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용 GMO 수입 1위국

1인당 쌀 소비량이 65kg

GMO 소비량은 45kg

 

콩부터 옥수수, 면실유까지

GMO쌀 시험 재배 논란

소비자 “GMO표시제 반갑다”

 

캐나다산 카놀라유는 대부분이 GMO다. 참치통조림의 기름도 카놀라유(또는 GMO면실유)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참치캔을 고르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캐나다산 카놀라유는 대부분이 GMO다. 참치통조림의 기름도 카놀라유(또는 GMO면실유)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참치캔을 고르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단골가게 아저씨에게 추석선물로 콩기름을 받았다. 지인에게서 참치 통조림과 카놀라유가 사이좋게 들어 있는 선물세트도 받았다. 먹는 거라면 늘 반가운 자취생에게 참 고마운 선물이지만 차마 손댈 수가 없었다. 혼자 사는 친구에게 줘버릴까 고민했지만 그럴 용기도 내겐 없었다.

먹을 것 앞에서 이 무슨 짓인가. 해*, C* 같은 대기업에서 만들었고 유통기한도 안 지난 멀쩡한 상품들이 왜 부엌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바로 이놈들이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이기 때문이다.

몬산토가 GMO 종자를 만들어서 애먼 인도 농부들을 빚더미에 올라앉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GMO가 신토불이의 땅 조선에 사는 내 밥상에 오르리라는 생각은 사실 안 하고 살았다. 한마디로 순.진.했다.

한국은 식용 GMO 수입 1위 국가다. 1인당 쌀 소비량이 65kg인데 GMO 소비량은 45kg이라니 밥 한 술 뜰 때마다 GMO 한 숟갈씩 퍼 먹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런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GMO가 어떻게 내 밥상에 올 수 있었는지 캐보아야 했다.

우선 콩. GMO콩 99%가 콩기름으로 만들어진다.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은 된장, 간장으로 가고 대두단백질은 라면스프 같은 가공식품에 쓰인다. 콩으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많던가. 두부, 콩나물, 두유…. 채식지향주의자의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을 오염시키다니 용서할 수 없다!

다음은 옥수수. 물엿, 올리고당, 액상과당, 아스파탐…. 내가 즐겨먹는 과자와 아이스크림, 쥬스, 막걸리에 단맛을 더해주는 것들이 다 GMO옥수수가 원료란다. 어쩐지. 커피에 시럽 넣을 때마다 뭔가 꺼림칙하더라니.

카놀라유. 이거 좋은 기름 아니었나? 우리나라에 들여오는 카놀라유는 50% 이상이 캐나다산인데 캐나다산 카놀라유는 대부분이 GMO란다. 그런 줄 알고 카놀라유 안 쓴다고? 점심으로 먹은 참치김치찌개는 어쩔 텐가. 참치통조림의 기름도 카놀라유(또는 GMO면실유)다. 그나저나 카놀라유로만 닭을 튀긴다고 광고하던 치킨집은 자랑을 한 걸까, 셀프디스를 한 걸까.

그리고 쌀. 놀라지 마라. 아직은 아니다. 그렇지만 세계 최초로 국민의 주식을 GMO로 상용화시키려는 농업진흥청 덕분에 조만간 GMO쌀이 시장에 나올지도 모르겠다. 전북 완주, 경남 밀양에서 주민들 몰래 GMO쌀을 시험 재배하고 있다는 경악스러운 뉴스가 보도된 바 있다. GMO 종주국인 미국도 자기네 주식인 밀은 지키려고 하는데 왜 우리는 이런 짓을 하고 있을까.

왜 이렇게 GMO 걱정을 하느냐고, GMO가 위험하다는 확실한 근거도 없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아무리 GMO 재배에 쓰이는 농약 글리포세이트의 발암성, GMO 옥수수를 먹은 쥐가 유방암에 걸리고 불임이 됐다는 연구결과, GMO와 아이들 자폐증, 장 질환, 알레르기 질환과의 관련성을 제기해도 정부와 기업에서는 아직까지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모든 것은 기업 영업비밀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논리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 GMO가 안전하다는 확실한 증거 역시 아직 없다. 그렇다면 인체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폭탄을 두고 ‘미리 조심’하는 게 상식 아니겠는가. 시험 재배라니. 상용화라니. 그것도 온 국민이 먹는 쌀을 두고. 기막힌 일이다.

그런 점에서 요즘 입법 준비 중인 GMO표시제는 소비자가 GMO를 거부할 권리를 주고 기업들에게는 책임의식을 부여(실은 압박)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 누가 같은 돈 주고 GMO를 사먹으려고 하겠는가. 그러나 GMO가 하나의 선택사항으로 작용할 때 우리는 언젠가 또 딜레마에 빠지게 될 거란 슬픈 예감이 든다. 유기농이든 GMO든 먹을거리가 마트에 진열돼 있는 상품, 식당에서 돈 주고 사먹는 한 그릇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때, 우리는 나쁜 먹거리를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다가 발이 꼬여 넘어질지도 모른다. 피하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무조건 유기농을 고르면 되는 걸까? 비행기 타고 날아온 오가닉은 믿을 만한가? 유기농을 라벨, 인증제를 넘어서서 유기적 관계로 이해한다면 농약 좀 뿌렸을지언정 옆집 할머니가 텃밭에서 키웠다며 건네주는 채소가 오가닉에 가까운 거 아닐까. 나아가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고 또 씨앗으로 이어지는 순환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GMO(불임씨앗, 터미네이터 종자)가 얼마나 반자연적인 것인지 공감할 수 있으리라. 또 대대로 내려오는 토종 종자를 지키며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도 새삼 느낄 수 있으리라.

우리 밀이 거의 사라져버린 80년대, 우리 밀을 살리기 위해 토종 씨앗을 찾아내서 밀농사를 지은 농부들이 있었다. 돌아가신 백남기 어르신도 그중 한분이었단다. 백남기 어르신의 밀밭에 엊그제 파종을 했다는 뉴스를 읽었다. GMO쌀을 키워 팔아먹으려는 국가와 우리 밀을 20년 넘도록 묵묵히 키운 농부 사이의 거리는 참으로 아득하다. 남은 우리가 이 아득함을 이겨내고 싸우려면 밥심이 두둑해야 할 텐데 그 밥이 무서워서 마음껏 먹을 수가 없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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