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여성대통령’? 대선 때 구호 내세우더니

정작 준비는 최순실이…. 박근혜-최순실 공동정부 ‘해괴’  

 

스스로 독배 마시는 박 대통령의 자해정치

김병준 총리 지명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는 꼴

 

10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시민이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의혹’ 관련 대국민 사과 발표를 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0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시민이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의혹’ 관련 대국민 사과 발표를 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대한민국이 또 다시 깊은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최순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로 궁지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이 어리석은 최악의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국회와 사전 협의 없이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국무총리로 내정했다.

여당의 친박 지도부는 “국정 정상화를 위한 강력한 의지 표현”이라고 긍정 평가를 했지만 야당은 “국민과 국회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야당은 국무총리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국회의 총리 인사 청문회 자체를 거부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의 김 국무총리 지명은 시점, 절차, 내용 모두 면에서 어리석었다. 야당이 전대미문의 국정 농단 사태에서도 대통령 하야나 탄핵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낀 것은 그만큼 박 대통령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배려였다. 따라서 대통령은 대통령 비서실장 등 참모진 후임 인사를 먼저 했어야 했다. 그다음 헌정 중단을 막고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국회와 협의를 통해 야당이 수용할 수 있는 총리를 내세워 힘을 실어줬어야 했다.

총리는 헌법에 보장된 국무위원 제청권을 활용해 내각을 전면 쇄신해 책임 총리로서의 위상을 갖췄어야 했다. 그리고 나서 책임 총리가 대통령도 검찰 조사를 받을 수 있다고 했으면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단초가 마련됐을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스스로 독배를 마시는 자해정치를 했다. 국회와 협의하지 않았고, 책임 총리의 역할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지 않았으며,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이번 개각은 진정성 없는 90초짜리 사과문 발표에 이어 대통령의 상황 판단에 심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순실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어 대통령이 멘붕에 빠져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는 우스개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박 대통령은 2004년 3월부터 2006년 6월까지 한나라당 대표였다. 한편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는 2004년 6월부터 2006년 5월까지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당시 한나라당은 4대 개혁입법을 포함해 참여정부 정책 전반에 대해 국민을 고통으로 몰고 가는 나쁜 정책이라고 파상 공격을 했다. 무능한 진보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결국 정책에 실패했던 참여정부는 정권을 잃었다. 큰 틀 속에서 보면 김 내정자는 실패한 관료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김 내정자 지명은 자기부정인 동시에 정통 보수를 무시한 것이다. 김 내정자의 행태는 오랜 기간 자신이 모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이다. 노 전 대통령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그는 권력만을 쫓는 기회주의적 폴리페서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더 중요한 것은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난국을 극복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핵심 참모였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으로부터 일종의 배신을 당했다. 그는 검찰 소환을 앞두고 대기업으로부터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대한 모금은 “박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했다. 최순실씨가 청와대 정문을 통해 수시로 청와대를 들락거렸다는 진술마저 나오고 있다. 이제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불가피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김 내정자 지명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됐다. 급기야 야권 유력 대선 후보들이 대통령 퇴진론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는 “정치적 해법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저도 중대한 결심을 할 수 밖에 없다”며 향후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더 이상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박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구호로 내세웠다. 그런데 준비된 것은 박근혜가 아니라 최순실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공동정부’의 해괴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끝없이 시작된 혼돈 속에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이며, 남은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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