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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영화 사랑법] ‘눈치 피라미드’ 밑바닥에서 살아남기

2020. 10. 19 by 강푸름 퍼플레이 콘텐츠팀(퍼줌 에디터)

배은혜 <눈치껏>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 여성 서사를 담은 영화, 젠더이슈와 성평등 가치를 신선한 시각으로 담아낸 영화, 바로 '여성영화'입니다. [여성영화 사랑법]은 앞으로 여성영화 스트리밍 플랫폼 '퍼플레이(purplay.co.kr)'에서 만날 수 있는 여성영화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다채로운 매력이 넘치는 여성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눈치껏> 스틸컷

 

눈치란 과연 무엇인가. 국어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 독심술이 있지 않고서야 타인의 마음을 알아내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누군가의 마음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모든 감각이 그를 향해있어야 하고, 두뇌를 풀가동하여 정보를 수집한 뒤, 그를 둘러싼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눈치 본다’는 것은 매우 힘이 드는 행위다. 

배은혜 감독의 <눈치껏>(2017)은 바로 그 눈치에 관한 영화다. 태권도장에서 일하게 된 수연(신기환)은 3일 간의 수습기간을 보내는데, 직장생활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다. 천방지축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배울 점 없는 상사를 모시는 것도 어렵기만 하다. 유 관장(강영구)은 “백 사범(박준혁) 하는 것 보고 유도리 있게 눈치껏 하다 보면 3일 금방 갈 거야”라고 말하지만 전혀 그럴 것 같지가 않다. 매순간 눈치 레이더를 가동시켜야 하는 수연은 갈수록 지쳐간다. 주변을 살피며 이리저리 데굴거리는 눈은 유 관장이 기르는 카멜레온과 닮았다. ‘와, 정말 돌아버리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꾹 참아야 한다. 여기는 직장이고 일자리를 잃을 수는 없으니까. 

유 관장은 예의가 중요하다며 아이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늘어놓지만 정작 그가 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알아서 모셔주기’인 듯하다. 식사시간을 들여다볼까. 점심으로 자장면을 시킨 그들 앞에는 각자의 것이 하나씩 놓여있다. 그런데 유 관장은 자장면에 손도 대지 않고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것 아닌가. 열심히 자장면을 비비던 백 사범은 그것을 유 관장 앞에 ‘세팅해드리고’ 자신은 새 것을 다시 비비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본 수연은 아차 싶다. 점심을 먹는 순간에도 눈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밥은 왜 그렇게 빨리들 먹는지. 속도를 맞추려던 수연은 결국 체하고 만다. 

상황에 따라 이리 저리 변하는 백 사범은 능구렁이 같다. 처세술이 어찌나 좋은지 유 관장 입에서는 백 사범을 칭찬하는 말만 흘러나온다. “백 사범이 사람이 참 좋아. 애들하고 친밀하게 지내고. 저런 자세가 필요해요.” 내 눈에는 그저 아이들과 시시덕거리는 걸로만 보이는데, 저게 ‘친밀’이라는 건가? 관장의 말에 수연도 아이들과 친해져보려 시도해보지만 오히려 우스운 꼴이 되어버린다. 지도자에겐 권위가 중요하다는 유 관장의 조언에 수연은 더욱 헷갈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오케이고, 어디까지가 낫 오케이인 거야? 

 

<눈치껏> 스틸컷

 

‘눈치 피라미드’ 밑바닥에 위치한 수연은 결국 모든 이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유 관장, 백 사범, 아이들, 학부모, 심지어 CCTV까지. 직장 내에서 가장 ‘을’에 위치하는 이가 얼마나 피 말리는 눈치 전쟁을 벌여야 하는지 영화는 유쾌하면서도 신랄하게 풍자한다. 환경에 따라 몸 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카멜레온이 유 관장의 반려동물로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감독은 연출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각자의 작은 사회에서 적응해간다. 과연 그 모습은 어떠한가. 적응의 과정 속 포착된 찰나의 순간, 낯부끄러운 나를 본다. ‘눈치껏’의 가면은 사회가 원하는 최고의 적응일까.” 

유 관장과 백 사범이 만들어놓은 우스꽝스러운 규칙에 순응하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이용해야 하는 수연의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드리운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은 앞으로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증을 갖게 만든다. 수연은 끝내 그곳을 박차고 나갈까 아니면 가면을 쓴 채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꾸며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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