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시위라 평가받은

11.12 백만 촛불집회서

여성들 성추행 피해 입어

“시위에서조차 성추행 만연”

 

씨냉 작가가 그린 집회 내 성추행 관련 일러스트레이션. ⓒ일러스트레이터 씨냉
씨냉 작가가 그린 집회 내 성추행 관련 일러스트레이션. ⓒ일러스트레이터 씨냉

 

씨냉 작가가 그린 집회 내 성추행 관련 일러스트레이션. ⓒ일러스트레이터 씨냉
씨냉 작가가 그린 집회 내 성추행 관련 일러스트레이션. ⓒ일러스트레이터 씨냉

 

씨냉 작가가 그린 집회 내 성추행 관련 일러스트레이션. ⓒ일러스트레이터 씨냉
씨냉 작가가 그린 집회 내 성추행 관련 일러스트레이션. ⓒ일러스트레이터 씨냉

“교복 입고 행진하던 딸아이가 수차례 성추행을 당했다고 한다. 배낭아래 손 넣기, 겨드랑이에 손 넣기, 엉덩이 만지기 등. 다음엔 아이들 따라다니며 감시해야겠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시민 100만 명은 하나 된 마음으로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었다. 이날 집회는 지역·세대·이념을 아우르는 평등·평화 시위라 평가됐고, 언론들은 시민들이 성숙한 시위문화를 보여주며 평화적인 집회를 이뤄냈다고 보도했다. 100만 명이 밀집한 시위에서 충돌이 없었다는 점도 이번 시위의 긍정적인 면으로 부각됐다. 하지만 언론의 평가와 달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시위 현장에서 성추행을 당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집회 현장에서는 어린 아이의 얼굴을 “예쁘다”며 쓰다듬거나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는 등 각종 성추행이 발생했고, 트위터에는 “오늘 광화문에 혼자 시위하러 간다. 가서 여고생들 구경하면서 스트레스 풀 수 있겠다. 어차피 나는 고딩이만 데리고 가면 2차 성공. 가서 고딩들한테 접근해야겠다” 등의 성범죄를 예고하는 듯한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또 당시 집회 현장에서는 성추행을 범한 50대 남성이 체포돼 지구대로 이송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위 이후 SNS에는 성추행 피해 사례들이 쏟아졌다. 특히 트위터를 중심으로 누리꾼들은 자신이 경험한 성추행이나 주변에서 보고 들은 사건들을 기록해 올렸다. 다음은 지난 12일 트위터에 올라온 시위 성추행 사례들이다.

“광화문에 다녀왔는데 붐비는 와중에 어떤 할아버지한테 성추행을 당했다.”

“광화문 성추행범 한 두 명이 아니었다. 가방 메고 있었는데도 외투 안으로 손이 들어왔었다.”

“세월호 분향소에서 추모하고 저녁에 동생을 만났는데 광화문 광장에서 치한을 만났다고 했다. 고등학생인 동생이 누군가 계속 엉덩이를 만졌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내 권리를 찾으러 나온 시위에서도 성적으로 유린당해야 하나.”

“시위 오신 분들은 조심하세요. 헌팅이 목적인 것 같은 사람 여럿 봤어요. ‘안녕하세요. 혼자 오셨어요? 이따 많이 추우시면 야식 먹으러 갈래요? 몇 살이에요? 젊은 여성분이 대단하시네요. 어디 사세요?’라는 식으로 멘트도 다 똑같다.”

“아까 페미니스트 진영에 와서 어떤 아저씨가 ‘학생들 기특하다’ ‘선생이냐 예쁘다’라며 카메라 꺼내서 찍으려고 했다. 찍지 말라고 막으니까 ‘예뻐서 그랬다’고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남성들의 성추행 범죄가 자랑처럼 올라오기도 한다. “광화문으로 오지 말라. 미어터진다. 하지만 슴만튀(여성의 가슴을 만지고 도망가는 성추행 행위를 일컫는 은어) 5번 했다”고 올리는 식이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12일 서울 세종로, 태평로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수십만의 참가자가 촛불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12일 서울 세종로, 태평로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수십만의 참가자가 촛불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일련의 성추행 사건들로 여성에게 11.12 백만 촛불집회는 평화시위가 되지 못했다는 평가다. SNS에서는 집회 성추행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한 누리꾼은 “여성 대상 성추행이 발생했고 혐오발언이 쏟아져 나왔다는 점에서 ‘평화 시위’는 적절한 말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다른 트위터리안도 “당장 성추행 당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평화 시위가 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다른 누리꾼은 “백만 명이 경찰과 부딪침 없이 평화롭게 끝났다는데, 정작 시위대 안에서는 여성에 대한 성추행이 제보됐고 여성에 대한 비하발언이 무대발언대에서 있었다”며 “진짜 비폭력은 시위대 속에서 이뤄져야 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트위터리안도 “자기 뜻을 펼치러 나간 평화시위에서조차 성추행을 당했다는 말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 누가 여성상위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여성이 살기 편하다고 하는가”라며 비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성추행을 피하기 힘들었던 시위 현장에서 본 버지니아 울프의 말(여성인 내게 조국은 없다)에 친구와 씁쓸하게 웃었다”며 허탈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평화집회? 새로운 주체? 틀려도 한참 틀렸다’라는 제목으로 논평을 내 성추행이 만연했던 이번 집회를 비판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평화집회’로 거듭났단 평가와 달리 SNS엔 집회에서 성추행과 외모품평을 경험한 여성들의 증언이 쏟아졌다”며 “도대체 누구에게 ‘평화집회’란 말인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광장에 나온 여성들이 여성에 대한 멸시와 차별, 폭력을 맞닥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 대표는 “집회 현장에서도 ‘남성 가부장’ 권력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로 연대를 견고히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민주주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는 한 결코 성취될 수 없다는 진리를 외면치 말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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