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 리가 남긴 역작… 세상 모든 사람은 평등

온전한 존재로 동등한 대우 받아야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하퍼 리는 이 작품 한 권으로 퓰리처상을 받는 등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반열에 올랐다. 평생 은둔하며 어떤 작품도 내놓지 않던 그가 2015년 돌연 『파수꾼』이라는 작품을 발표했고, 2016년 2월 영원히 독자 곁을 떠나 영면에 들어갔다. 흥미로운 것은 『파수꾼』이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작품 격이면서도, 전개되는 내용은 『앵무새 죽이기』와는 정반대라 독자들의 의구심을 자아냈다. 때문에 미국 현지에서는 하퍼 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가족 등에 의해 출간된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 아닌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앵무새 죽이기』의 화자였던 어린 스카웃은 『파수꾼』에서 26세의 어엿한 숙녀로 자라 더 이상 애칭 ‘스카웃’이 아닌 ‘진 루이즈 핀치’로 불리는 진보적 여성이다. 1930년대 배경의 『앵무새 죽이기』의 시간은 『파수꾼』에서 1950년대로 옮아왔고, 스카웃은 여전한 흑인 차별에 깊은 고뇌를 거듭한다. 진 루이즈 핀치의 고뇌에 불을 당긴 것은 아버지 핀치 변호사다. 핀치 변호사는 진 루이즈 핀치에게 ‘양심의 파수꾼 같은 존재’였다. 엄혹한 1930년대부터 흑인을 변호하면서 피부색에 상관없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핀치 변호사 아닌가.

하지만 진 루이스 핀치는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아연실색한다. 아버지의 집에서 흑인 비하 일색인 소책자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딸에게 아버지는 증오와 극복의 대상이 된다. 실망과 분노, 갈등과 대립은 진 루이스 핀치를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시킨다. 『앵무새 죽이기』의 주인공인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가족이 위협당하는 와중에도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쓴 흑인 청년을 변호하면서 정의로운 남성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파수꾼』에서 그는 72세 노인으로 백인우월주의단체 회합에 참석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었다. 어쩌면 세월이 그를 바꾼 것인지도 모른다.

 

『파수꾼』의 배경이 된 1950년대 앨라배마 주는 흑인 인권 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이다. 그만큼 백인의 반발도 매우 심한 곳이기도 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 이제 막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진 루이즈 핀치는 세상의 부조리와 아버지의 변절(?)에 괴로워한다. 아버지의 변화 혹은 변절은 어쩌면 진 루이즈 핀치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은 진 루이즈 핀치를 어른으로 성장시켰다.

두 작품의 연관성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파수꾼』에 대한 논란이 있다고 해도 『앵무새 죽이기』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파수꾼』도 한 인간의 성장과 사회적 변화를 적시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편협한 생각이 가득한 우리 시대에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하퍼 리에게 『앵무새 죽이기』와 『파수꾼』의 연관성을 물을 수 없지만, 그가 두 작품을 통해 남긴 족적만큼은 분명하다. 세상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 그리고 온전한 존재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카웃에서 진 루이즈 핀치로 성장했듯 세상 모든 독자들도 그렇게 함께 성장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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