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 의한, 여성의, 여성을 위한 박물관의 효시

“미래를 내다보고 여성 발견… 여성이 도시를 형성한다” 주창

 

성 게르투르드 유물전시실
성 게르투르드 유물전시실

1981년 독일의 본여성박물관(Frauenmuseum Bonn)은 최초의 여성박물관이라는 상징성과 그 방향성 때문에 매우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여성과 미래! 여성이 도시를 형성한다! 마리안네 피첸의 주창에 따라 ‘여성에 의해’ 설립돼 ‘여성의’ 가치를 알리며 특히 예술에 종사하는 ‘여성을 위한’ 박물관으로 시작했다.

독일의 여성박물관들은 1960∼70년대 제2차 페미니즘 물결에 의해 태어난 딸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련의 여성박물관들이 페미니즘 운동의 투쟁과 목표에 강하게 결부돼 1980년대부터 건립됐다. 독일 여성박물관들의 건립자들은 대부분 그 이전부터 함께 활동했던 여성운동가 집단이었다.

박물관의 나라 독일 가보니

본여성박물관 베티나 밥 부관장에 따르면 독일의 여성박물관 건립의 아이디어는 1980년대 여성운동 과정에서 나왔다. 독일의 여성운동은 19세기 중엽 이후 자유주의 페미니스트 루이제 오토-페터스가 이끄는 독일여성총연합(ADF) 등의 조직들이 설립되면서 여성교육과 재산권 그리고 자선 활동의 기치를 내걸고 그 활동을 개시했다. 19세기말 여성운동은 사회주의 급진적 페미니즘 조직인 독일여성단체연합(BDF)이 설립돼 사회민주노동당(SPD)과 연계하기도 하고 여성참정권 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프로이센 중심의 통일이 이뤄지는 가운데 중산층의 대대적인 보수화, 중간 계급의 정치적 취약성의 결과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시즘 체제가 등장했을 때 여성운동도 함께 쇠퇴했다. 전쟁과 분단 그리고‘라인강의 기적’을 거치면서 68운동의 사회적 확산 속에서 1970∼80년대에 독일 여성운동은 낙태처벌권,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 성에 대한 요구에서부터 여성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여성프로젝트가 실천됐다.

이런 분위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독일은 유럽에서 여성박물관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박물관의 나라답게 다양한 박물관들이 있지만, 여성박물관도 다양해 여간 부럽지 않다. 지금 소개할 본 여성박물관(1981년)을 비롯해, 비스바덴 여성박물관(1984년), 베를린에 있는 베르보르겐 박물관(1986년), 그리고 브레멘에 지어진 브레머 여성박물관(1990년)이 1980년대의 독일 여성운동의 성장과 발맞춰 등장했다.

 

1층 상설전시실 내부.
1층 상설전시실 내부.

 

2층 기획전시 내부.
2층 기획전시 내부.

젠더균형적 문화 이끌다

그후 박물관 건립  운동이 잠시 주춤하다 2000년대에 세계적으로 여성박물관 건립 붐이 일어나면서 새롭게 박물관들이 지어졌다. 뉘렌베르크 근처의 피르스-부르그파른바흐에 위치하는 지역-국제여성문화박물관(2006년), 베를린 여성박물관(2007년) 그리고 가장 최근 본에 건립된 여성사의 집(2016년)이 그것이다. 그런데 독일의 여성박물관들은 국제박물관협회(IAWM)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박물관이기 때문에 그 외에 독일 여러 지역의 여성아카이브 자료관과 전시관 등을 포함한다면 박물관의 수는 더 많아진다. 이쯤 되면 사실상 독일에서 여성박물관의 숫자를 운운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이처럼 독일의 여성박물관들은 특성화된 박물관 그리고 참여하는 박물관이라는 최근의 경향성을 매우 잘 보여준다. 박물관들이 여성예술가, 여성운동, 여성문화, 여성인권, 지역운동, 여성사 등 중점을 두는 주제가 각각 다르더라도 철저히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출현해 발전했으며, 글로컬 차원으로 변화하고 있다.

예컨대 브레머 여성박물관의 경우 브레멘과 브레머 하펜에서 살았던 여성 300명 이상의 전기를 포함해 해당 지역의 여성인물들에 대한 자세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뿐만 아니라 브레멘의 도로를 여성들의 이름으로 바꾸는 작업을 비롯해 지역사회에서 젠더균형적 문화를 이끌어가는 구체적인 노력을 벌이고 있다.

마리안네 피첸 관장을 만나면 매우 각별한 인상을 받게 된다. 본이라는 도시의 전통과 현대가 고스란히 그녀에게서 재현되기 때문이다. 본여성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왼편으로 마치 삼위일체를 이루듯 앉아 있는 대지의 여신들-어머니 조각-이 그것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그녀의 작품들과 함께 전시돼 있다. 이 작품은 그녀의 예술세계의 핵심이다.

그녀는 이 대지의 여신들이 기독교의 남성중심적인 삼위일체에 의해 가려졌으나 면면히 내려온 모계 전통의 상징이자 여성의 영적 힘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박물관을 개관한 후 계속해서 고대 로마 시대에 숭배됐던 켈트 여신상의 머리 스타일과 화장법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이 도시의 개방적 성격을 보여주듯 그녀 스스로 가장 첨단의 개방적인 예술가 집단과 작업하며 부단히 변화를 꾀하고 있다.

피첸 관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녀가 본의 과거와 현재를 재현하는 퍼포먼스의 당사자임을 알게 된다. 라인 강변에 위치해 멀리 고대 로마제국 시대부터 알려져 있고, 분단을 거쳐 통일에 이르러 과거 프로이센의 수도였던 베를린으로 수도를 이전하기 직전까지 서독의 수도로서 번창했던 본이 아니던가.

1948년 슈투트가르에서 태어난 그녀는 1970년대에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본 등을 흔들었던 페미니즘 운동의 실천적 흐름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당사자였다. 그녀와의 인터뷰에서 필자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녀가 규정하는 여성박물관의 개념이었다. 그녀는 당시의 경험을 떠올리며 특히 2개의 실천적인 집단을 강조한다.

그녀는 1969년 첫 개인전을 가진 후 1973∼74년에 여성의 유토피아를 염두에 두고 예술집단 ‘여성이 도시를 형성한다’와 ‘여성+미래(Frau + Futura)’를 설립했다. 그녀가 바라보는 여성박물관의 개념은 그녀의 관심 주제와 맞닿아 있다.

즉 언제나 “미래를 내다보고 여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기존의 수많은 박물관들을 방문하면 대부분 여성들이 없거나 혹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형태와 위치가 서거나 눕거나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또 어떤 박물관에는 여성들이 있지만 그녀들의 활동상에 대한 역사 기록이 없다는 점이 그녀에게는 늘 고민이었다.

본여성박물관의 명예관장이자 역사학박사 발렌틴 로드가 함께 인터뷰에 응해줬다. 그녀는 본여성박물관이 여성예술가들을 지원한다는 기치를 내세울 때 기본적으로 역사성을 깔고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녀에 따르면 1981년 건립 이후 지금까지 진행된 모든 상설·기획전시의 도록과 카탈로그, 그리고 출판된 서적들이 데이터베이스로 자료화돼 있는데, 그 중 여성의 역사를 다룬 기획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본여성박물관은 그동안 미술사에서 화가와 미술 작품에 통용되어 왔던 남성중심적 기준을 비판하며 남성의 시선에 의해 대상화된 여성의 몸을 거부하고 여성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편향된 성차별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들을 소장·전시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건립 이후 최근까지 거의 500회 이상의 전시회를 통해 여성예술가들을 세상에 알렸는데, 여기에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전시회 공동작업에 참가했다.

새로운 실험예술의 맥락 안에서 그리고 전시회 이벤트 등을 통해 여성사 탐구가 이뤄졌다. 이 박물관의 콜렉션에는 화가이자 조각가 쾨테 슈미트 콜비츠, 사진가 카타리나 시버딩, 설치예술가 발리 엑스포트, 화가 마리아 라싱, 화가 요코 오노 등의 작품이 포함돼 있다. 그외에도 예술과 여성, 역사와 여성 그리고 정치와 여성을 포함해 페미니즘, 문화정치, 20~21세기 예술, 1945년 이후의 예술, 구성주의 예술, 건축과 디자인 등 특별 주제에 관한 문서고를 가지고 있다.

또 본여성박물관은 여성예술가들의 관심을 주제로 세미나, 워크숍, 자문서비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나아가 본여성박물관은 1994년부터 3년마다 위대한 여성예술가들을 위해 ‘가브리엘 뮌터상’을 조직해 여성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한편 박물관 안에 미술디자인 전람회와 갤러리를 소유하고, 자체적으로 출판사를 갖고 있다.

3층 건물에 3000㎡ 규모의 본여성박물관은 1981년 비어 있는 낡은 포목점 건물에서 운영을 시작했다. 그해에 시 위원회가 여성들에게 여름 한철에만 한시적으로 장소를 사용하도록 허용해줬던 곳인데, 3년 동안 이곳에서 버티다가 여성들의 문화센터를 설립한다는 조건으로 시의회와 타협해 지금의 박물관이 됐다.

본여성박물관의 경우 재정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시에서 보조받는 예산은 운영비와 1명 정도를 고용하는 비용으로 쓰일 뿐인데도 2014년 예산이 66% 삭감됐다.

이런 상황에서 본여성박물관의 대응 전략은 탁월하다. 전시회부터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한편으로는 기금을 조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튜디오 임대 등을 통한 수익사업을 통해 재정을 충당한다. 정규적으로 들어오는 350명의 스폰서 회원의 회비는 박물관의 재정과 운영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본 여성박물관은 재정 자립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금 운영자들과 협력하고 있다.

본여성박물관 안에 독특한 기억의 장소가 있다. 1층 로비의 오른 편에는 특별한 상설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시의 상당부분이 파괴되었는데, 2010년에 성 게르트루드 교회(Gertrudiskapelle) 유물이 발굴돼 관련 유물 일부를 여성박물관에 전시하게 된 것이다.

복장예술가 커트 델란데르(Kurt Delander)와의 친분으로 유물들은 이곳에서 전시공간을 마련했고, 마을의 수호성인, 죽어가는 영혼의 보호자, 토지와 물의 수호성인, 쥐떼 재앙의 수호성인, 여행자와 정원사의 수호성인인 중세의 성녀 게르트루드가 이곳 본 여성박물관에서 다시 살아나게 됐다. 도시의 주민들이 이곳을 찾아 평화를 기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끊임없이 변모하는 본여성박물관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기계형 한양대 연구교수는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몸으로 역사를 읽다』(푸른 역사, 공저), 『혁명과 여성』(선인, 공저)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을 썼다. 현재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HK연구교수. 사단법인 역사‧여성‧미래 사무처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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