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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사건’ 3주기] “우리의 두려움이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2019. 05. 18 by 진혜민 기자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3주기 추모제 ‘묻지마 살해는 없다’가 17일 서울 강남역 강남스퀘어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5분 17초간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3주기 추모제 ‘묻지마 살해는 없다’가 17일 서울 강남역 강남스퀘어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5분 17초간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6년 5월 17일 발생한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하 강남역 사건) 3주기를 맞아 여성들이 다시 강남역에 모였다.

17일 오후 7시 서울 강남역 강남스퀘어에서 불꽃페미액션 주최로 추모제가 열렸다. ‘묻지마 살해는 없다’를 주제로 열린 이날 추모제에는 12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진행을 맡은 한솔씨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은 수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갖고 있던 불안함과 부당함을 공유하고 연대하도록 했다”라고 했다. 이어 “이 사건은 ‘묻지마’가 아니라 ‘여성 혐오’이다”라며 “가장 기본적인 사실부터 짚어야 하고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더욱 소리 내어 외칠 것”이라고 추모제를 시작했다.

추모 헌정시 ‘다시 강남역에서’ 낭독도 이어졌다. 헌정시에는 “생사를 건 이어달리기에서 말은 한 사람에서 한 사람으로 기억은 한 세대에서 한 세대로 우리의 추모는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행진은 묶이지 않는다. 너의 죽음은 잊히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후 5분 17초 동안의 ‘침묵시위’로 참가자들은 희생자를 애도했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빌어 우리 사회에 팽배한 여성 혐오 문화를 비판하며 변화를 촉구했다.

발언에 나선 한 여성은 “지금도 이 사건이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범죄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여론이 팽배하다. 그러나 여성 혐오와 정신질환은 독립된 사건이며 여성 혐오야말로 남성 카르텔의 대중적 정서이다”라며 “정신질환은 그 저열한 정서를 덮기 딱 좋은 소수자성”이라고 지적했다. 발언자는 “그렇다고 남성이라고 해서 혐오 당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사회에 만연한 폭력적 남성성이 전면 폐기돼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발언자는 “나도 이 사건이 처음에는 묻지마 범죄인 줄 알았다”라며 “그러나 범죄 대상의 상당수가 여성과 노인이었다”고 했다. 이어 “범죄의 이유를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여성 혐오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앞으로도 침묵하지 않겠다”고 했다.

참가자들의 발언이 끝나고 시작된 침묵 행진은 경찰의 통제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됐다. 마스크를 쓰고 강남스퀘어에서 출발한 참가자들은 긴 행렬을 이루며 강남역 일대를 행진했다. 시민들은 행진 행렬을 위해 길을 터주기도 했다. 참가자들이 들고 있는 '묻지마 살해는 없다' '용기가 되어 서로 돌아왔다' 등의 메시지가 적힌 손 팻말과 흰 국화를 유심히 보는 시민들이 많았다.

추모제 주최 관계자는 이번 집회에 대해 "올해 추모제는 '추모'에 초점을 맞춰 별다른 구호도 없이 조용히 진행했다"며 "최대한 단체적인 성격을 배제했다"라고 밝혔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행진을 마무리한 추모자들은 헌화를 하고 준비한 포스트잇을 출구 벽에 붙이며 희생자를 애도하고 변화를 연대를 다짐했다.

“이 집회에 온 오늘조차 자취방 문을 두드리는 집배원님께 문을 선뜻 열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두려움은 여전하지만 여성들은 변했고, 이 두려움은 모이고 모여 용기로, 변화로 바뀔 것입니다.” 

직접 제작한 피켓을 가지고 집회에 참석한 인천대학교 페미니즘 모임 ‘젠장’ 회원 조씨(24) ⓒ여성신문 진혜민
직접 제작한 피켓을 가지고 집회에 참석한 인천대학교 페미니즘 모임 ‘젠장’ 회원 조씨(24) ⓒ여성신문 진혜민

직접 제작한 피켓을 가지고 집회에 참석한 인천대학교 페미니즘 모임 ‘젠장’ 회원 조모(24)씨는 “2016년을 기점으로 우리는 매년 참여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처음 페미니즘 의제에 관심을 갖게 된 사건이다. 나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생각이 공감돼서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추모제의 주제에 대해서는 “묻지마 살해는 없다라고 제시하는 게 페미 사이드를 지우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나도 이에 동의한다”고 주장했다.

추모제에 참석한 남성 이모(28)씨는 “3년 전에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당시 사건을 뉴스로 접했는데 일파가 많은 강남역에서 일어났다는 것도 충격적이었다”며 “어떤 언론에서 이 사건에 대해 ‘묻지마 살인’이라고 보도했다. 나는 그때 오늘 추모제 주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여자친구와 추모 집회에 참석한 남성 A(29)씨는 "이 사건은 여성 혐오 살해 사건으로 이미 증거도 수사 정황도 명백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묻지마’라고 하는 것에 대해 분노했고 이렇게 모였다고 생각한다"며 “사실 젠더 감수성 없이는 이 사건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2016년 5월 17일, 34세 남성 김모씨는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처음 본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김씨는 살해 이유에 대해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진술했다. 김씨는 피해망상 등의 심신미약이 인정돼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보다 낮은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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