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들, 이번엔 여성주의 예술에 ‘딴지’

~1-아방궁.jpg

◀‘종묘시민공원 미술전 폭력저지사태 관련 표현의 자유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고 유림 등 폭력세력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사진 권우성 woosung@kngo.net>

지난 9월29일부터 사흘간 종묘시민공원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여성 아티스트 그룹 ‘입김’의 <아방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가 전주리씨대동종약원 등 유림들의 폭력행사로 무산되어 물의를 빚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여성단체연합, 여성문화예술기획, 참여연대 등 20여 개 시민단체는 ‘종묘시민공원 미술전 폭력저지사태 관련 표현의 자유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10월4일 기자회견을 열어 “성차별주의에 근거하여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파괴하는 폭력행위를 규탄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번 사태의 장본인인 전주리씨대동종약원을 비롯한 폭력세력에 대해 “자신들의 행위의 불법성과 폭력성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작가 그룹과 전시관련자들에게 공개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이 같은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검찰고발을 불사하겠다고 표명했다. ‘입김’측도 “동일 장소에서 반드시 전시를 관철시키겠다”면서 이번 사태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기록으로 남기는 등 새로운 방식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입김’에 따르면 유림세력은 사태 전후 계속적으로 작가들의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어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다.

2000년 새로운 예술의 해 미술축제의 하나로 선정된 ‘아방궁(아름답고 방자한 자궁) 프로젝트’는 가부장적 유교문화의 엄숙주의를 해체하기 위해 종묘 앞 종묘시민공원을 생명과 탄생을 관장하는 ‘자궁’으로 탈바꿈시켜 사물화된 여성의 몸에 새로운 시선을 부여하고자 기획한 전시 이벤트. 전시작 대부분이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설치물이다.

전시 이틀 전인 9월27일 종묘시민공원에서 작품을 설치하던 ‘입김’측은 ‘종묘점거’라는 제목의 한 신문기사를 읽고 발끈한 전주 이씨 종친회 측으로부터 “행사 장소를 바꾸어라. 그렇지 않을 시는 어떠한 무력행사로도 이 축제를 저지하겠다”는 일방적인 통고를 받았다. 그러나 이미 6개월 전 행사 기획 단계에서부터 종묘공원을 선정해 현장 구도를 짰던 ‘입김’은 종로경찰서에 신변보호 요청을 하고 계획대로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29일 전시 당일, ‘입김’은 아침 7시부터 모여 설치 등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9시부터 전주이씨 종친회 500여 명이 들이닥쳐 설치작품을 뜯어내며 행사를 중지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작가들이 작품을 갖고 이동하자 계속 따라다니며 몸싸움을 벌이며 작품을 뜯어내고 발로 차며 훼손하는 것은 물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성적인 폭언(‘가랭이 찢어죽일 년들’, ‘네년들 거 보여주지’, ‘588에서 온 년들이지’, ‘이 작품을 보니 남자놈들 거 많이 들락거렸겠군’…)을 퍼붓기도 했다. “근엄한 종묘를 더러운 자궁으로 더럽히고 있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종묘공원을 치마 형태의 깃발로 장식한 상징물들이 찢겨지고 설치물 여러 개가 파손됐고 몇 작품은 전주 이씨 종친회측에 탈취 당했다. 이어 작가들은 대책을 논의했으나 이미 많은 작품이 훼손되고 지속되는 무력행사와 확성기를 이용한 성명서 발표로 행사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오후 3시에 철수해야만 했다. 신변보호를 위해 나온 경찰들도 유림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뒤로 빠졌고, 장소 사용 허가를 내주었던 구청당국은 주변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로운 설치를 허용했던 당초 입장을 번복하여 폭력세력의 요구에 따라 나무에 걸어놓은 작품들을 새삼스레 환경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철거를 돕거나 방관했다.

@1-아방궁1.jpg

이에 대해 여성단체연합 황금명륜 기획부국장은 “호주제폐지 관련 공청회 방해 등 그간 빈번히 있어왔던 이런 종류의 폭력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면서 사과 이전에 고소 고발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여성민우회 김상희 공동대표도 “여성들의 생명성을 그려내는 시도를 불결하다 하는 남성들의 테러적 행위는 여전히 가부장주의자가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큰 세력임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폭력적인 행위가 과연 전통을 지키는 행위인지 묻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전시의 기획 주체인 2000 새로운미술의 해 박우정 사무국장은 “처음 이

전시 프로젝트를 심사할 때는 전시 공간 사용문제가 가장 걸림돌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여서 구청에 일정 기간 사용할 것을 신고했고 허가를 받았다. 입장을 다시 번복하는 구청측의 입장도 이해할 수 없거니와 예술행위에 대해 이 같은 폭력행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10월 5일 현재 전주이씨 종친회 등 폭력 주체들은 아무런 사과가 없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적 남성우월주의를 드러내는 한편 이씨 종친 등 소위 유림세력의 ‘놀랄 만한’ 문화적 무지를 드러낸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