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소연이 고산이 그랬듯 규정 위반해 우주인 탈락했다면

“​나라망신 다 시킨다” “김치녀 클라스” 운운 욕했으리라

 

여자라는 이유로 더 큰 욕 먹는 게 여성혐오면

이소연은 여혐의 희생자 “소연씨, 미안해요”

 

2008년 4월 무사히 우주여행을 마치고 귀환한 뒤 러시아에서 귀국한 한국 최초의 우주인과 예비우주인 이소연, 고산씨가 인천공항 CS아카데미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08년 4월 무사히 우주여행을 마치고 귀환한 뒤 러시아에서 귀국한 한국 최초의 우주인과 예비우주인 이소연, 고산씨가 인천공항 CS아카데미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07년 9월, 한국 최초로 우주에 나갈 우주인을 뽑는 경쟁은 고산의 승리로 막을 내리는 듯했다. 3만6000명의 지원자가 몰린 이번 공모에서 고산은 8개월에 걸친 치열한 심사 끝에 최종 탑승자로 결정됐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고산이 반출금지 서적을 무단 방출하는 치명적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그 바람에 고산과 함께 최종후보에 포함됐던 이소연이 얼떨결에 우주인이 됐고 이듬해 4월 우주에서 11일간 머물며 각종 실험을 하고 돌아왔다.

이소연은 우주여행자?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왔지만, 기사에 달린 댓글로 보건대 이소연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외모 문제부터 시작해 별의별 소리가 다 나왔지만, 가장 어이없는 비난은 이소연이 운 좋게 우주선에 탔을 뿐 우주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20대의 나이에 카이스트(KAIST)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수재에 러시아에서 시행한 1년 과정의 우주인 훈련을 마친 그녀가 왜 우주관광객일까? 물론 미국에서도 그녀에게 우주인 대접을 해주지 않는 모양이지만, 그건 우리나라가 우주산업의 불모지인 탓이지, 그녀 잘못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녀더러 우주여행자라고 부르면서 돌을 던졌다.

문제는 우주에 다녀온 후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 나온 언론 보도를 보자.

 

“이런저런 일정에다 강연에, 행사에 정신없이 다니다 보니 어느새 1년이 됐습니다. 사실 실감이 잘 안 나요. 바로 엊그제 우주에 갔다 온 것 같은데….”

1년 전인 2008년 4월 8일 러시아 우주선 소유스호에 몸을 싣고 우주로 향했던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31) 박사는 지난 1년 동안 국내외에서 강연을 한 횟수만 약 100회에 이르는 데다 방송 출연 등 언론 활동과 환경부의 기후변화대응 홍보대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우주에 다녀온 뒤 한 일이 강연과 방송 출연이 전부다! 물론 우리 정부가 260억을 들여 그녀를 우주로 보낸 건 그로 인해 우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질 것을 기대해서였으니, 사흘에 하루 꼴의 강연을 하는 게 영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이듬해에도 이소연의 일과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좋은 강연을 하려면 그 주제에 대해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항공우주연구원(이상 항우연)은 그녀에게 연구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홍보 활동만 시켰다.

“항우연은 이소연 박사를 외부강연 235회, 과학전시회. 행사 90회, 대중매체 접촉 203회 등 총 528회에 이르는 대외활동 일정을 소화하게 했습니다.” 이쯤 되면 항우연이 이소연을 이용해먹었다, 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건만, 남성으로 추정되는 한심한 남성들은 “저렇게 강연만 하고 다니면 연구는 언제 하냐?”며 이소연을 욕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이소연을 우주로 보낸 이후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다. 우주로 나갈 때 이소연은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우주산업에 뛰어들 것이며, 자신은 그 선구자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항우연은 이소연을 얼굴마담으로만 이용했을 뿐, 그녀로 하여금 우주인의 자부심을 갖게끔 해주지 않았다.

이소연이 2012년 항우연을 휴직하고 미국에 가서 MBA 과정을 밟은 것도 이해가 된다. 거기서 이소연은 재미교포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까지 한다. 이로 인해 이소연은 조국을 등졌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는데, 이건 미국시민권자와 결혼하면 자동으로 나오는 영주권 취득을 미국국적 취득으로 오해한 탓이었다. 이듬해 있었던 국정감사에서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왜 MBA를 하는 지가 문제가 됐다. 우주에 다녀온 뒤 2년의 항우연 의무복무규정을 채웠으니 뭘 하든 문제될 건 없었지만, 국회의원들은 260억원을 들인 것에 대한 책임 소재를 그녀에게서 찾으려 했다.

사실 그들이 따져야 할 것은 우주인을 우주에 보낸 뒤 후속조치가 없다는 점이었지만, 오히려 그들은 이씨가 강연료로 벌어들인 수입이 8000만원이나 된다는 점을 문제삼기까지 했다. 강연자가 강연료를 가져가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일을 겪으면서 이소연은 더 이상 항우연에 있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2014년 6월, 이소연은 결국 항우연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간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녀를 매국노라며 욕했고, 그 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욕 먹는 이유는 ‘여자라서’

이소연의 모든 행동을 옹호할 마음은 없다. 다만 그녀가 그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 욕을 먹은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고산이 아니라 이소연이 규정 위반으로 우주인에서 탈락했다고 해보자. 사람들은 “나라망신 다 시킨다” “김치녀 클라스” 운운하면서 이소연을 욕했으리라.

신기하게도 고산을 욕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그의 행동이 한국의 우주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즉 애국심에서 저지른 일이라고 옹호하기까지 했다. 이소연이 항우연을 퇴사하고 미국에 간 게 아쉬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녀가 국내에 있다고 해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교수가 돼 연구와 강의를 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상 우주개발과는 별반 관계없는 일을 해야 했으리라.

이소연과 같이 러시아에서 1년간 우주인 훈련을 받은 고산을 보라. 그는 그후 3D 프린터 등의 기술 지원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미국에 간 이소연보다 고산이 낫다고 할 수 있겠지만, 미국에 가서 일하는 사람이 수도 없는 판국에 이소연만 욕할 수 있을까?

“우주인 되면 광고도 찍고 돈도 벌고 어머니 아파트도 사드리고 싶어요.” 3만6000명의 우주인 후보가 30명으로 압축된 뒤 가진 인터뷰에서 이소연이 한 말이다. 훗날 이 인터뷰는 이소연이 욕을 먹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그녀가 우주인 최종 후보가 될 수 있었던 데는 20대 여성 특유의 솔직함과 발랄함이 느껴지는 이 인터뷰가 큰 역할을 했단다.

우리나라에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소연은 11일의 우주여행으로 인해 증오의 대상이 됐고, 국가의 무능이 더해져 결국 이 땅을 떠야 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원래 먹어야 할 욕보다 훨씬 더 큰 욕을 먹는 게 여혐이라면, 이소연은 여혐의 희생자다. 나라도 이 말을 해야겠다. 소연씨, 미안해요. 미국서 행복하시길 빌게요.

* 이소연 퇴사에 대해 한 네티즌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발 책임 있고 중요한 자리는 여자에게 주지 마라.” 과연 그런지, 다음 글에서는 남자의 책임감에 대해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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