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팔순을 맞으신 아버지께서는 7∼8년 전부터 겪어온 치매가 깊어져 이젠 자식들도 못 알아보신다. 찾아뵙고 인사드리면 반가워하시면서도 여느 이웃을 만나신 듯 “예, 예!”라며 정중하게 대하신다.

몇 년 전부터는 가슴에 ‘치매 어르신’이라는 명찰을 달고 다니시는데 평소 둘째가라면 서운해 하실 정도로 깔끔하고 자존감 높으셨던 당신이 만약 이 상황을 안다면 얼마나 절망하실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메인다. 엊그제는 요양보호사님과 외출 중에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분에게 갑자기 발길질을 하셔서 그 분이 즉시 경찰을 부르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요양보호사님이 진땀을 빼며 사정을 설명드리고서야 간신히 신고를 철회하셨다니 죄송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치매는 가벼운 기억장애부터 심한 행동장애까지 수반한다. 가족이나 주변 분들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치매를 겪는 부모님이 계신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 비슷한 경험과 고민을 나누곤 한다. 특히 아버지가 치매인 경우 어머니가 그 돌봄을 도맡아 하시는 지라 딸로서 어머님께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죄송함과 애틋함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들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대부분 부부간 오순도순 정을 쌓기보다는 대가족 속에서 당신의 부모님과 자식들을 돌봐야했고, 농촌에서는 농사일까지 도맡아 하시며 쉴 틈 없이 살아오신 분들이다. 연세 드신 후 이제는 편안히 여생을 보내시나 싶었는데 느닷없이 치매 남편을 보살펴야 하는 어머니들…. 이렇듯 돌봄노동이 가족 내 구성원 중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 우리나라 치매 인구는 69만7000명이며, 이중 남성이 29%, 여성이 71%다(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 2016). 여기에서 특히 주목할 사항은 남성보다 여성의 치매 위험률이 2배 이상 높다는 점이다. 치매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들로 음주, 뇌손상, 운동부족, 우울증, 흡연 등을 들고 있는데 왜 여성들은 치매에 취약한 것일까?

그 원인 중 하나로 출산 시 호르몬 변화가 영향을 끼친다는 게 다수의 견해라고 하며, 임신기에 여성은 성호르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특히 출산 전후로 스테로이드 호르몬과 스트레스 호르몬이 동시에 높아지면서 그 영향이 노년기 치매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중앙일보 보도). 그렇다면 이 문제는 여성건강상 매우 심각한 과제이므로 여성의 치매 발병 원인을 규명하는 다각도의 연구가 요구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여성들이 치매에 걸릴 확률도 남성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가족 내 치매를 겪는 분이 있다면 돌봄노동까지 맡아야 하는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정부와 학계에서는 치매와 여성의 출산과의 관계 및 생애주기 전반에 관한 관심과 연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또 여성이 치매일 경우 그 돌봄은 누가 하고 있는지, 왜 요양원의 남녀 비율은 많게는 70~80%가 여성들로 채워지고 있는지 그 요인 분석도 필요하다.

더불어 누구도 결코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는 치매 예방을 위해 매일 30분 이상 걷기운동을 꾸준히 하고, 음주나 흡연을 줄이는 등 식생활 개선의 노력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치매를 겪고 있는 분들에게 주변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 돌봄은 꼭 가족 내에서 이른바 어머니를 비롯한 여성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돌봄으로 확대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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