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열린 제5차 촛불집회 ⓒ이정실 사진기자
26일 열린 제5차 촛불집회 ⓒ이정실 사진기자

기온은 곤두박질쳤지만 촛불은 더 뜨겁게 타올랐다.

26일 서울과 전국 주요 도시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에 주최측 추산 역대 최다인 190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눈이 내린 서울 도심 집회에는 150만명이 모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파행이 장기화되고 연루된 이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광장에 울려퍼진 구호도 그만큼 길어졌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황교안은 내려와라, 새누리는 해체하라, 재벌들도 공범이다’가 주된 레퍼토리였다.

시민들은 이날 오후 4시경 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의 요청에 따라 청와대를 동·남·서쪽에서 에워싸는 집회와 행진을 진행했다. 때마침 눈발도 눈에 띄게 잦아들면서 집회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오후 6시부터 열린 본행사에서는 첫 번째 자유발언자로 한국여성단체연합 박차옥경 사무처장이 무대에 올랐다. 박 처장은 “각종 시국선언, 동맹휴업, 가게 문을 닫으며 삶의 현장에서 퇴진 말하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고 있다. 주권자를 이긴 권력은 없다. 싸우는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했다.

이어 무대에 선 일가족 4명은 저마다 입담을 뽐냈다. 중학생 아들은 “요즘 국민들의 퇴진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있다”고 말해 시민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존중감을 가져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자존감보다 자존심이 높은 것 같다”며 “휘둘리지 않고 조종당하지 않기 위해 퇴진해서 자존감을 되찾으시라”고 충고했다. 아버지는 ”하야만사성이 가훈“, ”첫눈이 내려 하얗다, 하야하라“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김영호 의장은 “전봉준투쟁단이 현재 평택에 머물고 있는데 다시 시동걸고 청와대 진격을 준비하겠다”고 말해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어 “오는 30일 민주노총이 앞장서는 총파업에 농민은 농기계를 앞세우고 나올테니, 시민들은 각자의 일자리에서 일손을 놓고, 상점은 철시하고 학생들은 동맹휴업으로 힘을 합치는 전민중항쟁으로 승리를 맞이하자”고 밝혔다.

전남 순천에서 왔다는 고등학교 1학년생 2명은 “국민이 위임한 대통령 권한을 민간인 친구에게 넘긴 박근혜씨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국민은 없을 것”이며, “서민들과는 손도 잡지 않으려는 공주님이 어떻게 민심을 대변하겠냐”고 발언해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촛불 대신 횃불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는 시민들 ⓒ이정실 사진기자
촛불 대신 횃불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는 시민들 ⓒ이정실 사진기자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오는 30일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맞추어 시민들은 일손을 놓고 불복종운동을 벌이고, 노점상과 소상공인들은 가게의 문을 닫으며, 학생들은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나와 거리로 나와 달라”고 호소했다.

세계 20개국 53개 도시 동포들이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는 모습이 영상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뉴질랜드, 미국, 브라질, 영국,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조지아, 러시아, 중국, 캐나다, 태국, 터키, 프랑스, 피난드, 호주, 네덜란드, 독일, 아일랜드 등이다.

이날 무대에 오른 첫 번째 가수는 안치환이었다. ‘자유’, ‘광야에서’,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불렀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는 ‘하야는 꽃보다 아름다워’로 바꿔 시민들과 함께 노래했다. 안 씨는 “해발 4000미터가 넘는 킬리만자로에 다녀왔었는데 고산병으로 죽을뻔 했지만 비아그라를 쓰지 않았다”며 대통령을 조롱하기도 했다.

깜짝 등장한 가수 양희은은 ‘아침이슬’, ‘행복의 나라로’, ‘상록수’를 불렀다. ‘끝내 이기리라’는 후렴구가 시민들의 목소리로 광장에 울려퍼졌다.

주최 측의 말처럼 광화문광장은 촛불노래방이 됐고, 그중 단연 인기곡은 ‘아리랑목동’을 개사한 ‘하야송’이었다.

오후 8시 정각에는 일제히 촛불을 끄고 1분 후 점등하는 국민저항운동을 선보였다. 이후 청와대 방향 행진을 시작해 청와대로 향하는 모든 길목을 시민들이 가득 메웠고 경찰을 향해 차벽을 열어달라고 외쳤다.

본집회에 앞서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각 단체별 소규모 집회가 진행됐다. 페미니스트 시국선언,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시국선언, 전국농민대회, 대학생시국회의, 청소년시국대회 등이 저마다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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