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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관점으로 본 성범죄 보도 유감] 사이비 종교 범죄 다룬 넷플릭스 다큐 JMS 등 교주 성폭력 묘사 적나라 무력·수동적...전형적 ‘피해자’ 묘사도

피해자 보호 관점 실종된 ‘나는 신이다’ 열풍

2023. 03. 15 by 이세아·김민주 기자
다큐 최초 국내 넷플릭스 TV시리즈 1위에 오른 ‘나는 신이다’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다큐 최초 국내 넷플릭스 TV시리즈 1위에 오른 ‘나는 신이다’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배우까지 동원해 성폭력 상황을 자세히 재연했다. 범죄를 고발하면서 화면은 피해자가 겪은 고통으로 채웠고, 피해자를 무력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그리기도 했다.

다큐 최초 국내 넷플릭스 TV시리즈 1위에 오른 ‘나는 신이다’(조성현 연출) 열풍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사이비 종교 범죄에 대한 공분을 일으켰지만, 성폭력을 그리는 방식만은 많은 반발과 우려를 샀다. 생존자들의 용감한 고발에 힘을 싣고 폭력의 구조에 관한 논의를 촉발해야 할 주류 미디어가 정작 피해자 보호엔 신중하지 못했다. 낡은 피해자상을 익숙한 방식으로 재현했고 때아닌 ‘피해자다움’을 불러냈다. 온라인에선 피해 재연이나 노출 장면만 모은 2차 가해 콘텐츠가 끊임없이 재생산·소비되고 있다. 젠더폭력 피해지원 전문가들도 우려를 표했다.

적나라한 성폭력 묘사·여성 대상화 논란
자극적·선정적으로 소비되기도
실명·얼굴 밝힌 피해자 향한 2차 가해도

‘나는 신이다’는 국내 사이비 종교 실태를 파헤친 8부작 다큐다. 남성 교주의 여성 신도 성폭력 의혹에 초점을 둔 기독교복음선교회(JMS), 만민중앙교회 관련 편이 특히 주목받았다. 성폭행 상황 녹음을 포함해 적나라한 폭력 묘사, 여성 신도들의 전라 목욕 장면이나 노출 의상 착용·탈의 장면 등이 고스란히 등장한다.

“모자이크 화면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지 않으면 계속해서 (교단) 내부인들이 (허위·조작이라는) 방어 논리를 세울 거라고 생각했다.”

“(선정적이라는) 문제의식은 존중하고 공감하나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제작 의도를 고려할 때 이번 형태가 맞다고 판단했다.”

조성현 MBC PD가 지난 10일 열린 ‘나는 신이다’ 기자간담회에서 ‘선정성 논란’에 대해 밝힌 해명이다. 피해자들은 인터뷰와 증거물 공개에 동의했다고 한다. 넷플릭스 측도 당초 선정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으나 제작진이 참담한 현실을 알려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문제는 제작진의 의도와 달리 이러한 장면들이 자극적으로 소비되는 현실이다. 15일 현재 네이버, 유튜브 등에서 ‘나는 신이다’를 검색하면 다큐의 맥락과 무관하게 성폭력 재연과 노출 장면만 모아 편집한 게시물과 영상이 다수 나온다. 실명과 얼굴을 밝히고 인터뷰한 여성 피해자의 경우, 신상 파헤치기 등 사이버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신이다’ 제작진이 여성들의 용감한 고발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로 소비되도록 방치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 미디어팀 활동가는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을 불필요하게 자세히 말하도록 한 것은 문제”, “성폭력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고 봤다. 또 “구글에서 ‘나는 신이다’를 검색하면 검색어로 ‘나는 신이다 반신욕’이 뜬다. 어떤 장면이 주목받고 있는지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공동대표는 피해자들이 고발 목적으로 출연을 결심했고 사이비 종교 범죄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환기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피해자들이 힘내서 뭔가 하려는 데 걸림돌이 될까 염려된다”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떠올릴 수 있는 장소에 데려간 연출이 이뤄진 것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연약·무력·수동적...전형적 ‘피해자’ 묘사도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3화 JMS, 전자발찌 메시아 편은 여성 신도들이 겪은 성폭력을 묘사하며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 여성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피해자다움’ 이미지다.  ⓒ넷플릭스 화면 캡처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3화 JMS, 전자발찌 메시아 편은 여성 신도들이 겪은 성폭력을 묘사하며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 여성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피해자다움’ 이미지다. ⓒ넷플릭스 화면 캡처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8화 감옥으로 간 만민의 신 편은 여성 신도들이 겪은 성폭력을 묘사하며 거미줄에 걸려 몸부림치는 나비를 먹어 치우는 거미를 보여준다. 역시 전형적 ‘피해자다움’ 이미지다.  ⓒ넷플릭스 화면 캡처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8화 감옥으로 간 만민의 신 편은 여성 신도들이 겪은 성폭력을 묘사하며 거미줄에 걸려 몸부림치는 나비를 먹어 치우는 거미를 보여준다. 역시 전형적 ‘피해자다움’ 이미지다. ⓒ넷플릭스 화면 캡처

다큐에는 전형적인 ‘피해자다움’ 이미지도 자주 나온다. 성폭력 피해자를 연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했다. 여성 신도들이 겪은 성폭력을 묘사하며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 여성(3화 JMS, 전자발찌 메시아), 거미줄에 걸려 몸부림치는 나비를 먹어 치우는 거미(8화 감옥으로 간 만민의 신) 화면을 삽입하는 식이다.

가해자를 비판하면서도 화면은 피해자가 호소하는 무력감과 동요로 채우기도 했다. 얼굴과 실명을 공개한 폭력 피해자들이 고통을 못 이겨 울거나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뺨이 빨갛게 부어오를 때까지 스스로를 때리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5화 아가동산, 낙원을 찾아서).

“성폭력 보도에 피해 상세 묘사 필수 아냐”
“피해양상보다 피해 반복되는 사회구조에 더 주목해야”

그간 언론 내부에서는 수동적 피해자다움을 재생산하지 않기 위한 여러 자성과 개선 시도가 이어졌다. 2018년 ‘미투’(#MeToo) 운동 이후 용감하게 성범죄를 고발하는 피해생존자들이 대거 미디어에 등장하며 더 빨라진 변화다.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2018년 함께 마련한 ‘성폭력, 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은 언론이 ‘피해자의 피해상태를 자세하게 보도하거나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반영된 보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 ‘피해자가 실명 및 얼굴을 공개하거나 직접 피해사실을 진술하는 방식보다 피해자 보호에 적합한 보도 방식을 고민’하고, ‘피해자가 무기력하고 나약할 것이라는 편견이 피해자들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점도 지적한다. ‘피해 회복·치유 과정이나 비슷한 피해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보도도 강조한다. 

이윤소 활동가는 성폭력 피해를 재현하는 콘텐츠가 지향해야 할 예시로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들었다.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다루되 폭력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진 않는다. 이 활동가는 “피해를 자세하게 묘사해야만 고발하려는 바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종편 채널 PD는 여성신문에 “참혹한 피해 양상 자체보다, 왜 한국인들이 사이비 종교에 계속해서 현혹되는지, 특히 젊은 여성들이 쉽게 빠져들어 가스라이팅 당하고, 일부 피해자들은 다른 여성들을 착취 구조에 끌어들이는 가해자가 되는지 등 본질적 문제에 주목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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