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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 ‘기생’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홀로서기 하는 유일한 기정

[영화 ‘기생충’] “왜 하필이면 막내딸 기정만 OOO?”

2019. 06. 20 by 김시무
영화 ‘기생충’ 스틸컷.
영화 ‘기생충’ 스틸컷.

*주의! 해당 기사에는 영화 ‘기생충’의 핵심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PARASITE)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주는 매우 복합적인 영화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의 후광 덕분인지 이 영화는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천 만 관객을 동원할 태세다. 작품성과 상업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흔치 않은 경우다. 이 영화를 둘러싼 논의도 분분하다. “상승과 하강의 명징한 직조를 통해서 계급투쟁을 처연하게 묘사했다”는 호평부터 “봉준호 감독이 제3세계 지식인의 시선으로 자국의 하위 주체를 제1세계에 전시했다”는 비난까지 다양했다.    
평론가의 시각이 아니더라도 일반 관객들의 의견도 다채롭게 개진되었다. 그중 특기할만한 것이 “기택의 가족 중 왜 하필이면 막내딸인 기정(박소담)만 죽는가?”하는 의문이었다. 기정의 죽음을 납득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 머리통을 커다란 수석(壽石)으로 맞은 기우(최우식)도 멀쩡하게 살았는데 말이다. 해석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봉 감독의 전체 필모그래피를 통해서 그에 대한 해석의 단초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0년 ‘플란다스의 개’라는 특이한 제목의 영화로 데뷔한 봉 감독은 이후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 등의 장편영화를 연출했는데, ‘기생충’까지 합하면 일곱 편으로 비교적 과작에 속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들 영화 속에서 여성 캐릭터가 차지하는 비중과 그녀들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살인의 추억’은 10여명의 애꿎은 여성들이 연쇄살인범의 마수에 걸려 희생을 당했던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다. 여성들을 너무 가학적으로 다루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봉 감독의 디테일한 연출력을 입증한 역작이었다. ‘괴물’에서도 5인 가족이 핵심 캐릭터인데, 한강에 출몰한 ‘괴물’에 맞서 사투를 벌이던 가족들 중 할아버지와 막내딸이 목숨을 잃는다. 특히 막내 딸 박현서(고아성)의 죽음은 그녀가 고아 소년을 대신하여 당한 변고라 깊은 여운을 남겼다. ‘마더’에서는 10대 여고생 아정이 정신연령이 미숙한 동네 청년 도준(원빈)에게 잔혹하게 살해를 당한다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의 연장선상에서 읽힐 수 있는 텍스트다. 
반면 ‘설국열차’에서는 여주인공 남궁 요나(고아성)가 인류의 미래를 구하는 희망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옥자’에서도 역시 어린 여주인공 미자(안서현)가 환경-친화적인 세계를 만드는데 일조를 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영화 ‘기생충’ 속 기택과 충숙의 딸 기정(박소담 분).
영화 ‘기생충’ 속 기택과 충숙의 딸 기정(박소담 분).

이 글의 초점이 중요한 캐릭터의 죽음이므로 ‘괴물’의 현서와 ‘기생충’의 기정으로 논의를 한정하도록 하겠다. 여자의 피는 희생제의를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지만, 현서의 경우는 사실 타자를 대신한 것이므로 매우 숭고한 죽음이다. 소녀의 빈자리를 하필 소년이 대체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말이다. 문제는 기정의 죽음이다. 한 네티즌은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다”고 하는 기택(송강호)의 말처럼, ‘이미 결정된’ 또는 ‘계획된’을 뜻하는 기정(旣定)이라는 이름을 가진 딸이 죽는 것은 예견된 일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럴듯하긴 하지만 다소 자의적이다. 
또 한 네티즌은 기정이 너무 스마트해 죽음을 맞았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기정은 가족구성원 중 누군가를 대체하고 있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다. 예컨대 아빠 기택은 젊은 기사를, 엄마 충숙은 가정부를, 오빠 기우는 가정교사를 각각 대체해 기생을 하는데, 기정만이 홀로서기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문광과 근세 부부에게 동정과 연대를 표명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그런 능력자가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비극적 정조(情調)가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좀 더 설득력 있는 해석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명확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극적 맥락에서 볼 때, 기정이 살의를 품은 근세(박명훈)의 표적이 되리란 것이 이미 예시됐다는 것이다. 박사장(이선균)과 기택이 인디언 복장으로 미술선생 기정을 습격하기로 기정사실화됐으니 말이다. 기정은 복선에 따라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캐릭터였다는 것이다. 

 

필자 김시무
영화평론가. 부산국제영화제 자문위원. 주요 저서로 『영화예술의 옹호』(2001), 『Korean Film Directors: Lee Jang-ho』(2009), 『홍상수의 인간희극』(2015), 『스타 페르소나』(2018), 『영국의 영화감독』(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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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정 2020-04-04 17:34:58
저도 같은 의문을 가졌습니다.
평론가님 글 잘 읽었습니다.
림태느 2019-06-20 12:13:54
그럼 남자 3명이 다 죽으면???
그럼 기사제목이 바뀌는건가? 왜 기정이만 안죽는건가? 어이가없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