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 퍼지는 강인한 "여성" 찬가

72년 14%, 2000년 42% 참가율 급성장

역도, 장대높이뛰기, 수구 등 여성에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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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의 관심을 모았던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의 마지막 성화 봉송 주자

는 여섯 명의 여성들이었다. 마지막 성화 점화자는 애틀란타 올림픽 육상

400m 은메달리스트 캐시 프리먼이었다. 베티 커스버트, 돈 프레이저, 셜리

스트릭랜드, 쉐인 골드, 데비 플린토프 그리고 캐시 프리먼. 이 여섯 명은

여성의 올림픽 참가 1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주자로 선정된 호주의 여

성 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

이번 호에는 여성의 올림픽 100년을 조명해 본다.

편견의 벽을 뚫고

IOC 90년간 여성위원 전무

근대 올림픽 운동의 부흥자 쿠베르탱 남작은 여성의 올림픽 참가를 인정

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올림픽은 강인한 남성에 대한 찬가로 남아야

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결국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는 단 한

명의 여성도 참가할 수 없었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마라톤에 참가한 여성

이 있었다. 정식 경기에 참가할 수 없게 되자, 다음날 홀로 마라톤 코스를

완주했고, 진행요원의 제지로 골인 지점이 있는 경기장에는 들어갈 수 없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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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제3회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에서의 여자양궁경기모습(왼쪽)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처음

여성이 개방된 역도경기장면(오른쪽)

<자료협조·대한올림픽위원회>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에서는 여성이 골프, 테니스 종목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쿠베르탱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장으로 재임한

1896년부터의 29년 동안 여성의 참가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으며 전체 참가

선수에 대한 비율도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결국 올림픽의 여성스포츠에 대한 무시와 무관심에 실망한 여성들이 주최

가 되어 1922년엔 여성들만의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이 행사는 1922년부터

1932년까지 네 번에 걸쳐 개최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 1928년 암

스테르담 올림픽에서 5개의 종목이 여성에게 개방되었다. 비로소 IOC는 여

성에게 문호를 열기 시작한다.

그러나 넘어야 할 벽은 여전히 높았다.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여성이 참가하게 된 육상 800m에서 몇몇 참가 선수들이 골인 지점에서 기

절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로써 장거리 육상은 연약한 여성에게 위험할

뿐만 아니라 조로화를 촉진한다 하여 800m 종목은 다음 올림픽부터 금지되

었고,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야 부활되었다. 여자 마라톤의 채택도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야 가능했다.

국제 스포츠 기구에서 여성의 위치도 이와 다를 바 없었다. 1896년부터

1983년까지 IOC에는 단 한 명의 여성 위원도 존재하지 않았다. 현재 세계

스포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의 아니타 디프

란츠는 1997년 IOC 첫 여성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그만큼 스포츠 기구의 고

위 의사결정직에는 여성이 전무했다.

날개를 단 여성스포츠

짧은 기간 놀라운 성장세 보여

올림픽의 여성 참가자는 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전체의 4.3%, 반세기가 지

난 72년 뮌헨 올림픽에는 14%를 차지했다. 10% 포인트를 올리는 데에는

반세기나 걸렸으나, 급격한 변화는 지난 10년간 일어났다. 96년 애틀란타 올

림픽에서는 전체의 35%, 이번 시드니 올림픽에는 전체 1만5백 명 중 4천4

백 명으로 약 42%를 기록함으로써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 성장세에 일조를 하고 있는 미국은 1972년 연방법의 학원에서 체육·

교육 활동의 성차별 금지 조항 신설 이후, 그 혜택을 받은 세대들이 1990년

대 올림픽의 주역이 되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는 여자농구, 여자

축구, 소프트볼, 여자체조 팀이 최고 인기를 구가했다. 이 여세를 몰아 미국

에선 여자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 여자 프로농구리그 출범 등이 이루어졌

다.

참가자가 늘어나는 것은 참가 가능한 종목의 증가에서 기인했다. 최근

IOC는 새로운 종목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남녀 종목을 모두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강제 조항으로 채택했다. 때문에 새로이 채택

된 태권도, 철인 3종, 체조의 세부종목 트램폴린은 모두 남녀 종목을 다 포

함하고 있다. 또 장대높이뛰기, 해머던지기, 근대 5종, 수구 그리고 역도는

여자 종목을 추가했다. 이 종목들은 불과 10∼20년 전 여자에게는 신체적으

로 벅차다고 여겨지던 스포츠였으나, 정식 종목 채택에 힘입어 생활 체육에

서도 참가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제 여성에게 개방되지 않은 종목은

복싱, 레슬링이 전부다.

참가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미디어와 스포츠 시장에서도 여성은 무시 못

할 세력으로 성장했다. 미국의 입김으로 애틀란타 올림픽에 추가된 소프트

볼과 여자축구는 처음엔 미디어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자 제대로 된

중계를 보지 못한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미국 NBC 방송국은 이번

시드니 올림픽의 소프트볼과 여자축구 중계를 프라임타임에 배치했다. 특히

여자축구는 애틀란타 올림픽과 미국 월드컵의 우승 행진에 힘입어 단시간에

주목받는 스포츠로 성장했다. 시드니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 미국의 단거

리 육상선수 매리언 존스는 나이키와 NBC 방송국의 주 마케팅 대상이다.

21C 진정한 평등으로

IOC 여성역할신장 권고조항 채택

IOC는 이러한 스포츠계 추세를 반영해 여성스포츠 키우기에 나섰다. 1994

년 파리에서 열렸던 IOC 백주년 올림픽 총회에서, 올림픽 운동에서의 여성

역할 신장을 촉진하는 권고 조항을 채택했다. 이 조항은 IOC, 각 국가 올림

픽위원회, 국제 스포츠기구에서 2000년 말까지 의사결정직의 10%, 2005년

말까지 20%의 자리가 여성에게 돌아가도록 촉구한다. 그 외에도 여성 지도

자와 행정가 육성, 여성 스포츠 활성화 등에 대한 내용도 포함했다.

IOC의 이같은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회원국 199개 국가 가운데 15개

국가는 선수단에 여성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 아직도 이슬람 국가에서는

문화적, 종교적 이유를 들어 여성을 참가시키는 데 주저하고 있다. 이란은

사격 선수, 바레인은 육상과 수영 종목을 포함해 4명의 선수를 참가시켰는

데 자국에 경기 모습이 방영되지는 않는다. 한 육상 스타는 얼굴을 보였다

는 이유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올림픽 참가 100년만에 여성 스포츠는 참가율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평등

을 이끌어냈다. 지난 100년간의 성과와 비교해서 앞으로의 100년 동안은 진

정한 평등에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지 주목하자.

'류민희 객원기자 ryu13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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