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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당당하게 살고 싶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부모로부터 독립해 온전한 주체로 살겠다는 비혼

(非婚) 여성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비혼’이라는 용어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이라는 의미의 ‘미혼’보다 스스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주체

성을 강조한다. 이같은 비혼 여성들은 부모로부터도 독립해 ‘나홀로 가

구’를 이루는 추세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8월 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최한 ‘비혼·이혼·사

별 등으로 인한 혼자 사는 여성에 대한 자립지원방안 토론회’에서 비혼 여

성에 관해 발제한 이인숙 박사(사회학·건국대 강사)는 “미혼여성 가구주

가 1975년 전체 가구주 가운데 1.5%였던 것이 95년 3.5%로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에 비해 경제활동 단위가 가족단위에서 개

인단위로 바뀌었고, 결혼과 성에 대한 가치나 인식이 변화했고, 평균 초혼연

령이 늦어지고 있는 점 등은 여성들로 하여금 더 이상 결혼에 대한 매력을

갖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변수”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비혼 여성의 증가 속도는 우리 나라보다 다른 선진국에서 더욱 눈

에 띈다. 95년 일본 후생성 통계에 의하면 25∼29세 여성 중 절반이 미혼이

고, '타임'지 최근 호(8월 28일자)의 커버스토리(“Who Needs a husban

d?”)는 현재 미국의 독신 여성이 4천3백만 명으로 전체 성인여성 중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선택에 의한 독신(single by

choice)’은 “여성들이 더 이상 결혼을 생존이나 무조건적인 수용의 문제

로 보지 않고 확실한 선택의 문제로 보게 된 것을 의미하며, 많은 여성들에

게 권력을 부여하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오랫동안 비혼으로서 독립생활을 해온 옥선희(비디오칼럼리스트, 으뜸과

버금 홍보부장·42)씨는 혼자 사는 게 너무 익숙하고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그는 비혼 독립 여성의 조건으로 경제력, 건강, 적성에 맞는 평생 직업, 애

인 등을 꼽는다.

옥씨는 모든 여성들이 ‘결혼이 나에게 맞는지’에 대한 적성 테스트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배우자가 경제적, 성격적 측면에서 맞는지

도 점검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고 그저 관습상 결혼한 사람들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미국에서 교수로 자리잡은 비혼 여성 이정화(미들테네시 주립대 영문과·

45)씨는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만 18세가 되면 딸, 아들 관계없이 집에서

독립하는 것이 보편적인 문화이기 때문에 비혼 여성들의 독립생활이 훨씬

자유롭다”고 전한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직종과 많은 취업 기회로 인해 여

성의 경제적 독립이 쉬울 뿐더러, 연령에 상관없이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대학, 대학원, 로스쿨 등에 진학해 자신을 계발하고 전문직을 얻을 수 있는

재취업의 기회도 열려 있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혼자 사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거의 없다는 것. 이씨는 미

국에있다가 가끔 서울에 올 때면 나이든 여자가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선입

관이 너무 크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단다. 심지어 ‘주인없는 여자’로 간주

해‘한번 데리고 놀아봐도 되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남성들도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비혼 여성이 독립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려면, 다른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을 인정하지 않고 비혼 여성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억

측하거나 추근대는 문화부터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그는 꼬집는다.

이씨와 마찬가지로 많은 비혼 여성들이 호소하는 사회적 편견들로는 일부

일처 결혼생활을 해야만 ‘어른’으로 대접받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비정

상’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온갖 가십의 대상이 되기 쉽다. 여기에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말로 정서적 장애인 취급까지 받는다. 이에 비혼

여성들은 “이 사회가 비혼으로 살아가려면 신경질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가

아니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성상담소의 안혜성 사무국장은 “비혼 여성이 건강

하게 혼자 살 수 있기 위해선 무엇보다 지지집단이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하

다”고 말한다. 친구나 주변 관계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

라질 수 있고, 이는 노후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젊은 비혼 여성들의 경우 뜻 맞는 지지집단을 찾기가 어렵지 않지만, 상

대적으로 기성세대인 40대 이상의 여성들은 자신의 비혼을 격려해줄 수 있

는 집단을 만나기 어렵다. 이에 이들이 사회적 고립을 극복할 수 있도록 여

성단체에서 사회적 그룹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는 지적이다.

한편 비혼을 선택한 여성들 하면, 경제적 능력을 갖춘 커리어우먼, 텔레비

전에 등장하는 소위 ‘여피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비혼을 자발적으

로 선택한 여성들이라 할지라도 대부분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고, 또

그런 이유 때문에 비혼을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인숙 박사는 비혼 여성 1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고학력이면

서도 월 50만원 미만의 비정규직 여성이 10명 중 1명으로 나타났다며, 새로

운 빈곤층으로 대두되고 있는 도시의 고학력 비혼 여성들을 위한 법적, 제

도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비혼 여성의 자립을 위한 제도 및 법적

개선 방안으로는 ▲도시 고학력 실직 비혼 여성을 정부의 사회보장 대상에

포함시켜 일자리 창출 및 채용 장려 등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할 것 ▲비혼

여성의 노후를 위해 경제적 지원과 시설을 마련할 것 ▲연말 정산시 소득

공제 혜택을 적용할 것 ▲독립 호주 신고제가 있더라도 유산상속 등의 문제

로 인해 어려움이 많으므로 호주제를 폐지하는 것은 필수라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부 여성정책담당관실의 서명선 과장은 “비혼 여성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이들에 대한 별도의 복지 정책은 현재 상황으로는 어렵다”고 말

한다. 하지만 영국과 같이 일반인에게도 영구임대주택의 혜택이 돌아가는

등 주택정책을 비롯한 제반 기본 복지정책이 제대로 이뤄지면, 자연히 비혼

여성들이 얻을 수 있는 혜택도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의 원칙이 지켜지면 여성에게 불리할 수 있는 경제적 측면들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혼 여성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와 함께 사회적 대책 등이 세워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김 정희 기자 jhle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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