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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록색 꿈의 도시 엘비시티 메인화면.

레즈비언(여성동성애자)을 위한 도시가 떴다. 이 도시의 이름은 엘비시티(www.lbcity.com). 엘비시티에 접속하면 “ARE YOU 레즈?”라고 묻는 배너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로그인을 하는 당신은 이 도시에서 청록색 꿈을 펼칠 준비가 된 것이다.

‘여성 이반(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이성애를 제외한 성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통칭하는 용어)의 민주도시’엘비시티는 자칭 ‘한국 레즈비언 역사에 대한 불타는 역사적 사명감을 가진’ 여성들에 의해 개척됐다. 해솔, 산하, 포비, 온빙이 그 주인공이다. 작년 겨울 레즈비언 인터넷방송을 기획한 것이 출발이었으니 엘비시티가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9월 16일까지 근 일년여 간의 노력이 있었던 셈이다.

“우리가 살고픈 대안적인 삶의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것이 도시개척자들의 포부다. “여성으로서의 삶도 힘들지만 레즈비언으로서의 삶은 더더욱 힘들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구현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레즈비언 문화와 공동체를 사이버에서 만들어보기로 했다”고. 도시건설의 출발은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졌지만, 그것이 실제 레즈비언들의 삶에 힘을 주고 토대가 되어주길 희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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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엘비시티 방송국.

현재 사이버 공간에서의 한국 레즈비언 사이트 지형은 인권모임 ‘끼리끼리’(user.chollian.net/∼kiri9411), 대구경북 모임 와이낫의 ‘바운드’(my.netian. com/∼whynot79), 부산 인권운동단체 ‘안전지대’(myhome.thrunet.com/∼crow9) 등 오프활동을 중심으로 한 단체사이트와 ‘버디’(www.buddy79.com), ‘니아까’(niagga.com.ne.kr), ‘또다른세상’(user.chollian.net/∼ttose) 등 잡지를 기반으로 형성된 사이트들, 그리고 ‘비주얼퀴어우먼’(members.tripod. lycos.co.kr/VQWROOM), ‘할미꽃’(halmikot.com.ne.kr) 등 문화사이트들과 그 외 개인사이트들이 있다. 또 온라인 레즈비언 공동체를 지향하는 ‘탱크걸’(www.tgnet.co.kr)과 게시판 활동을 위주로 하는 레즈비언 사이버 까페들이 늘고 있다.

이 중 탱크걸은 공동체 지향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엘비시티와 비슷하지만, 친목만이 아니라 실제 삶의 방식에 가상 공동체를 적용시키겠다는 점에서 엘비시티의 성격은 보다 적극적이다. 또한 엘비시티는 장기적으로 경제적 독립도 고려하고 있다. 도시개척자들이 엘비시티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는 것은 열악한 경제적 여건이다. 현재 도시 운영을 맡고 있는 십여 명의 여성들 대부분 따로 직장을 가지고 있다. 레즈비언 여성들을 소비의 주체로 생각지 않는 기업들이 광고주가 되어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익창출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엘비시티 시민이 될 사람들이 아주 소수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시민의 힘이 커지면 그 영향력도 강해져 경제력을 가질 수 있다. 엘비시티를 통해 레즈비언의 수익모델을 제시하고 싶다.” 이 말을 뒷받침하듯 엘비시티는 아직 본격적인 홍보에 나서지 않았음에도 한 달만에 1천명의 시민을 확보했다.

엘비시티에 들어선 이들은 “성정체성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성, 학력, 나이, 종교, 정치, 문화 등 자신과 다름으로 인한 차별적 행동과 언행을 하지 않는다”는 엘비시티 헌법에 명시된 시민의 권리와 의무에 동의하고 시민권을 얻는다. 시민들은 도시의 커뮤니티, 도서관, 아크로폴리스, 방송국, 그리고 동사무소와 경찰청을 이용할 수 있다.

엘비시티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건 커뮤니티, 까페, 채팅 등을 통한 레즈비언 네트워킹이다. 시민들은 커뮤니티를 통해 누구나 원하는 마을을 만들 수 있고, 같은 마을에 살기 원하는 이들과 그 마을의 특성을 살려 가꾸거나 변경할 수 있다. 힙합마을, 애견마을,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을, 청소년 이반마을, 갬블러들의 마을, 그리고 이반을 받아들이는 일반(이성애자)의 마을도 있다.

또 아크로폴리스에선 엘비시티에 바라는 것, 레즈비언바에 대한 의견수렴, 홍석천씨의 커밍아웃을 다루는 언론에 대한 논의, 트랜스젠더의 성정체성 고민과 같은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현재 레즈비언의 도시에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동네는 방송국이다. 한 주에 한 가지씩 주제를 잡아 페미니스트 레즈비언 문화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들려주는 ‘테마파크’, 레즈비언의 성과 커밍아웃 경험자들의 커밍아웃 이후의 이야기를 솔직한 대화로 풀어간 ‘리얼토크’, 멋진 여성이반을 섭외해 인터뷰를 하며 끼를 펼치는 ‘난장쇼’ 등이 방송된다. 특히 레즈비언에 관한 짧은 인터뷰 ‘아워보이스’에선 공동체의 다양한 생각들을 담아낸다. “한국에 레즈비언 전용타운이 생긴다면 어떤 가게를 차리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 대해 “예술가들의 문학살롱”, “레즈비언 전용 스포츠센터”,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들의 공간”, “레즈비언 커플들의 사진을 찍는 웨딩포토샵” 등의 답변으로 엘비시티 시민들의 생각과 욕망을 읽어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시민들은 여성이반에 관한 문화·학술·기사 등을 제공하는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고, 스팸메일과 욕설 등의 피해를 입히는 시민에 대해선 경찰청에 신고해 시민권을 박탈할 수 있다.

도시개척자들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엘비시티는 무엇보다 대안적 공동체를 지향한다. 아직 건설중인 ‘동사무소’가 그 중요한 역할을 매개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동네다. 사이버에서 생활공동체를 꾸리고, 마을간의 연대를 도모하는 동사무소는 가능한 현실과 가깝게 구성할 예정이다. 개척자들 사이에선 공동체를 통해 레즈비언 문화그룹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도 비친다. 문화 활동의 장을 엘비시티가 제공해 레즈비언 문화운동을 지원하고 싶다는 것.

오늘도 ‘내가 꿈꾸는 도시’ 엘비시티는 사회에서 소수자인 여성, 그 중에서도 소수자인 레즈비언의 당당한 삶을 뒷받침해 줄 사이버 도시로 성장해가고 있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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