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이 10월 31일 오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이 10월 31일 오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주에 영국 에딘버러에서 열린 제23회 세계장애인재활대회 학술세미나에 다녀왔다. 세미나 첫날 인사말과 축사를 스코틀랜드 왕실 공주와 스코틀랜드 총리가 했는데 두 사람 모두 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1956년에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이 세계대회를 치른 후 60년 만에 다시 이곳에서 갖게 된 데 대한 기쁨의 소감과 함께, 대회 주제인 ‘포용사회 창조를 위하여’ 장애인 등 사회 소수자를 마땅히 끌어안아야 하는 정부와 시민사회의 책무성에 대해 연설했다. 특히 여성 장애인에 대해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는 것을 듣다보니 여성 지도자의 배려와 포용 정신이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여성 대통령을 둔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정말 부끄럽다. 연일 쏟아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보여주는 포용사회가 아닌 배제사회의 극단적인 단면을 접할 때 한심함과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오른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주요 외신이 전하는 내용을 보면 너무나 허탈하다.

워싱턴포스트의 ‘비선 실세 루머와 족벌주의, 부당 이득 등 막장 드라마 같은 스캔들’, ‘한국의 라스푸틴에 성추문, 8선녀’,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의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무속인’, 영국 가디언의 ‘사이비 종교 교주의 딸’ 등의 표현은 대학 진학률이 세계 2위 국가에서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비상식적이고 전근대적인 국가로 조롱당하는 것 같아 더욱 비참하다. 특히 일본과 중국 언론들은 “어떻게 이게 국가란 말인가” “우리는 이런 나라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없다” 등의 팻말을 든 시민들의 분노를 전하면서 위안부 합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사드 배치 등 외교 안보 정책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런 대통령을 뽑은 51.6%의 국민 책임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를 알고도 이를 이용해 한 몫을 챙긴 음흉한 남성 측근들이 권력 주위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여당, 정부 고위 당국자들, 기업, 언론, 학계, 문화계 그리고 심지어 야당 지도자까지 국민보다는 개인의 부와 명성과 권력에 경도돼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갈 것인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은 헌정질서 유린을 서슴없이 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아버지인 박정희는 적어도 악법을 강제로 만들어서라도 법의 이름으로 반민주적이고 억압적인 통치를 했다. 지금 대통령은 법의 질서를 깡그리 무시한 초법적인 신의 경지에서 통치를 해 왔기에 헌정질서 유린의 죄와 이를 모르쇠로 묵인하고 아부해 온 권력자들 모두의 죄를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리스 신화에는 많은 여신들이 나온다. 자유의 여신, 정의의 여신, 지혜의 여신, 행복의 여신, 불행의 여신 등등. 그러나 작금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해결하는 데는 이들 여신 중에서 가장 용감하고 뛰어난 정의의 여신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 정의의 여신은 세 가지 독특한 모습을 갖고 있다. 첫째, 헝겊으로 두 눈을 가렸으며 둘째, 왼손에 저울을 들고 있으며 셋째, 오른 손에 칼을 쥐고 있다.

첫째, 왜 눈을 가리고 있는가? 정의를 실현하려면 사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내 눈에 보이는 사사로움을 완벽히 버리기 위해서는 눈을 가려야 함을 강조한다. 정유라만 내 자식이고, 돈을 받았으니까 점수를 후하게 준다면 정의는 무너지고 만다.

둘째, 왜 왼손에 저울을 들고 있는가? 저울은 물건의 무게를 공평하게 측량할 때 존재감이 있다. 따라서 저울의 정신은 만사 공평이다. 셋째, 왜 오른손에 칼을 쥐고 있는가? 부정의와 악을 징벌하기 위해서는 예리한 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악을 퇴치할 힘이 없으면 정의를 실현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정의의 여신을 우리는 지금 당장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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