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최고 여성체육인에 선정된 양궁 국가대표 장혜진 선수 

양궁 시작 19년 만에 첫 출전한 리우올림픽서 2관왕 거머쥔 대기만성형

만년 4위 꼬리표 떼고 ‘즐기는 양궁’으로 금 과녁

 

“최선을 다해 즐기자. 그리고 결과에 만족하자.”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양궁 국가대표 장혜진(29·LH) 선수는 몇 번이고 이 말을 되뇌었다. 활시위를 당긴지 19년 만에 처음 서는 올림픽 무대였다. 그는 또래 선수들이 10대 때 두각을 드러내고 4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을 마냥 지켜봐야 했다. 누구보다 올림픽 출전을 꿈꿨기에 매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고 했다. 물론 금메달이 욕심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올림픽 출전 전부터 ‘2관왕’을 목표로 달려왔다. 경기를 즐긴다면 결과는 따라올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스물아홉, 늦깎이로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2관왕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그는 ‘즐기는 양궁’이 무엇인지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한국 양궁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서향순 선수가 금메달을 딴 이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만 빼고 모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다. 서향순에 이어 김수녕(88년 서울)-조윤정(1992년 바르셀로나)-김경욱(96년 애틀랜타)-윤미진(2000년 시드니)-박성현(2004년 아테네)-기보배(2012년 런던)가 황금 계보를 이어왔다. 그리고 여기에 장혜진이라는 이름이 새롭게 추가됐다.

2016년은 인생 최고의 해

생애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장혜진 선수는 2016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 최고상인 윤곡여성체육대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기쁨을 안았다.

“올해는 제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해였어요. 힘들었던 순간도 있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한 해였던 것 같아요. 나중에 제 자식들에게도 ‘엄마의 2016년’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을 정도로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기뻤는데 윤곡여성체육대상까지 받게 돼 정말 영광이에요.”

서울 잠실에 위치한 서울체육고등학교 양궁장에서 마주한 그는 자신을 ‘대기만성형 선수’라고 칭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 4학년, 열 살 무렵 양궁을 시작했지만 처음 태극마크를 단 건 2010년이었다. 첫 개인전 금메달은 2014년에서야 땄다. 터키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양궁연맹(WA) 3차 월드컵에서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국가대표는 실력이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라고 생각했다.” 장혜진 선수의 말이다.

“어렸을 때는 전국대회에도 나가지 못할 만큼 실력이 부족했어요. 국가대표는 꿈도 못 꿨죠.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전국대회에서 메달을 땄어요. 처음 메달 맛을 본 거죠. 그러면서 목표가 커졌어요. 조금씩이요. 대학교 3학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국가대표를 꿈꿨어요. 국가대표 선발전을 뛰면서 점점 목표가 확고해진 거죠.”

태극마크를 달기는 쉽지 않았다. 한국 양궁 대표 선발전은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고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 선발전도 그랬다. 장혜진 선수는 선발전에서 3위로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당시 네 명을 뽑은 뒤 국제대회 성적을 토대로 한명을 떨어뜨리는 방식 탓에 결국 런던 올림픽엔 참가하지 못했다. 4위의 설움이었다. 매사에 긍정적인 그도 이때만큼은 아주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런던 올림픽 선발전이 끝나고 많이 힘들긴 했어요. 다시 시작하더라도 과연 서른 살에 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까, 이 힘든 선발전 과정을 또 견딜 수 있겠느냐는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힘들다고 해서 선수 생활을 그만둘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할수록 운동에 정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생각을 고쳐먹었죠. 그런 생각들로 제 목표를 낮춘다는 게 선수로서 제게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숱한 시련에도 절망은 없다

그때부터 리우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4년을 악착같이 활쏘기에 매달렸다. 출전 모습과 자세를 모니터링하면서 바꿀 것은 교정하고 부족한 것은 채워나갔다. 시련은 4년을 기다린 리우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도 이어졌다. 컨디션 난조로 1차 선발전에서 6위에 그친 것이다.

“1차 선발전이 끝나고 가장 크게 좌절했었어요. 8명 중에 6위를 했으니까요. 이미 ‘장혜진 끝났다’는 말도 나왔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아직 경기가 남았는데 포기해버리면 분명히 후회가 남을 것 같았어요. 2차 선발전까지 남은 열흘 동안 밥도 안 먹고 오로지 활만 쐈어요. 정말 올인 했어요. 활을 쏘면서 마인드컨트롤을 한 거죠. 그때만큼 간절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2차 선발전에서 1등을 했고 최종 점수 3위로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어요.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어요.”

또 한 번의 시련은 리우 올림픽 기간에 벌어졌다. 개인전 준결승에서 팀 동료이자 친구인 기보배 선수를 만났다. 경기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이 기보배 선수의 승리를 점쳤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리스트로서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수는 종잡을 수 없는 ‘도깨비 바람’이었다. 장혜진 선수는 초당 6m의 바람에 1세트에서 고전했다. 갑자기 불어온 강풍 탓에 연습 때도 쏘지 않는 3점을 쏘는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그는 주저앉는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음번 화살을 10점 과녁에 꽂으며 승리할 수 있었다. 올림픽은 운동선수들에게 꿈의 무대인 만큼 긴장이 될 만도 하지만 장혜진 선수는 경기 중간중간 환한 미소를 지었다. 특히 실수하거나 점수가 잘 안 나올 때 특유의 웃음이 등장했다. ‘장긍정’. 매사에 긍정적이어서 붙은 그의 별명이 실수의 순간에 빛을 발했다.

그에게는 ‘짱콩’이라는 또 다른 별명이 있다. 1m58㎝인 키가 작은 장혜진의 별명이다. 키가 작은 ‘땅콩’ 중 ‘짱’이라는 의미로 친구가 지어준 것이다. ‘짱콩’이 적힌 작은 글씨판을 달고 시합에 나선 그는 별명 그대로 ‘짱’이 됐다.

 

2016 브라질 리우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 대표팀 장혜진이 메달에 키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16 브라질 리우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 대표팀 장혜진이 메달에 키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초등 4학년에 시작한 양궁

양궁을 시작한 지 19년. 20년 가까이 양궁을 해온 그에게 “양궁이 어떤 점이 그리 좋아 여태까지 해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장혜진 선수는 양궁을 처음 시작한 초등학교 시절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 친구를 따라 양궁장에 처음 가봤어요. 그전까지는 양궁이 어떤 운동인지도 몰랐는데 마냥 신기해 보이고 재밌어 보였어요. 친구들과 다 같이 모여서 양궁장에 있는 시간이 즐거웠어요. 훈련이 끝나면 코치 선생님 댁에 가서 밥도 먹고 함께 공기놀이도 했거든요. 야간훈련을 할 때면 아빠가 운동장에 차를 세워놓고 헤드라이트 불빛을 켜서 그 불빛에 활을 쐈어요. 그런 게 다 추억이죠. 훈련도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양궁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해온 양궁이 그냥 좋았어요.”

양궁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도 초등학교 시절 처음 양궁을 가르쳐 준 박은정 코치를 꼽았다. 그에게 있어 양궁은 고되고 힘든 운동보다는 웃음이 묻어나는 추억이었다.

올림픽이 끝났고 금메달도 목에 걸었지만 장혜진 선수의 양궁 인생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숙소 생활을 하는 그는 매일 7시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30분부터 운동을 시작한다. 정오에 아침 운동이 끝나면 점심을 먹고 다시 1시 30분부터 6시까지 오후 운동에 들어간다. 주말에는 그도 친구를 만나 영화도 즐기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잠도 늘어지게 잔다. 하지만 늘 느슨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그의 일상이다. 요즘은 연습장으로 이용하던 경기 하남시 양궁장 대신 서울체고 양궁장에서 난로를 틀어놓고 활을 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팀 전용 양궁장이 없어 여기저기 연습장을 찾아 옮겨 다니는 게 안타까웠다.

“올림픽이 끝났고 제 일상도 많이 달라졌어요. 많은 분이 알아봐주시고 응원도 해주세요. 올림픽이 끝났다고 해서 제 운동 인생이 끝난 건 아니거든요. 다음 달에도 국제대회가 있고 내년 3월이면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려요. 이렇게 매일 작은 목표들을 조금씩 성취하다보면 어느새 2020년 도쿄 올림픽도 도전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숱한 시련에도 포기를 모르던 그는 후배들에게도 “포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절망의 순간에도 해사한 미소를 짓는 ‘장긍정’ 다운 조언이다.

“운동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더라도 얼마나 즐길 수 있는지, 즐겁게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전 이번 올림픽에서 경기마다 100% 즐겼어요. 그래서 굉장히 행복했어요. 잘 안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는 언젠가는 꼭 따라오니까요.”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