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이한열 장례식 이후 최대

‘박근혜 하야’ 한 목소리 내면서도

이슈·세대 등 단위별 다양한 목소리 나와

쓰레기 줍고 충돌없는 시민의식 돋보여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제3차 범국민행동 민중총궐기 집회 참가자 100만명(주최측 추산, 경찰 추산 26만명)이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등 도심 일대를 가득 채웠다. 특히 이날 오후 9시20분께 광화문광장 촛불문화제 무대에 가수 이승환씨가 오르면서 광화문 일대는 콘서트장을 방불케하는 열기에 휩싸였다. 세종대로를 가득 채운 시민들은 이승환씨의 인기곡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을 따라부르며 환호했다. ⓒ변지은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제3차 범국민행동 민중총궐기 집회 참가자 100만명(주최측 추산, 경찰 추산 26만명)이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등 도심 일대를 가득 채웠다. 특히 이날 오후 9시20분께 광화문광장 촛불문화제 무대에 가수 이승환씨가 오르면서 광화문 일대는 콘서트장을 방불케하는 열기에 휩싸였다. 세종대로를 가득 채운 시민들은 이승환씨의 인기곡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을 따라부르며 환호했다. ⓒ변지은 기자

11월 12일 100만 촛불이 서울 도심 한복판을 밝혔다.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3차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민중총궐기 촛불집회에는 시민 100만명(주최 측 추산, 경찰 측 추산 26만명)이 모였다. 참가자들의 행렬은 광화문광장을 넘어 서대문과 종로로 이어지는 광화문 네거리를 넘어섰고 서울시청 앞까지 8차선 광화문대로를 가득 채웠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서울지역 최대 70만명을 훌쩍 넘겼다. 1987년 6월 9일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모였던 100만명 이후 29년 만에 최대다.

수도권 뿐만 아니라 부산 3만5000명, 제주 5000명, 광주 1만명, 대구 4000명 등 전국 곳곳에서 광화문으로 모여든 참가자도 6만명에 달했다. 집회 현장에는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등에서 단체로 온 참가자들 외에도 가족단위, 연인,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있는 이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교복을 입은 중학생부터 백발이 성성한 이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한 자리에 모였다.

 

자녀와 함께 온 가족단위 참가자들. ⓒ이정실 사진기자
자녀와 함께 온 가족단위 참가자들. ⓒ이정실 사진기자

2시부터 도심 곳곳에서 열린 사전집회에는 특히 어린 자녀를 유모차나 목말을 태워 함께 다니는 가족단위 참가자들이 많았다. 인천에서 온 장진오(36)씨는 아내와 함께 6살, 생후 9개월인 두 자녀를 데리고 집회에 참석했다. 장씨는 “아직 어린 아이들과 집회에 참석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두고 나오는 것보다 함께 오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결정했다”며 “어릴 때부터 민주주의 현장에 참여하는 것이 교육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들이 나서면 당장은 아니지만 결국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이 나라에 살면서 창피함을 느끼며 살 순 없다. 아이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물려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여성, 장애인,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학생 등 각 단위가 개최한 사전집회에선 다양한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특히 전국여성연대,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가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개최한 집회는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라는 주제 아래 성별·연령·지향성에 상관없이 평등한 집회를 만들어나가자는 취지로 진행됐다. 여성들은 이 자리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여성 대통령’의 문제로 치환해 여성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분위기를 규탄했다. 페미니스트 그룹 ‘강남역 10번출구’에서 활동 중인 이지원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여자이기 때문에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고 비난하거나 최순실에게 ‘강남 아줌마’라고 하는 것은 여성혐오 발언”이라며 “이런 발언은 삼가야 한다. 페미니스트라면 더욱 더 혐오 없고 평등한 집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여성대회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에 참석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변지은 기자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여성대회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에 참석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변지은 기자

‘전국대학생 시국회의’ 깃발 아래 모인 대학생 수천명도 서울 대학로에 집결해 광화문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춘천교대, 전북대, 전남대, 인하대, 원광대, 성공회대, 성신여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고려대, 가톨릭대, 숙명여대 깃발도 보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새내기라고 밝힌 학생은 “이게 나라냐, 개판이다. 세월호 구조 실패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했다. 거기 모자라서 아는 동생과 놀아나서 권력을 사유화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2018년 2월까지 박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내려가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에 둘도 없는 쪽팔림이다”라며 “역사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반드시 박근혜 최순실을 끌어내려야 한다”고 퇴진을 촉구했다.

오후 4시 40분께 광화문광장에선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진행으로 본격적인 민중총궐기 행사가 열렸다. 촛불과 ‘박근혜 하야’ 손팻말을 든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국민이 주인이다” “근혜씨 퇴근해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집회에 참석하려는 인파가 몰리면서 지하철이 광화문역을 정차하지 않기도 했다.

가수 이승환·조PD·모세·크라잉넛, 방송인 김제동, 개그우먼 김미화 등이 무대에 올라 저마다 노래와 발언들로 ‘박근혜 하야’를 촉구했다. 가수 이승환은 “지금 나는 우병우, 차은택, 최은실, 박근혜에게 폭행, 폭력당한 것처럼 마음과 몸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신의 곡 ‘덩크슛’을 부르면서, 가사 중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히야라’라는 부분을 ‘하야하라 박근혜’로 바꿔 불러 시민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민중총궐기 무대에 오른 가수 이승환. ⓒ이정실 사진기자
민중총궐기 무대에 오른 가수 이승환. ⓒ이정실 사진기자

한편, 경복궁역 앞 내자동 로터리에선 청와대 행진을 요구하는 시위대와 도로를 막은 경찰이 대치하기도 했다. 대치 시간이 길어지면서 일부 시민이 버스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밤 9시경에는 시민 한명이 경찰버스 위로 올라가자, 경찰이 내려갈 것을 요구했고, 경찰을 피해 잠깐 도망갔으나 다시 버스 위에 앉아 침묵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밤 10시경에는 경찰 버스 위에 올라간 또 다른 시민과 경찰들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이 몸에 손을 대자 시민이 경찰을 거칠게 밀었고 경찰들이 시민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커지면서 함께 버스 아래로 추락할 뻔했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평화시위를 외치며 내려오라고 소리쳤고, 경찰이 시민을 데리고 내려가면서 상황은 빠르게 수습됐다.

이번 집회는 충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질서와 시민의식은 돋보인 ‘평화집회’였다. 시민들은 집회 내내 평화시위를 당부했고, 일부 시민이 경찰의 방패를 빼앗자 이를 비판하며 방패를 돌려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많은 참가자들이 모인 만큼 거리에 쌓이는 쓰레기도 늘었지만 민중총궐기가 끝난 광화문은 낙엽만이 남아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쓰레기를 주으며 현장을 정리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9시께 한영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예진, 김형준 학생도 교복을 입은 채 광화문 사거리를 부지런히 오가며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김예진 학생은 “집회 현장이 쓰레기로 더러워지면 ‘왜 그렇게 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집회가 변질되는 게 싫었다”면서 “이번 문제를 외부에 정확하게 알리고 해결할 수 있으려면 검찰과 언론이 좀 더 청렴해져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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