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역사박물관서 

9개 여성단체·시민 200여명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 평등집회

“혐오문제 해결 없인 새 정권 의미 없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여성대회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에 참석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변지은 기자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여성대회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에 참석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변지은 기자

엄지당, 엄마당, 전국여성연대,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를 비롯한 9개 여성단체는 1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평등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여성단체 회원과 시민들의 발언이 줄을 이었으며, 춤과 노래 공연이 함께 마련됐다.

한국여성의전화 회원으로 활동 중인 슬아씨는 발언을 하며 언론의 여성혐오 행태를 지적했다. 슬아씨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사태를 통해 참담함을 느꼈다”며 “‘암탉’ ‘다섯 살 먹은 아이보다도 못한 년’ 등의 여성혐오 발언이 기사 제목으로, 댓글로, 심지어는 박근혜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 연단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분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박 대통령은 어째서 대통령이 아닌 여자(년)로서 이리도 쉽게 비난을 받아야 하나. 왜 최순실은 ‘비선 실세’가 아니라 아줌마로 욕을 먹어야 하나”라며 “시위 연단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 나왔을 때, 그 자리에 모인 시민들은 발언에 통쾌하다는 듯 박수를 쳤다. 너무나 참담했다”고 토로했다.

 

남슬아 여성의전화 회원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여성대회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변지은 기자
남슬아 여성의전화 회원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여성대회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변지은 기자

그는 “여성인권은 2016년에도 여전히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는’ 취급을 받아야 하나”라며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그리고 인간으로서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인권이 때에 따라 부차적인 일이 돼야 한다면 도대체 우리가 정권을 규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는 특히 “여성혐오 프레임이 잘 통하는 한국사회를 보고 이 사건을 초래한 정치인, 검사, 수구언론, 재벌들이 여성혐오를 수단화해서 얼마나 쉽게 비판과 책임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지 알게 됐다”며 “박 대통령 하야 이후의 정권이 여성문제를, 소수의 목소리를 여전히 사소한 일이나 나중에 해결해도 될 일로 생각한다면 그 정권 또한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장지화 엄마당 준비위원회 대표는 “최근 검찰과 언론에서 여론이 뜨거우니까 박 대통령을 조사할 것처럼 하고 있는데, 현직 대통령을 검찰이 제대로 조사하겠느냐”라며 “지금 이 순간 당장 박 대통령이 하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조사를 받으며 팔짱을 끼고 웃는 모습을 봤고, ‘비선 실세’ 최순실이 검찰에 들어가기 전 31시간동안 뭘 했는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며 “검찰과 박 대통령 측근들이 여전히 충성 맹세를 하는데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자신을 “여성이자 페미니스트, 퀴어”라고 밝힌 한 청소년은 “불의를 저지른 세력을 뿌리뽑지 못하면 다음 정권도 의미가 없다”며 “장애인·여성·청소년혐오가 만연한 사회를 토대로 정권이 구축된다면 그 사회는 절대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5월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과정에서 신상과 얼굴이 평가당하는 걸 봤다. 또 시위에 나가겠다고 하자 벌점을 준다는 학교도 있더라”며 “혐오가 만연한 나라에서 나라를 새로 세운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여성대회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에 참석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변지은 기자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여성대회 ‘싸우는 우리가 이긴다’에 참석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변지은 기자

 

엄마들을 지원하는 ‘엄지당’ 회원은 “저는 산후우울증도 겪지 않은 긍정적인 사람인데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커피 20잔을 먹은 심장 떨림과 고구마 100개를 먹은듯한 답답함으로 잠을 자지 못했다”며 “그 이유는 자괴감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역에서 여성들이 살해되고, 인터넷에서 입에 담지도 못할 댓글들이 달릴 때도 그랬다. 또 사드 배치로 주민들이 차가운 바닥에 앉아 시위하는 모습을 보며 똑같은 자괴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는 “세월호 사건 때 아이를 임신 중이었는데 그때도 같은 자괴감을 느꼈다”며 “이런 자괴감 깊은 나라를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혐오 없는 세상’ ‘전쟁 없이 통일된 평화로운 나라’ ‘박 대통령이 퇴진한 깨끗한 나라’를 함께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 발언 이후에는 ‘그네는 아니다’ ‘11월에 박근혜 퇴진하기 좋은 날’등의 노래공연과 오카리나 연주공연이 진행됐다.

한편 집회 도중 한 남성이 시위를 방해하며 난동을 부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집회 방해를 만류하는 시민들의 요구에도 계속해서 “순수한 사람들을 꼬이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남성을 말리는 과정에서 약간의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자 집회 사회자는 “여성혐오, 불필요한 행동, 위계·폭력적인 행동이 우리의 행동을 막아서는 안 된다”며 평등·평화 집회의 취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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