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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하고 바람피는 남성 혼내주는 인도의 녹색 여성들
국가가 여성을 보호하지 못할 때 등장한 여자들 ‘그린갱’
2019. 09. 20 by 최형미 객원기자(여성학자)
녹색 사리를 입고 대나무 작대기를 든 그린갱들. ©California Sunday 홈페이지 캡쳐
녹색 사리를 입고 대나무 작대기를 든 그린갱들. ©California Sunday 홈페이지 캡쳐

 

최근 인도 북부 바라나시 주변마을에 녹색 사리를 입은 여성들이 대나무 작대기를 들고 주먹을 쥔 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아내를 때리는 남자, 바람 피우는 남자, 성추행을 하고 강간을 저지른 남자를 혼내기 위해 나선 것이다.

경찰 대신 나선 그들은 누구?

인도는 여성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Dandona et at; Lancet, 2018)다. 그러나 대안기술의 천국, 세계 GDP 7위(2018), 인도의 과학 기술력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세계적인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으면 인도에서 태어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깊고 넓은 나라다. 이런 인도에서 여자들은 왜 법에 호소하지 않고 주먹을 먼저 휘두른 것일까? 모든 여성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이것은 대부분 보호해줄 부자 부모도, 사회의 계급도 없는 불가촉천민 여성들의 이야기다. 법과 정치도 그들의 편이 아니다.

미국 매체 ‘캘리포니아 선데이’는 녹색 사리를 입은 그린갱 이야기를 지난달 특집으로 다뤘다. 기사에서 2008년 결혼 한 프리야시 라즈픗은 결혼식의 축포가 여전히 귀에 생생한 때 남편 가족으로부터 학대를 당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참금을 더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라즈폿을 쫒아내며 등유를 온몸에 뿌렸다. ‘지참금을 더 가져오지 않으면 불태워버리겠다’는 경고였다. 라즈픗이 태어난 마을에서 여성에게 이혼은 낙인이다. 그러니 남편의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남편 가족의 폭력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그는 경찰과 법원에 호소를 했지만, 6년이라는 시간만 끈 후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 사이 남편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갈 곳을 잃은 라즈픗에게 사건 중재자는 그린갱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녹색 깡패들, 불가촉천민 여자들이 모인 집단. 여자들이 가정폭력을 당하거나, 남편이 바람을 피거나, 강간을 당했거나 땅을 빼앗겼을 때 이들을 위해 함께 싸워주는 여성 집단의 이름이다. 갱단이라는 이름이 무서웠지만 라즈픗은 그들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 했다. 그 곳 여자들은 경찰이나 법원과 달랐다. 대나무 작대기를 들고 라주픗 남편 집으로 찾아가 사정없이 때리고 혼내주며 경고했다. “라즈픗을 받아들이고 존경으로 대하라. 그렇지 않으면 혼내줄 것이다.” 거짓말처럼 남편은 두려움에 떨며 라즈픗을 받아들였다. 이후 라즈픗은 그린갱의 지원자이자 멤버가 되었다.

그린갱 창립자 앙고리 다하리야

여자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잘 허용되지 않는 보수적인 인도 북부 마을에서 어떻게 그린갱이 만들어졌을까? 여기에는 앙고리 다하리야(Angoori Dahariya)라는 불가촉천민 출신 여성이 있었다. 다하리야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16세에 결혼했지만, 고철을 파는 남편은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 형편이 안 되었고 결국 큰 아이를 잃었다. 그 후 그는 싸구려 골판지를 사다가 포장상자를 만들어 팔았다. 밤낮없이 일하여 아이들을 교육시킬 기회가 있는 지방도시의 작은 땅을 살 수 있었다. 나무, 진흙, 벽돌로 집을 지으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작은 정원도 만들었다. 그 지역에서 유일하게 땅을 가진 불가촉천민이 된 것이다.

그러나 집으로 이사한 지 7년이 지날 무렵, 땅을 팔았던 사람과 높은 계층 사람들이 몰려와 다하리야 가족을 몰아냈다. 불가촉천민은 상위 계층 마을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였다. 다하리야는 머리채가 잡혔고, 벽에 찌이며 맞았고, 열두 살 아들은 맞아 기절 했다. 정신을 차려 다하리야는 대나무 작대기를 꺼내서 그들과 맞섰지만 피투성이가 된 채 거리로 쫓겨났다. 다하리야는 경찰과 정치인을 찾아가 잃어버린 땅과 집을 찾으려고 호소했지만 소용 없었다. 오히려 ‘대나무로 왜 대들었느냐’는 소리만 들었다. 그들의 차가운 외면 속에서 다하리야가 떠올린 사람은 바로 산적여왕 폴린 드비(Phoolan Devis) 였다.

드루가를 상징하던 드비

다하리야와 같은 세대에 살아온 드비는 1963년 태어났다. 드비는 11세에 소 한마리에 팔리듯 서른이 훌쩍 넘은 남자와 강제 결혼을 했다. 결혼은 강간의 지속이었다. 고통을 받던 드비가 남자의 손을 물어뜯고 탈출해 집으로 도망 왔지만, 남편 없는 여자는 강물에 떠있는 시체 취급을 받았다.

드비의 인생은 1979년 참발 골짜기(Chambal Valley) 산적때에 합류하면서 바뀌었다. 그녀가 납치된 것인지 자진으로 합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당시 인도는 산업발전에 박차를 가했지만, 지방의 골짜기나 산에는 생계를 위해 떠도는 산적들이 많이 생겨나던 시대였다. 죄를 지은 사람도, 로빈훗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어린 드비는 그곳에서 강간과 폭력에 시달렸다. 그러나 결국 산적 두목이 되었다. 드비는 특히 달릿(불가촉천민) 여성을 강간한 높은 계급 남성을 추격해 잡았고, 그의 성기를 잘라 목에 걸고 거리를 행진하게 해 사람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사람들은 경악했지만, 달릿 여성들에게 그는 영웅이었다. 정부는 드비를 잡으려 혈안이 되었고 결국, 1983년 드비는 동료와 가족의 안전을 보장받고 자진해서 항복했다.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그녀의 자궁은 적출되었다. “폴란 드비와 같은 사람이 세상이 다시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 이라고 그녀를 수술한 의사는 농담처럼 이야기 했다. 11년의 복역 이후 그는 곧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지만 2001년 암살되었다. 그의 삶은 달릿 여성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2003년경 참발 골짜기에는 30여개의 산적때가 있었는데 그중 절반은 여성이 대장이었다.

여성들의 ‘되갚기’

다하리야는 드비처럼 폭력을 사용해 땅을 빼앗고 자식을 거리로 내쫒은 ‘그들’에게 원수를 갚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목숨을 거는 것이고 가족과 떠나는 일이었다. 그는 여성의 권리를 지키기로 결심했고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겼을 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처음 가입한 여성은 다하리야가 거리로 쫓겨나는 것을 본 이웃이었다. 이후 때리는 남편에게서 도망 온 여성, 지참금으로 학대 받는 여성, 돌아가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여성들이 다하리야를 찾아왔다. 이들은 여성에게 닥친 어려움은 무엇이든 함께 의논하고 활동 했다. 2010년 여름 그린갱이 있는 지역인 티르와에 정전이 있었다. 마실 물도 나오지 않았고 부패한 공무원은 게을렀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린갱이 찾아가 시위를 하고 공무원을 때리고 혼을 내주자 곧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러나 그린갱 맴버들은 폭력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되었고, 그제서야 남자들도 그린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그린갱의 존재를 두려워 한다. 이제 그들이 경찰을 찾아가면 의자를 내주고 그들을 경찰 자원봉사자(시민 경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린갱에 참여하며 여자들은 무술을 연마하고 더 이상 남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자들이 함께 뭉쳐 여자들을 지키는 구원자가 된 것이다. 국가가 여자들을 지켜주지 못할 때, 여덟 개의 팔을 가진 두르가(힌두교 전쟁의 신)가 되어 창과 방패를 들고 호랑이를 거느리고 악을 징계하러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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