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에어컨 실외기로 가득찬 외벽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에어컨 실외기로 가득찬 외벽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주택용 전기요금에 적용되는 누진제 폐지 여론이 분분하며 소송에 참여한 이들도 많다. 전국에서 10건의 소송이 진행중이라고 한다. 최근에도 한 소비자단체가 누진제 폐지 소송을 또 제기했다.

앞으로 어떤 판결이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전기요금 누진제와 관련한 법원의 첫 판결은 누진제는 죄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민사98단독 정우석 판사)은 전기 소비자 17명이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부당하다’며 한전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한전의 약관은 누진체계에 기반하면서도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특정 고객에게는 전기요금을 감액토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각 국의 사회적 상황이나 전력 수요에 따라 누진제가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며 해외 사례에 비춰봤을 때도 현행 전기요금 누진제를 부당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폐지 소송이 줄을 잇고 있지만, 전기요금 누진제의 미덕은 전기를 아껴 쓰는 가구에게는 저렴한 요금을 적용해 준다는 것이다. 가정의 전기 사용량은 가구원 수에 큰 영향을 받긴 하지만, 소득이 많을수록, 주택 면적이 넓을수록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 누진제는 전기를 많이 사용할수록 요금 단가를 높게 책정하고 전기를 적게 쓰는 가정에게 혜택을 줌으로써 소득 재분배의 효과도 있다.

그러나 지난 여름 폭염이 지속되면서 요금 걱정에 켤 수도 없는 에어컨은 ‘현대판 굴비’라는 말까지 나오면서 누진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누진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다가오는 겨울부터 새로운 요금 기준이 적용될 수도 있다. 그에 따라 실제로 우리집은 혜택을 볼지, 손해를 볼지, 정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누진제 단계와 누진율을 줄이는 방식으로 누진제를 완화하면 모든 가구의 전기요금이 할인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전이 지금의 주택용 전기요금 총액을 그대로 받는 것을 전제로 하면 전기 저소비 가정의 전기요금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전기 소비가 급증했던 올해 8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구간별 가구 수 통계를 살펴보니, 1단계 13.3%, 2단계 17.0%, 3단계 20.0%, 4단계 23.1%, 5단계 17.8%, 6단계 8.8%였다. 4단계의 전기요금은 4만~7만원대, 5단계의 전기요금은 8만~13만원 정도이고, 6단계는 13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전기 소비량이 많은 한여름이었는데도 6단계에 해당하는 가구 비율은 한자리수인 반면, 1~3단계 구간의 가정이 절반 이상이다. 누진제가 완화되면 전기요금이 올라갈 가능성이 큰 가구 수가 훨씬 많다는 말이다. 말을 바꾸면, 현재 누진제로 인해 경제적 혜택을 받고 있는 가구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누진제가 폐지되면 손해 보는데도 누진제 폐지 목소리에 부화뇌동했던 것은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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