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창간되던 1988년 흥행작 중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 ‘매춘’이 유일무이

 

페미니즘이 ‘대세’인 2016년 10월 지금은

남성의 시선에 포획당하지 않는 여성 캐릭터 ‘봇물’

 

‘개 같은 날의 오후’에 출연한 손숙. 그가 맡은 경숙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모순을 가장 넓고 통합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인물이다.
‘개 같은 날의 오후’에 출연한 손숙. 그가 맡은 경숙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모순을 가장 넓고 통합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인물이다.

‘개 같은 날의 오후’(1995) 손숙

1990년대 초중반 페미니즘은 한국영화의 중요한 소재이자 주제 중 하나였다. ‘그대안의 블루’(1992),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1995),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등의 영화들이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논의를 각각의 방식으로 확장시켰다.

이 중 ‘개 같은 날의 오후’은 페미니즘 비평의 환대를 받았을 뿐 아니라 흥행에도 성공한다. 겉으로 평범한 일상을 사는 여성들이지만 그 일상을 한번은 확 뒤집는 사고에 기꺼이 참여하는데 동기가 될만한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있다. 각각의 사연과 처지는 차이가 있으며 -그 안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관계도 있으며,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아닌 사람도 있다-,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며 연대할 수 있는 공감력과 자매애가 있다.

지금 기준에서 보아도 모범적인 페미니즘 대중영화가 될만한 요소를 두로 갖춘 영화다. 영화가 페미니스트 캐릭터로 전면화시키는 인물은 없지만, 경숙(손숙)이 여러 여성 중 여성에 대한 차별과 모순을 가장 넓고 통합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인물이라는 암시는 있다. 정희(하유미)가 남편에게 두들겨 맞고 그에 화난 여자들이 폭력으로 맞서면서 여자, 남자들이 편을 나눠 싸우게 되고 이 사건이 옥상 점거 사건으로 번지게 될 때도, 유미(김알음)가 트렌스젠더라는 사실이 경찰에 의해 폭로될 때도 별로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사람들을 다독이고 갈등을 조용히 조절하는 사람은 경숙이다.

마지막 체포되는 장면에서 가족과 지인들로 둘러싸이는 다른 동료들 사이로 항상 혼자였다는 듯이 신발을 챙겨서 경찰 버스에 타는 순간은 경숙을 다시 한번 주목하게 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심은하(왼쪽). 처음에 관객은 정원(한석규)의 시선에 포착된 모습으로 다림을 마주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다림(심은하)의 서사는 쉽게 정원의 서사에 통합되지 않는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심은하(왼쪽). 처음에 관객은 정원(한석규)의 시선에 포착된 모습으로 다림을 마주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다림(심은하)의 서사는 쉽게 정원의 서사에 통합되지 않는다.

‘8월의 크리스마스’(1988) 심은하

90년대 후반 ‘은행나무 침대’ ‘고스트 맘마’ ‘편지’ ‘약속’ 등 순애보 멜로드라마의 유행은 당시의 한국영화가 여성친화적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이 ‘순애보’들의 주인은 남성들이었다.

이 영화의 여성들은-IMF 직후의 한국-남성들이 울고 후회하고 분통을 터뜨리기 위한 핑계처럼 대상으로 등장한다. 한편 ‘8월의 크리스마스’ 역시 남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지만, 다림(심은하)은 이에 부분적으로 통합되면서도 여기서 벗어나 독립적인 자신의 시선과 공간을 확보한다. 처음에 관객은 정원(한석규)의 시선에 포착된 모습으로 다림을 마주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다림은 정원의 시선에 매개되지 않고 등장하며 그녀의 서사가 쉽게 정원의 서사에 통합되지도 않는다.

‘일하는 여성’이 흔히 대중매체에 등장할 때 상투적으로 묘사되는 대단한 ‘전문직’은 아니지만 관객이 구체적으로 서사화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낮은 목소리3–숨결’의 이용수 할머니(앞줄 오른쪽서 둘째).
‘낮은 목소리3–숨결’의 이용수 할머니(앞줄 오른쪽서 둘째).

‘낮은 목소리3–숨결’(1999) 이용수 할머니

변영주 감독의 위안부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의 3편 ‘숨결’의 인터뷰어는 그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 중 한명인 이용수 할머니다. 이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그 전편들과 비교해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선정성과 공익성 사이에서 위태롭고 조심스럽게 물어지던 ‘위안소’와 관련된 질문들은 질문자와 질문자 대상 사이의 벽을 허물어트리며 친밀하고 때로는 기이하게 천친난만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할머니는 이 인터뷰어 역할을 적극 자청했다. 90년대 후반에는 모든 지원단체들을 떠나 할머니들만의 독립적인 피해자회를 설립하는데 적극 참여하기도 했고, 현재 일본과 한국의 협상을 반대하는 운동 역시 가장 앞장서서 하고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배두나. 자신을 억압하는 것을 꿰뚫어 보고, 휘둘리지 않으며, 삶의 모험과 재미를 적극 탐험하는 밀레니엄 시대의 새로운 페미니즘 캐릭터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배두나. 자신을 억압하는 것을 꿰뚫어 보고, 휘둘리지 않으며, 삶의 모험과 재미를 적극 탐험하는 밀레니엄 시대의 새로운 페미니즘 캐릭터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 배두나

아버지의 식당에서 무급으로 일했던 태희(배두나)는 가출을 결심하고, 가족 사진에서 얼굴을 도려낸다. 가출자금은 받지 못한 자신의 일년치 월급만큼 아버지의 돈에서 훔쳤다. 책과 독서등, 라디오를 챙긴 가방과 혼자 훌쩍 떠나도 그런대로 재미있겠지만 소년원에서 나오는 지영을 기다렸다 함께 가자고 말한다. 자신을 억압하는 것을 꿰뚫어 보고, 휘둘리지 않으며, 호기심을 가지고 삶의 모험과 재미를 적극 탐험하는 밀레니엄 시대의 새로운 페미니즘.

 

‘비밀은 없다’의 손예진. 가치판단에서 자유로운 혹은 가치판단을 무력화시키는 여성을 보는 신선함이 있다.
‘비밀은 없다’의 손예진. 가치판단에서 자유로운 혹은 가치판단을 무력화시키는 여성을 보는 신선함이 있다.

‘잘돼가, 무엇이든?’(2004) 최희진/서영주, ‘미쓰 홍당무’ 공효진, ‘비밀은 없다’ 손예진

지영(최희진)과 희진(서영주)의 갈등은 가부장적이고 자본주의적인 권력에 의해 발생되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전면화된 거부나 저항으로 이뤄진다기보다는 협상과 지연, 부분적 저항으로 이뤄진다.

희진이 더 순응적으로 보이지만, 사장의 명령에 가치판단하지 않고 굴복하는 한편 사장과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꼼수로 더 획득하고 있다. 완결적이고 도덕적인 캐릭터도 아니고 부도덕한 인물들도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내달리고 남 탓도, 후회도 많이 한다. 이경미 감독의 다른 작품인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공효진)이나 ‘비밀은 없다’의 연홍(손예진)과도 닮아 있다. 전면적으로 지지하기는 힘들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들이 특히 남성적 시선에 포섭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가치판단에서 자유로운 혹은 가치판단을 무력화시키는 여성인물들을 보는 신선함.

 

‘시’의 윤정희. 타자의 고통과 그 공감 혹은 윤리적 애도라는 주제를 시라는 매개체를 통해 열렬히 탐구하는 철학자이자 예술가다.
‘시’의 윤정희. 타자의 고통과 그 공감 혹은 윤리적 애도라는 주제를 시라는 매개체를 통해 열렬히 탐구하는 철학자이자 예술가다.

‘시’(2010) 윤정희

미자(윤정희)는 손자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을 대신 짊어지는 흔한 할머니가 아니다. 타자의 고통과 그 공감 혹은 윤리적 애도라는-페미니즘의 중요한- 주제를 시라는 매개체를 통해 열렬히 탐구하는 철학자이자 예술가다. 자신이 사라지는 것으로 완결하는 이 윤리의 방식이 옳은가는 토론의 주제이겠지만 미자가 타자에 대한 윤리를 격렬하게 고민했다는 것은 이의의 여지가 없다.

 

‘아가씨’ 김민희와 김태리. 영화 속 김민희의 변화는 돌진하는 김태리와 함께 있을 때 완성된다.
‘아가씨’ 김민희와 김태리. 영화 속 김민희의 변화는 돌진하는 김태리와 함께 있을 때 완성된다.

‘아가씨’(2016) 김태리, 김민희

‘아가씨’의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사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숙희”에서 ‘숙희’를 페미니즘으로 바꿔보자. 그럴듯하지 않을까. 숙희는 본능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돌진한다. 잃을 게 별로 없기 때문이겠지만, 숙희(김태리)는 자신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은지 그른지, 이익이 될지 안될지 크게 따지지 않는다.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캐릭터의 변화, 특히 백작과 함께 있을 때 ‘(이성애적) 섹스’를 조롱하고 전유하는 장면들이 페미니즘적으로 읽기에는 더욱 모범이겠지만, 히데코의 변화는 돌진하는 숙희와 함께 있을 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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