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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많은 만큼이나 고민도 많았던 젊은 날에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는

게 좀 수월해질 줄 알았는데 영 아니올시다이다. 크건 작건 한 오십년 갖가

지 풍상을 견뎌내다 보면 노하우는 아니라도 일종의 내성 같은 게 생겨 웬

만한 일에는 움쩍도 안할 거라고 기대했었는데 말짱 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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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된 노릇이 무슨 일만 생기면 엄청난 스트레스 때문에 일을 시작하

기도 전부터 가슴이 울렁거리고 진땀을 흘린다. 아마 내 몸이 약해서 그런

모양인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친구들도 비슷한 증상을 앓는 것 같다. 나

이가 들수록 골치 아픈 일도 싫고 골치 아픈 사람도 싫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하고도 잘 어울릴 수 있었지만 이젠 편한 사람만

만나고 싶다고들 이구동성이다. 이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푸근해지는 게 아니라 더 팍팍해지는가 보다.

하긴 우편함에서 세무서 또는 병무청이라고 찍힌 봉투만 봐도 와들와들

떨어 둘째로부터 ‘공문서 포비아’라는 놀림을 받는 걸 보면 난 원초적으

로 대책없는 스트레스면역결핍증 환자일지도 모른다. 이런 여자가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결혼이란 걸 성큼 했으며 아이를 셋씩이나 낳았는지 생각할

수록 신기하다. 젊음이 무기였나, 무식이 힘이었나.

스트레스 없이 산다는 건 불가능하니 최소한의 스트레스만 받고 살고 싶

다는 욕망이 커갈수록 스트레스 받을 일은 참 잘도 생겨난다.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겨우 4년 반만에 또 이사를 가야 하게끔 되었다. 내 친구 중에

는 이사가 취미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손쉽게 이사를 다니는 이도 있지만

난 이사가 무섭다. 내 또래 주부들이 이사를 통해 재산을 늘리는 걸 뻔히

보면서 자신이 너무 무능한 주부라는 좌절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겪으면서도

그 보다는 집 보러 다니고 이삿짐을 싸야 하는 스트레스가 더 싫었기 때문

에 미련할 정도로 한 군데서 오래 눌러 살았다.

지난 번 집에서는 십년도 더 살았는데 뜻하지 않은 사정으로 서둘러 팔

고 이 집에는 전세로 들었다. IMF 때 전세금이 떨어졌을 때도 주인이 전세

금을 내려 주지 않았지만 이사하는 게 번거로워 그냥 눌러 살았다. 손해보

고 마는 게 낫지 이사는 끔찍했다.

이번엔 좀 작더라도 집을 사자고 결정했다. 제일 먼저 이 동네는 너무

번잡스러우니 이번에는 조용하고 공기 좋은 곳에 집을 마련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그런데 무주택자에서 다시 유주택자로 신분상승할 기회가 왔으니 기쁜

마음으로 집을 보러 다녀야 마땅한데 이사 스트레스는 줄어들지 않았다. 예

전에는 집주소를 들고 이사한 집으로 찾아왔던 남편이 생전 처음으로 동행

했지만 젊었을 때보다 훨씬 힘들게 느껴졌다.

처음엔 요즘 사람답게 인터넷을 통해 광범위하게 집을 골라 보았다. 공

기 좋다고 소문난 곳, 새로 지은 집, 그리고 값이 괜찮은 동네를 골라서 찾

아 다녔다. 정보가 넘치니까 쉽게 고를 줄 알았는데 오히려 결정하기 어려

웠다. 그야말로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다.

이번에야말로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보자던 처음의 결심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졌다. 겉으로는 간절히 변화를 원하는 것 같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 집으로 이사 와선 반상회도 한 번 안 나갈 정도로 이웃과 내왕을 하

지 않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난 어느 새 이 동네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

다.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도전은 더 이상 유혹이 아니라 공포의 대상이었

다.

정서적인 안정, 다시 그것을 최우선 순위에 놓으니 해답은 저절로 나왔

다. 이 동네에서 집을 구하기. 너무 시끄럽고 낡았기 때문에 이 동네는 피하

자는 처음의 원칙은 우습게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낙착된 곳은 이 번잡한

동네에서도 가장 번잡한 위치에 있는 집.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한결같이

실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내 마음은 놀랄만큼 편해졌다.

이젠 정말 나 자신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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