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학생들이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관 이삼봉홀 앞에서 최순실 딸 정유라 학생의 부정입학 및 특혜에 관련해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화여대 학생들이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관 이삼봉홀 앞에서 최순실 딸 정유라 학생의 부정입학 및 특혜에 관련해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장한 아들 보아라.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옥중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사형선고를 받은 아들에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히 목숨을 버려라”고도 했다. 세상에 어떤 어머니가 자식에게 죽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어떤 이는 자신의 블로그에 어머니는 어머니다워야 한다면서 안 의사의 모친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자식 생각보다 나라와 민족을 먼저 하는 어머니라면 그건 더 이상 어머니가 아니라 정신병자라고 몰아세우기까지 했다.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할 자유는 있으니까. 자식이 나라를 위해 죽은 것이니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럽다고 말할 게 아니라 먼저 조선의 역사를 부끄러워해야 하고 그런 조국을 탓해야 하며 백성을 챙기지 못한 나라가 과연 나라로서 무슨 자격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그런 ‘허접한 비장함’이야말로 끔찍한 구시대의 프로파간다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민주사회에서 성인이 갖춰야 할 자세는 아버지, 어머니로서의 자세가 먼저지, 민주투사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그의 말이 전적으로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처지다. 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서 조마리아 여사가 보여주는 의연함의 실체를 그는 읽어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투사의 모습 운운했지만, 지금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반민주적 퇴행을 보면서 과연 그 비판이 합당한지 되묻고 싶다. 민주주의와 정의는 ‘자유로운 개인’이 주체적이고 인격적으로 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가치며 소명이다. 그게 망가지는데 어찌 내 안일만을 추구해야 할까.

이 나라의 여성교육을 모두 떠안은 듯 자처한 한 여자대학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도무지 대학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처지가 딱하다. 총장이라는 자는 제 입으로 경찰 병력을 학내로 불러들이고 불통과 독선으로 일관했다. 끝없는 변명과 말도 되지 않는 해명을 되풀이했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지 모른다. 이미 인지부조화의 상태에 빠지면 그렇게 되는 법이니까.

이번에는 비선 실세라는 한 여자의 딸의 문제로 시끄럽다.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자 사표를 냈다. 시기도 놓치고 명분도 잃었다. 그런 판단력으로 가르치는 일을 어찌 해왔는지 의아할 뿐이다. 특혜는 전혀 없다고 말하지만 그걸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 여학생을 둘러싼 학사행정도 마찬가지고 거기에 연루된 교수도 입 꾹 다물고 숨어있다. 이러고도 대학인가?

잘못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그러나 때론 대의를 위해 소아(小我)와 소리(小利)를 버려야 할 때가 있다. 그게 지금이다. ‘이대로’ 버티면 된다는, 더 큰 권력이 버티고 지켜줄 거라는 믿음(혹은 은밀한 명령인지도 모를)으로 생존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긴다면 그 대학도 대학구성원도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다. 찌질한 모습을 보여준 남자들보다 훨씬 더 의연하고 쿨하게 허물을 벗어버릴 용기가 여자들에게 있다는 멋진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물론 이미 늦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그나마 최선의 시기다.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의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그 어머니가 모질고 인정머리 없어서라고 한다면 그건 모욕이고 자기모독이다. 버틴다고 능사가 아니다. 자식에 대한 가장 강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가 자식의 죽음에 대해 얼마나 애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꼈겠는가. 그러나 진정 자식을 사랑하기에 그 어머니는 자식을 평생 가슴에 묻을 것을 알면서도 혹여 자식이 어머니 때문에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일까 싶어 다 녹아버린 애간장 겨우 추스르며 자식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런 의연함을 기억해야 할 때다, 지금이. ‘이대로’ 나가다가 우리 모두 ‘이대로’ 죽게 될 것이다. 모자란 총장의 사표로 끝날 일이 아니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뜻을 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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