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의견] ‘광화문 민중총궐기 집회에 여성이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대한 의견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여성대회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에 참석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변지은 기자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여성대회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에 참석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변지은 기자

11월 15일자 <여성신문>에 ‘바람계곡의 페미니즘’(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진이 해당 페이지에 올린 글, ‘광화문 민중총궐기 집회에 여성이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바로가기)’가 실렸다. 이 글에서 글쓴이는 여성들이 '집회에 나갈 필요가 없는 이유' 7가지를 말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집회 현장에서 여성을 상대로 벌어지는 ‘엉만튀’, ‘슴만튀’, 성추행 범죄”와 “여성에 대한 온갖 모욕적인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 대해 “[집회] 주최 측이 아무런 대책을 세워 놓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현재의 집회는 ... 거대한 맨스플레인일 뿐 여성의 위한 싸움이 아니”고, “대통령이 바뀌든 바뀌지 않든 여성의 삶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광화문 집회에 나가는 것은 성범죄자들의 소굴로 자진해서 걸어 들어가는 것과 다름 없다.”

광화문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해 무척 고무된 나는 위 글에 동의하기 어려운데, 우선 사실관계부터 바로잡고 싶다.

집회 현장에서 일부 사람들이 여성 차별적이고 청소년을 비하하는 등 부적절한 발언들을 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었다. 또 언론 보도나 트위터의 제보들을 보면, 11월12일 집회에서 실제 성추행도 벌어진 듯하다. 그러나 이런 발언과 행위에 대해 주최 측과 참가자들이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고, 집회장이 “성추행과 성적 모욕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는 묘사도 과장이다.

예컨대 ‘민중총궐기투쟁본부’와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11월5일 집회에서 사회자가 여성비하적 욕설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 사과문을 발표했다(당일 그 자리에서 사회자의 사과도 있었다). 주최 측은 사과문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이에 항의했고 주최 측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뼈 아프게 반성하고 있다”며 “대회에서 성별, 연령 등 참여자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 평등한 집회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11월10일 자유 발언대에서는 ‘박근혜를 비하하며 여성과 약자를 비하하지 말자’, ‘청소년도 집회 참가 권리가 있다’ 등의 주장이 큰 호응을 얻었다. 오히려 “고등학생한테 왜 발언권을 줘” 하며 집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을 무시하고 집회 진행을 방해한 한 참가자는 야유를 받으며 집회 장소에서 쫓겨 났다.

요컨대, 집회에서 성차별적 말과 행동을 한 사람들은 결코 다수가 아니었고 그들은 많은 참가자들의 정당한 비판을 받았다. 일부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전체 운동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 부분과 전체, 개인과 단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12일 서울 세종로, 태평로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수십만의 참가자가 촛불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12일 서울 세종로, 태평로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수십만의 참가자가 촛불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화여대학교 학생들의 싸움은 ‘철없는 고립주의’ 혹은 ‘엘리트들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난과 함께 철저히 무시당했”고, “이 투쟁에서 부각되는 여성은 이대생도 집회 참여 여성도 아닌 박 대통령과 정유라 씨가 전부”라는 주장 역시 온당하지 않다.

10월29일, 11월5일, 11월10일, 11월12일 모두 연단에서 이화여대 학생들이 발언했는데,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집회에 참가한 이대 학생들도 이런 환호에 고무됐는데, 이대 익명게시판에는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우리[이화여대] 엄청 지지받는다” 하며 쓴 후기들이 올라 왔다.

나는 이대 졸업생으로서 이대 투쟁을 처음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며 함께 참가했었는데, 이대 학생들의 본관 점거 투쟁 초반부터 전국의 여러 총학생회들이 낸 지지 성명이 쏟아져 나오는 등 상당한 지지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대 본관 농성을 주도하는 학생들이 ‘외부 세력과의 연관’을 우려해 이런 지지를 거부했다.)

둘째, 박근혜가 퇴진하든 말든 여성의 삶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박근혜가 4년 동안 추진한 온갖 악행들은 평범한 여성들의 삶을 더 나락으로 빠뜨렸다. 박근혜는 시간제 일자리를 대폭 늘려 여성들더러 단시간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면서 육아를 병행하라고 강요했다. 무상보육도 후퇴시켰다.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계급에게 전가하기 위해 임기 내내 적극 추진한 노동 개악도 여성 노동자들의 조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뿐이다. 최근에는 낙태 처벌을 강화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박근혜 퇴진’ 요구에는 바로 이런 악행들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박근혜가 대중운동에 밀려 퇴진한다면 그가 벌인 이런 악행들에도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히려 여성들이 이 운동에 적극 참가해서 박근혜의 이런 악행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여성들의 요구를 박근혜 퇴진 운동과 연결시켜야 한다.

또, 박근혜 퇴진운동에 이미 많은 여성들이 능동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11월12일 시청광장에서 포문을 연 것도 대다수가 여성인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집회에서는 여성 청소년, 대학생, 청년, 노동자, 노인 등을 만날 수 있는데, 이들이 이 운동의 중요한 일부다(“시위녀로 소비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대중운동이 실제로 박근혜를 퇴진시킨다면 여성들의 자신감이 크게 높아질 수 있고, 이것은 성차별에 맞서며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여성들의 활동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

셋째, 운동 내 일부의 성차별적 언사와 행동에 실망해 운동 자체를 보이콧하기보다는 운동 안에서 그들과 논쟁하는 게 필요하다.

거대한 운동은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 당긴다. 그래서 대중운동 내 의식은 언제나 불균등할 수밖에 없다. 지금 박근혜 퇴진 운동에는 민주당 지지자, 진보정당 지지자, 사회주의자, 운동에 처음 참가해 본 학생들, 페미니스트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 퇴진에 동의하더라도 여성이나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는 후진적인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부 사람들을 보고 실망해 운동 자체를 보이콧 한다면 운동 안에서 성차별적 사람들의 영향력을 방치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운동에 적극 참가해서 성차별적 사람들과 논쟁을 적극 벌여야 한다. 그것이 운동의 진정한 단결을 위해서도, 좀더 성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도 좋다.

부패하기 짝이 없고 온갖 사악한 정책으로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망쳐 온 박근혜는 즉각 퇴진해야 한다. 광화문 집회에 더 많은 여성들이 참가해 박근혜 퇴진운동에 힘을 보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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