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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성폭력 사건마다 각 부처가 제각각 주도 신고체계 제대로 작동하려면 조사부터 지원까지 유기적으로 피해자 지원 예산 편성도 법무부 소관...여가부는 집행뿐

성폭력 사건, 여가부는 조사권한 없다

2019. 01. 18 by 진주원 기자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문화연대와 체육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15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리는 대한체육회 제22차 이사회 이사회장 앞에서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문화연대와 체육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15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리는 대한체육회 제22차 이사회 이사회장 앞에서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성희롱·성폭력 방지 정책의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가 조사 권한과 관련 예산 편성 권한조차 없어 개선이 시급하다. 성폭력 대책을 내실화하기 위해서는 여성가족부에 실질적인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재범 코치의 성폭행 의혹이 불거진 8일 이후 정부 측 대응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하고 있다. 문체부 노태강 제2차관은 9일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체육계 성폭력 비위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반면 여성가족부는 10일까지만 해도 장관의 입장 발표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문체부가 먼저 했기에 입장 발표까지는 검토되지 않았다”면서 관계부처 실무자급 회의를 다음주(14일 이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후 진선미 장관은 11일 체육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 관계부처 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급히 마련된 자리여서 실국장급이 참석했다는 게 여가부의 설명이다. 진 장관은 이 자리에서 “여성 폭력에 대응하는 범정부 컨트롤타워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각 부처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여성가족부의 역할로 “무료법률지원, 상담, 의료, 심리지원에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겠다”면서 사실상 피해자 지원에 방점을 찍었다.

이번 정부 대책에서 핵심은 피해 신고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느냐 여부다. 진 장관은 “문체부와 함께 신고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어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신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의 신고체계가 제대로 작동되려면 무엇보다 협력체계가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은 “성폭행 피해를 폭로한 신유용 선수가 피해자가 보호된다는 신뢰가 없는데 누가 제보하겠느냐고 비판했다”면서 “피해자 보호를 위해 조사와 지원이 긴밀하게 이어져야 한다. 각 부처의 유기적인 협력체계가 중요하다”고 했다.

문제는 여성 폭력이 모든 분야에서 발생하는 만큼 조사권한도 소관부처에 걸쳐져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연출가 이윤택 성폭행 사건 당시에는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문제를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직권조사했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고용노동부가 주무부처이다. 이번 체육계 성폭력 사건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부무처다. 조사권한이 각 부처에 있다보니 피해자 지원에 신속성이 떨어지고, 반면 조사권한이 없는 여성가족부는 사건에 개입하기가 어렵다보니 피해자 지원에도 한계가 있다.

2017년 말 한샘 직원의 성폭행 사건 당시 여성가족부가 소극적 태도로 비판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직권조사를 했던 반면 여성가족부는 조사권한이 없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15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제22회 이사회에 참석해 최근의 체육계 성폭력 사태에 대한 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15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제22회 이사회에 참석해 최근의 체육계 성폭력 사태에 대한 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김 부소장은 “여가부가 범부처 성희롱·성폭력 근절추진점검단의 컨트롤타워로 지난해 노력했다고 보지만, 성폭력 사건이 힘겹게 고발된 경우 조사 때부터 피해자 지원이 정교하게 연결되어야 할 필요가 클 때는 여성가족부의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매 사건마다 각 부처가 초기 조사를 주도하다 이후 지원을 못하기 보다 여성가족부가 조사부터 지원까지 안정감 있게 참여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 성차별·성희롱에 관해서는 여성가족부가 조사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남인순·김상희 의원은 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전혜숙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은 ‘성차별성희롱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 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남 의원은 지난해 4월 공공기관 내 성희롱 신고 처리를 위해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해서 필요한 경우 여성가족부장관이 사건조치현황 등에 대한 서면조사, 관계자 면담 또는 현장점검을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성폭력 사건 대응과 관련해 여성가족부에 조사권한만 없는 게 아니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은 여성가족부의 핵심사업이지만 예산 편성의 권한마저 없다.

여성가족부가 집행하는 성폭력 지원 예산 대부분이 일반 회계가 아니라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범피기금)으로 충당된다. 정부의 공식 예산이 아니라 형사처벌을 받은 이들이 내는 벌금으로 마련된다. 이 범피기금은 법무부가 관리한다. 여성가족부는 법무부로부터 이 기금을 예산으로 받아 사업을 추진하고 추후 평가를 받는다. 즉 기금 편성과 관리 주체는 법무부이고, 정책 실행 및 사업 부처는 여성가족부인 이원적 관리 체계다.

실무와 편성이 나뉘다 보니 효율성도 낮을 뿐만 아니라 집행 실적에 따라 평가점수를 받으면서 향후 사업 계획과는 반대로 예산이 감액되기도 한다. 2017년에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젠더폭력 근절을 외쳤음에도 2018년 성폭력 피해자 지원예산이 27억원 넘게 삭감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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