구했고, 이를 거절하자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도쿄의 한 수용소에 수감했다. 나와 두 여동생도 함께 갇혀있었는데, 그때 고통스런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어머니는 화가였고 아버지는 인류학자로, 할머니는 작가로 평생 글을 쓰셨다. 그런 재능이 나에게도 이어져 자연스럽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재능도 열정이 있어야 이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열정이 없었으면 금새 포기했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건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작품을 쓰면 누군가 비평을 하기 마련인데,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상처받고 용기를 잃기도 했지만, 열정이 있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 94년 시빌라 알레라모상을 수상한 <외침들>이란 작품이 추리소설이라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인가.

“방송기자인 여주인공이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웃 사람이 살해당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리고 호기심에 이 사건을 개인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한다. 제목(voci, 목소리)은 이 여주인공이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일일이 녹음하는 데서 따온 것이다. 나중에 죽은 여자가 근친에 의해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하다 살해당한 사실이 밝혀진다. 대개 성폭행은 주변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는 것을 이슈화시키고 싶었다. 이 작품은 이태리에서 많은 독자에게 읽혔고, 영화로 제작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독일에서도 10만 부 이상 팔렸다.”

- 사회고발성 소설을 많이 쓰면서 여론을 모으는 데도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93년에 출판한 <바게리아>는 불법건축, 부실공사 등을 다룬 작품이다. 이 사건을 취재하고 소설로 쓰기로 결심한 나는 실명을 그대로 썼고, 사회적으로 문제되어 검사가 수사한 결과 문제의 장본인에게 실형 3년이 선고되었다. 또 <외침들>이란 작품도 아동성폭력과 여성 성학대에 관한 책으로 출간 당시에도 화제가 됐지만, 최근 이태리에서 알바니아에서 온 8살 먹은 아이를 남자들이 성폭행 하고 죽인 사건이 일어난 후 마이너리티의 인권문제로 떠오르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 대중적 사랑과 평단의 지지를 받으며 성공한 <불안한 시기>, <마리안나 우크리아의 긴 인생여정> 등을 보면 여성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지는데, 특별히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여성문제 뿐 아니라 모든 부당함에 대해 고발하고 바로잡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 믿고 있다. 오랫동안 교도소를 방문하며 재소자들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집 없는 사람이나 병원 갈 돈이 없는 환자들, 그렇게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면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지만 모두 같은 조건으로 태어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존중받지 못한다. 나의 사명은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고 이슈화하여 세상이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 한국에서는 ‘페미니스트’란 용어가 나쁜 여자를 에둘러 말하는 부정적인 어휘로 사용되어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것을 꺼려하는 여성이 많은데,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부르는 데 거부감 없나.

“1968년 ‘브라 화형’을 비롯하여 여성운동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을 때와 지금은 많이 다른 것 같다. 페미니스트가 진보적 의미로 사용된 것은 80년대 중반까지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나는 어떤 호칭으로 불려도 좋다. 여성의 권익을 옹호하고 세상을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어떤 실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라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내는 것도 한 방법 아닐까.”

- 현재 이탈리아 여성의 지위는 어떤가.

“10년 전만 해도 모든 가장이 권한을 가지는 불평등한 법이 있었지만, 지금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남녀가 동등한 지위를 확보했다. 그러나 여전히 남성우월적 관습이 공고해 법적으로는 동일임금을 명시했어도 실제로는 여성이 같은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절반밖에 받지 못한다. 그리고 의사는 남자, 간호사는 여자와 같은 식으로 중요한 요직은 다 남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 대학에 여학생이 많이 늘었고, 과학 기술 분야 등 전통적으로 남성 분야라고 인식돼왔던 분야에 젊은 여성의 진출이 늘고 있는 현상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지만 여전히 맞벌이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면 여자가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전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현재 한국에서는 호주제폐지운동에 여성계가 힘을 모으고 있다. 이탈리아 여성운동의 현안은 무엇인가.

“일하는 여성이 가사와 육아를 떠맡으면서 겪는 이중고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탈리아 북부의 기혼여성 중 30%가 맞벌이 부부인데 남편들은 대개 가사분담에 비협조적이다. 결국 여자만 두 배로 일하는 셈이다. 간혹 남자가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려하는 사람이 있는데, 주변에서 손가락질한다. 그래도 예전에는 남자가 집에 오면 손가락 까딱하지 않는걸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조금 미안해하는 것 같다.”

- 당신이 운영했던 막달레나 극장에 대해 얘기해달라.

“1973년 처음 소극장을 열었을 때만 해도 작가며 연출, 스탭 등이 다 남자였다. 이 극장은 여성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만인을 위한 공간이었다. 78년에 <한 창녀의 고백>을 올렸는데 대단한 인기를 모아 브뤼셀을 시작으로 파리, 런던 등 구미 14개국에서 공연했다. 18년 동안 운영했는데, 점차 연출, 조명을 비롯한 스탭이 거의 여자들로 대체됐다. 그래서 이 극장은 여성연극인을 배출한 학교로 인정받고 있다.”

- 최근 인터넷을 비롯하여 e-북 등 매체환경이 바뀌며 종이책의 운명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펴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책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책을 만드는 종이는 나무에서 온 것으로 책은 곧 자연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연과 몸이 만나는 것이다. 글이 없었을 땐 입에서 입으로 전달했지만, 글이 발명된 뒤에는 모든 것이 문자로 기록되고 전해진다. 글이 있는 한 책도 영원하리라 본다.”

- 사적인 질문이지만, 최근 젊은 애인과 사귄다고 들었다.

“첫 번째 소설 <휴가>를 쓴 후 화가와 결혼했지만, 4년 후 이혼했다. 그리고 시도 쓰고 연극에 몰두하며 다른 작가들과 극단을 창단하여 활동했을 무렵에는 평생의 애인이자 후원자가 된 알베르토 모라비아를 만나 70년대까지 함께 생활했다. 지금은 연하의 바이올리니스트와 살고 있다. 아이도 있지만 항상 곁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 글을 쓰는 목적, 혹은 당신의 문학관에 대해 말해달라. 그리고 다음 작품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차후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어떤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데, 미리 계획을 세운들 무엇하겠나. 분명한 건 앞으로도 부조리한 사회와 투쟁하겠다는 내 의지다. 얼마 전에도 낙태문제로 논쟁을 벌인 일이 있는데, 왜 낙태를 못하게 하나. 강간 당해 임신하면 어쩔건가. 그게 왜 여자의 운명으로 돌려져야 하는가. 내 생이 다할 때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부당함과 부조리에 대해 지속적으로 사회 이슈화할 것이다. 그게 내 소명이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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