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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의 인권법안 입법예고와 정기국회에 발의를 앞두고,

여성계에서 국가인군위원회의 여성인권 관련 위상과 기능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다.<사진 민원기 기자>

그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법무부의 인권법안이 입법예고된 가운데,

정부가 추진하는 ‘인권위원회’에 여성계의 관심이 또다시 모아지고 있다.

여성계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다. 법무부가 추진하는 인권위원회 위상에 대

한 문제제기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담당해야 할 여성인권에 대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국가권력기관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구제가 가능할 수 있

도록 인권위원회의 위상을 국가기구로 해야 함에도, 법무부가 비정부기구로

고집하고 있다는 데 대한 문제제기다.

지금까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 등 많은 인권침해 사례가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져 왔기 때문에, 실질적인 인권 보장을 위해서 동등한 위치에서

국가기관을 조사·감시할 수 있는 독립적인 국가기구가 필수적이라는 게 여

성계의 주장이었다. 이에 98년 법무부가 처음 인권법 제정 및 국가인권위원

회 설립을 공표했을 당시부터 다른 민간단체들과 함께 비정부기구를 강력하

게 반대해 왔고, 70여개 민간단체와‘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

간단체 공동대책위원회’(곽노현 상임공동집행위원장, 이하 공대위)를 구성

해 공조하고 있다. 법무부가 민간단체들의 반대를 의식해 애초 주장했던 특

수법인화를 철회하고, 여성계에서 주장했던 위원회의 여성위원 할당을 11명

중 2명에서 3명 이상으로 수정해 일부 개선한 면도 없진 않지만, 여성단체

를 비롯한 공대위는 법무부 산하기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는 현 법안에

대해 여전히 반대한다. 이밖에도 인권위원회의 실질적 권한을 위해 위원들

의 면책특권과 조사 불응시 벌금형을 요구하는 등 현법안의 전면 철회를 위

해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후자는 여성인권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의 문제로 여성계만의 고민이다. 9월 5일, 6일 양일간 공대위가 한국여성개

발원에서 개최한 ‘인권활동가를 위한 인권위원회법안 토론회’에서 여성단

체들은 이 문제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여성부문 토론의 쟁점은 국가인권기

구와 기존의 여성인권 주무기관인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 또는 앞으로

신설될 여성부가 여성인권 사안에 대해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였다.

현재 여성인권 침해와 관련된 구제 기구로는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와 노동부의 고용평등위원회·노동위원회·근로감독관 제도, 경찰·검찰·

법원 등의 국가기관이 있다. 이 가운데 고용평등위원회와 노동위원회 등은

처리 실적이 저조하고, 근로감독관은 여성고용문제를 특별히 비중있게 다루

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리고 경찰, 검찰, 법원 등은 성인지적 관점

의 부재로 수사과정이나 재판과정에서 2차적인 여성인권 침해를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매매춘의 경우, 중간착취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경

찰과 업소와의 유착관계로 인해 제대로 단속이나 수사가 되지 못하는 문제

점도 있었다.

타기관에 비해 지금까지 대통령직속 여성특위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컸

다. 하지만 지방사무소가 없어 지역 차원에서의 접근이 어렵다는 점과 강력

한 준사법권이 없다는 단점은 문제로 지적돼 왔다. 앞으로 신설될 여성부의

남녀차별개선위원회도 마찬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한국여성단체연합의 남윤인순 사무총장은 “여성인권 사안 중 여성

폭력이나 여성차별에 관한 처리는 현행 법률에 의거해 처리하되, 기존법률

에 포함되어 있지 않거나 그 구제수단이 미약한 경우, 국가기관에 의한 수

사과정에서의 여성인권 침해 사안, 국가기관과의 유착관계로 인해 수사가

어려운 사안은 국가인권기구에서 다뤄야 한다”며 기존 기관과 인권위원회

모두에 여성인권 구제를 담당하도록 제안했다.

반면, 한국여성개발원의 김엘림 박사는 “앞으로 신설될 여성부가 성폭

력, 가정폭력, 매매춘, 위안부 문제 등 여성인권 사안을 담당할 계획이라 인

권위원회의 기능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 교통정리가 불가피하다”고 지적

한다. 현재도 여특위와 노동부의 고용평등위원회가 중복 조사하는 경우가

있어 기업의 불만을 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낭비이고, 같

은 사안에 대해 다른 처리결과를 낳을 위험도 있다며, 이러한 문제점을 해

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 침해만 인권위원회에서 담당해야 한

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

여성의전화연합 등 여성단체들은 “여성인권 사안이 전체 인권 사안과 별도

로 취급되어 여성특별위원회나 여성부로 전면 이관되는 것보다 국가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도록 국가인권기구에서도 담당해야 한다”는 입장이

다.

국가인권기구 전문가인 조용환 변호사는 “우리 나라와 비슷한 정치적

배경을 갖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위원회는 모든 사안을 다루지만

우리 나라의 여특위와 유사한 남녀평등위원회도 함께 있어 중복적인 사안을

다루고 있다”면서, “두 기관 사이에 협의체가 있어서 정책을 조정하기 때

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일종의 남녀평등위원회의 후견

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조 변호사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이

다른 국가기구와 기본적으로 중복될 수밖에 없고 그들의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오히려 여성인권 사안을 인권위원회에서 다루지 않고

분리시키는 건 여성에게 불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앞으로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부의 동시 출범은 여성인권의 측면에서 역

사적인 사건이자, 여성계의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만큼 여성의 입장에서

어떻게 인권위원회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법에 여성의 관점을 담보하는 것

이 중요하듯이, 이번 인권위원회 법안에도 여성과 관련해 간접차별, 적극적

조치 등을 포함하는 성인지적 관점을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는 점을 여성계

는 한목소리로 강조한다.

[이김 정희 기자 jhle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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