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두황 세그루패션고등학교 교장

“실업계고교 사회 편견 못 바꾸면 대한민국 미래 없어”

부임 3년만에 취업률 30%에서 84%로...."누구나 인재가 될 수 있어요”

일자리의 질에도 엄격한 기준 적용해 조건 해당 업체만 학생 추천

 

김두황 세그루패션디자인고등학교장 ⓒ이정실 사진기자
김두황 세그루패션디자인고등학교장 ⓒ이정실 사진기자

직업교육이 강화되고 있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하는데, 기업들은 쓸만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설상가상 저출산으로 노동인구까지 줄어들고 있다. 정부는 해법 중 하나로 현재 전체 학생수의 19%에 머물고 있는 직업계 고등학교 정원을 2022년까지 30%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늦은 대책이자, 미봉책으로 끝날 가능성도 크다는 지적이 많다. 

실업계 여자 고등학교가 나가야할 방향을 살펴보기 위해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세그루패션디자인고등학교 김두황(60) 교장을 만났다. 세그루는 3년 전만 해도 취업률 30%대였다. 학부모나 학생들이 가야할 이유를 찾기 힘든 학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난해 취업률 84.3%로 서울시 특성화고 전체 2위를 기록하며 주목받고 있다. 김두황 교장 부임 2년만에 이룬 성과다.  

김두황 교장은 “특성화고 정책이 기회도 많고 발전가능성도 큰 좋은 제도입니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른 결과는 천차만별입니다. 올해 졸업반 학생들이 우리은행·국민은행에 합격했습니다. 이 아이들의 중학교 졸업 성적이 백분율 84%, 82%로 최하위권이었는데 유명 대학을 나와도 입사하기 힘든 은행에 들어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서울대 합격한 것보다 더 의미있는 일”이라고 기뻐했다.

그가 은행 합격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단지 좋은 취업 자리라서가 아니다. 꿈이 없던 아이들이 정부 제도와 학교의 노력, 학생들의 희망이라는 삼박자로 이루어진 성과이기 때문이다. 2014년 세그루에 부임하던 날, 꿈이 없는 아이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실업계 학교는 30년 넘는 교직 생활에서 처음이었다. 평생 인문계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오랫동안 고3 부장교사를 맡았던 대입 전문가였다. 실업계 학교에 대해 아는 것은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첫 실업계 학교 발령 후 막연함도 잠시,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이 시급했다. “중학교 때는 다들 자기 상황에 관계없이 좋은 대학을 가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져요. 졸업 무렵엔 현실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갈 곳이 없어 특성화고로 떠밀려 오는 아이들이 대다수예요. 꿈은커녕 성적인 전부인 세상에서 관심을 받지 못해 풀이 죽어 있어요. 특히 이 지역은 서울에서 차상위 계층, 결손 가정, 자살위험군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어서 더 그래요.”

김 교장은 집무를 시작하며 학교 현관에다 ‘너의 소중한 꿈이 우리의 미래가 되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된다’는 현수막부터 걸었다. 아이들이 꿈꾸게 하는 것이 곧 그의 꿈이 됐다.

학교 운영 상황을 들여다보니 할 일이 태산이었다. 운영 체계도, 교사들의 근무 기강도, 교육 프로그램도 문제 투성이었다. “학생들이 왜 꿈이 없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어요. 교사들이 툭하면 수업을 빠지고 결근했어요. 담당 교사가 수업에 못 들어가면 대체 수업을 하는 교사에게 시간당 5000원을 지급하는데 한 달 45만원까지 나갔으니 정말 심각했죠.”

교사들을 설득하고 나섰다. ‘아이들은 가르치기 나름’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밑바닥에 있던 아이들도 동기부여만 되면 판·검사가 되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동양철학자 조용헌 교수의 저서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는 선생들을 설득하는데 도움이 됐다.

“책에는 부모가 자식을 인재로 키우기 위해 헌신과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어요. 어떤 아이들이 오더라도 내 자식 키우듯 노력하고 사랑을 베풀어서 인재로 키워내야 한다는 게 저의 믿음입니다. 그럼 누구든지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렇지만 내 자식 키우는 것도 힘든데, 남의 자식을 인재로 키우려면 얼마나 더 힘들겠어요. 훨씬 더 노력해야죠.”

교과 과정에서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직업교과 비율을 60%로 올렸다. 자기 분야의 자격증도 평균 5~8개씩 취득할 수 있게 지원한다. “인문계 학교만 사교육 받는 게 아니에요. 실업계도 자격증 따려면 과목당 수십만 원 씩 내고 학원을 다녀야 해요. 가정 형편이 안 좋은 아이들이 많으니 학교에서 보충수업으로 저렴하게 제공해요. 자율학습도 하는데 인문계고보다 참여율이 더 높아요.”

 

기업 현장실습 중인 학생들 ⓒ세그루패션디자인고등학교
기업 현장실습 중인 학생들 ⓒ세그루패션디자인고등학교

세그루는 중소기업청, 구청 등의 각종 공모전 사업에 선정돼 창업 지원, 현장 실습, 동아리 활동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후 실적을 통해 특성화고 중소기업인력양성사업 우수사례 전국1등, 창업진흥원의 '청년비즈쿨' 사업으로 중소기업청장을 수상했다. MOU를 체결한 업체 수가 부임 전 34곳이었지만 현재 180곳으로 늘었다. 북서울신협에서 금융업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신협과 함께 ‘소소한 적금’이라는 것을 기획하고 고금리로 시판까지 성사시켰다. 이 상품은 ‘소’녀들이 ‘소’녀였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자는 사회적 가치를 담았고 수익의 일부는 할머니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패션디자인 학교인 만큼 기업과 협력해 구두도 만들고 한복도 짓는다. 학교의 설립재단인 DFD그룹의 구두 브랜드인 ‘소다(SODA)’와 직무역량 프로젝트를 실시해 학생들이 시장조사에서 완제품 제작까지 참여하기도 했다.

취업률이 부임 첫해인 2014년 68.9%, 2015년 84.3%로 급상승했다. 서울의 여자 특성화고 전체 2위로 뛰어올랐다. 각종 대회와 정부 사업 평가에서 상도 휩쓸었다. 유명 대학을 나와도 들어가기 힘든 은행에 선배가 합격했다는 소식은 아이들에겐 꿈이자 현실 그 자체가 됐다.

김 교장은 이같은 성과가 학생도, 학부모도 아닌 교사들의 공이라고 강조했다. “좋은 학교는 우수한 학생들이 찾아오니 가르치기 편해요. 스트레스 덜 받고 신경 쓸 일도 적어요. 우리는 열 배, 스무 배는 더 신경 써야 한다고 당부해요. 선생님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학교가 상을 받고 취업률이 올라간 거예요. 반대로, 누가 이 학교를 3류로 만들었을까요? 학생도, 학부모도 아닙니다. 다 교사들이 한 겁니다.”

학생의 취업은 특성화고의 존재 목적이기도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볼 때 미래가 걸린 일이기도 하다. 한국은 국가 재앙인 저출산 현상으로 당장 노동력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다시 말해 실질생산가능인구 감소와 고령자 부양비용 급증을 1인당 노인 부양 인구가 2010년에는 0.43명에 불과하지만 2050년에는 1.68명으로 부양비용이 4배 증가한다.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는 학벌사회에서의 심각한 사교육 문제에다 좋은 대학까지 나와도 취직하기 어려운 환경 때문이다. 그 대안으로 직업교육을 강화해 실업계를 졸업하더라도 취직이 잘되고 성공할 수 있는 사회 여건을 조성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국가사·실업계고등학교장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특히 선진국과 한국의 상황이 크게 다르다고 설명했다. “OECD국가 중 우리나라가 고학력 욕구가 가장 강합니다. 대졸자가 많다보니 고졸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다 차지하고 있어요. 독일의 입직 연령은 20세 정도예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직하는 게 일반적이지요. 그 교육으로 충분하다는 뜻이에요. 우리는 비싼 대학 등록금 내고 졸업 후에도 취업이 안돼서 27세에 입직합니다. 대학 진학으로 인해 사회적 비용 손실이 큽니다.”

정부는 국내 직업계고 정원을 2020년까지 30%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렇게 해도 선진국에 한참 모자란다. 스웨덴, 독일 등은 한국과 정반대로 직업계가 70%를 차지한다. 일찍 취업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학생들이 만든 작품 전시물 앞에 서있는 김두황 세그루패션디자인고교장 ⓒ이정실 사진기자
학생들이 만든 작품 전시물 앞에 서있는 김두황 세그루패션디자인고교장 ⓒ이정실 사진기자

김 교장은 취업률도 중요하지만 특히 여학생들의 일자리의 질에 엄격한 기준을 두고 있다. “전에는 취업 자리를 선생이 발굴하는 대로 학생들을 보냈어요. 이제는 4대 보험, 연봉 하한선 1700만원, 업체 연매출 10억원으로 정해서 조건에 해당되는 업체만 아이들을 추천합니다. 내년엔 연봉 1800만원으로 올릴 생각입니다. 실업계 명문 서울여상 졸업생의 초봉은 2000만원이 넘어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학교만 믿고 일하러 가는 거잖아요. 선생들에게 자기 딸이라 생각하고 믿을 만한 회사를 발굴해서 보내자고 했지요.”

학생들의 취업이 김 교장의 지상 과제이긴 하지만, 꿈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문화 경험과 체험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교육철학이다. 국가관 확립을 위해 동아리를 짜서 매년 독도 탐사, 한라산 등반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그곳을 가기 위해 자율적으로 1년 내내 지리와 역사를 공부한다. 교내 합창대회도 개최했다. 기타도 40대를 구입해 배우게 한다. 배드민턴 역시 의무교육이다. 전교생이 참가하는 합창대회도 열고, 오페라, 뮤지컬도 정기적으로 관람한다.

“특성화고가 아무리 ‘선취업·후진학’이 정책이라고 하지만 나중에 정말 대학을 가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요. 인문계와 달리 여기 아이들 상당수는 이 학교, 세그루가 최종학력이에요, 실업계를 나왔지만 사회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누구보다 자기 인생을 가치있고 보람있게 살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합창대회를 제안했을 때 아이들은 물론 교사들까지도 뭐 이런 걸 다 시키느냐고 불만이 굉장했어요. 그런데 대회를 치른 후 반응은 천지차이예요. 합창은 하모니예요. 화합과 배려에서 느끼는 희열과 성취감은 굉장하지요. 인문계 학생들이 교과서만 보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경험이지요.”

김 교장은 직업교육 확대 정책 정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반드시 역점을 둬야할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는 일이다.

“특성화고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고 있지만 사회 인식은 여전히 냉랭해요. 요즘 신입생 선발 기간이라 입학설명회를 하러 중학교에 일일이 찾아다니고 있는데 교사도 학생도 특성화고가 단지 성적 낮아서 가는 곳이라 생각해요. 학교에서 겨우 설득하고 나면 집에서 부모님이 또 반대해요. 중학교 최하위권 아이의 부모도 인문계에 들어가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을 정도니까요.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수요가 없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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