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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고 파인 보도블럭, 곳곳의 턱, 지하철 앨리베이터는 저 멀리에… 지도상 30분 거리 1시간 40분 걸려 비장애인 중심 도시계획 바뀌어야

[휠체어 체험기] 장애인을 위한 도시는 없었다

2019. 06. 16 by 김서현 기자

 

 

[김서현 기자가 휠체어를 타봤다] 7월 장애 등급제 폐지를 앞두고 국토교통부는 ‘교통약자의 이용편의 증진법 시행 규칙’ 개정안을 마련했다. 개정안은 보행상 장애가 있는 장애인을 위한 특별 교통수단의 수를 늘이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지난 4월 서울시는 ‘서울시 장애인 인권증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시는 이동·접근권 강화를 위해서 저상 시내버스로 전체 교체, 장애인 콜택시 확대 운영, 지하철 전역사 엘리베이터 설치에 나선다. 잇따른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정책 발표에 궁금증이 들었다. 휠체어로 도심을 다녀봤다.  어땠을까?

 

기자가 휠체어를 타고 서울 서대문역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에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기자가 휠체어를 타고 서울 서대문역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에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0일 오후 2시 10분, 휠체어에 앉아 신호등이 바뀌기 전 건너기 위해 부지런히 바퀴를 굴렸다. 한 번도 신호등 신호가 짧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러나 신호등을 다 건너기 전 신호가 바뀌어버렸다. 차들이 기다려줘 겨우 건너나 싶었더니 5,6cm밖에 안 되는 인도 턱에 휠체어 바퀴가 걸렸다. 아무리 애를 써도 혼자서는 턱을 오를 수 없었다. 지나가던 한 사람이 “도와줄게요”라며 뒤에서 밀어주기 전까지 작은 턱 하나 넘을 수 없었다. 거듭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내고 다시 휠체어를 미는데 이번엔 비스듬하게 경사진 인도에서 휠체어가 제멋대로 구르려 했다. 진땀이 났다. 

지난 10일, 실제로 기자가 휠체어를 이용해 서대문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해 종로3가역에 도착해 인사동을 거쳐 다시 서대문역 인근 회사로 돌아오는 체험을 해봤다. 실제 장애인이 이용하는 지하철 휠체어 승강장치, 엘리베이터, 저상버스를 이용해보고 이동 과정 중 일어나는 애로사항을 확인했다. 

회사에서 서대문역까지는 2,3분 남짓하는 짧은 거리였다. 그러나 휠체어를 이용하자 15분 거리로 늘어났고 평소 인식도 하지 못 했던 솟아오른 하수구와 푹 파인 보도블럭은 엄청난 장애물이 됐다. 서대문역에 도착해서도 바로 들어갈 수 없었다. 서대문역은 6번 출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었다. 바로 보이는 8번 출구에는 휠체어를 나를 수 있는 승강설비가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도 고난은 계속됐다. 또다시 등장한 지하철 안 계단에 승강설비를 이용하기 위해 역 직원을 기다리느라 몇 분을 지체했고, 승강장까지 가서는 휠체어 탑승 안내 표지가 있는 가장 마지막 칸까지 휠체어를 끌어야 했다. 평일 오후 시간이라 지하철 이용자가 많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기자가 휠체어를 이용해 5호선 종로3가 역에 내려 승강장에 붙어있는 휠체어리프트 안내표지판을 확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기자가 휠체어를 이용해 5호선 종로3가 역에 내려 승강장에 붙어있는 휠체어리프트 안내표지판을 확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종로3가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시간은 40분이 지나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 인사동으로 바로 갈 수 있는 5번출구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지만 이용할 수 없었다. 휠체어 승강설비가 없었다. 120m 이상 반대로 가야 휠체어 승강설비가 있었다. 겨우 승강설비 앞에서 호출버튼을 누르자 “좀 오래 걸릴거에요”라며 역무원이 말했다. 5분 남짓 승강설비 앞에 있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뭐에요?” “버튼 눌렀어요?” 말을 걸어왔다. 

승강설비로 겨우 오르고선 두 번의 엘리베이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동휠체어로 오르기에는 주로가 너무 가파르게 경사졌다. 나온 출구는 8번 출구 앞 엘리베이터였다. 낙원상가까지는 500여 미터로 밤이면 포차가 들어서는 정취있는 거리 앞이었다. 그러나 휠체어에 앉은 채 보이는 길은 너무 좁고 보도블럭이 깨져있었고 턱이 많았다. 500여 미터를 가는 데 30분 이상이 또 걸렸다. 턱마다 걸렸고 걸릴 때마다 매번 지나가는 사람들이 밀어주고 들어주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낙후된 익선동 거리를 가는 건 불가능했다.

기자가 훨체어를 타고 종로3가역에서 인사동으로 이동하고 있다. 낙원상가 인근의 오래된 보도블록은 깨지고 울퉁불퉁하여 휠체어로 이동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기자가 훨체어를 타고 종로3가역에서 인사동으로 이동하고 있다. 낙원상가 인근의 오래된 보도블록은 깨지고 울퉁불퉁하여 휠체어로 이동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시 30분, 낙원상가를 지나 겨우 인사동 거리에 들어서자 출발한지 1시간 40분이 지나있었다. 고르지 않은 보도블럭, 지하철 출구마다 설치되지 않은 휠체어 승강설비, 휠체어로 오가기엔 너무 나쁜 동선의 지하철역 모두 휠체어에 앉자 엄청난 장벽이 됐다.

인사동에 도착해서도 고난은 계속 됐다. 몇 군데의 상점을 들린 후 커피를 사서 사무실로 돌아갈 작정이었지만 들어갈 수 있는 상점이 없었다. 상점들은 10cm 넘는 턱이 있었다. 자주가던 카페도 계단을 올라야 들어갈 수 있어서 갈 수 없었다. 계단 없는 카페를 찾아 한참을 휠체어를 끌었다. 겨우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카페를 찾아 가서도 화장실에 갈 수는 없었다. 화장실이 반층 위에 있었다. 

기자가 휠체어를 타고 승차한 버스에서 버스기사가 휠체어를 장애인석에 고정시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기자가 휠체어를 타고 승차한 버스에서 버스기사가 휠체어를 장애인석에 고정시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사동거리를 쭉 거슬러 올라가 안국역 근처 버스정류장까지 갔다. 서대문 근처 회사까지 가는 저상버스를 기다렸다. 곧 도착한 저상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자 버스가 앞에 섰다. 뒷문이 열리고 발판이 나왔고 기사가 뒷문 앞 자리 둘을 접고 휠체어를 단단히 고정해주었다. 혹여나 눈초리를 받지나 않을까 했지만 버스를 탄 사람 중 한 사람이 “기사님 감사합니다”라며 감사를 전했다. 그렇게 회사로 돌아오니 출발한 때로부터 2시간 30분이 지나 있었다. 

박승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최근 서울의 한 거리가 미관상의 이유로 고른 보도블럭이 아닌 자갈길로 교체된 예가 비장애인 중심 정책 시행의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그는 “1984년에 휠체어를 이용하던 김순석 열사가 ‘거리의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지만  35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은 많지 않다”며 “비장애인 중심의 정책이 장애인들에게는 삶에 큰 위협이 된다. 그나마 장애인의 이동에 대한 정보 또한 시나 나라가 제대로 제공해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끼리 정보를 나누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이어 “지하철 역은 구조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앨리베이터의 위치가 장애인들에게 불편한 경우가 많고 또 표지판 안내도 제대로 안 된 곳도 많다. 또 저상버스를 도입하더라도 각 도로와 인도 사정이 휠체어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을지 여부가 다르기 때문에 온전히 이용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며 “장애인콜택시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나 대기 시간이 과도하게 길어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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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성 2019-06-23 16:44:30
이런기사님 100명중 한명 있을까말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