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숙 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장(8)
김문숙 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장(8)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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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자존심회복은 국권회복

부산에서 여성운동 씨앗 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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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안부 문제를 지역 속에서 전개시키고 여성단체 활동을

통해 적극적인 여성을 배출함으로써 여성인권을 지키는

사업에 기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사진·민원기 기자>



“할머니들의 정신적 후유증과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는 일본의 공식적 사

과가 꼭 있어야 하며,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뤄져야 합니다.”라고

말문을 여는 정신대문제대책 부산 협의회장 김문숙 씨. 그는 일본을 상대로

‘군위안부 국가 배상’을 최초로 이끌어 승소함으로써 일본에게 짓밟힌 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자존심을 세우는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대한 여성경제인연합회 회장, 부산여성의 전화 설립, 부산 여성상 제정,

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장, 정신대 신고전화 설치, 성폭력피해상담소장

등 열거하기에도 벅찬(?) 그의 이력이 김 회장이 부산에서 80년대 여성운동

의 씨앗을 심었던 장본인임을 대변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처참함이 운동계기



그가 정신대문제대책 협의회를 꾸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90년 일본에

기거하는 군위안부 할머니를 다룬 기사를 접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일본에

건너가 일본에 있는 군위안부 할머니들이 윤락녀로서 쓸쓸히 노후를 맞이하

는 것을 확인한 그는 91년 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를 만들었다. 초기에

는 서울에 있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활동을 함께 했으나 거리상의 문

제로 부산지역의 독자적인 모임을 만든 것.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생존자를 찾아 다녔다.



“수소문하여 찾은 할머니들은 모두 신문지 도배도 못하고 짚만 간신히

깔은 흙집에서 살고 있었어요. 이미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홀몸으로 끼니

해결도 못해 굶는 형편이었지만 자신의 옛 악몽을 들추어내기를 꺼려하셨어

요.”



그래서 착안한 것이 91년에 ‘정신대 신고전화’. 이와 더불어 할머니들

에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설득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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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이 군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던

일본치바현의 종군위안부 위령비.



그래서 92년 12월엔 군위안부 할머니 6명과 공장근로자로 일했던 근로정

신대 할머니 4명을 설득하여 ‘사죄,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시작했다.

사비로 비행기표와 소송비를 마련하는 재정적인 어려움과 함께 일일이 일어

로 번역하여 재판소송을 준비해야 하는 등 어려운 시간들과 싸워야 했다.

이전에 있었던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위안부 할머니들 소송들이 모두 패

소한 뒤였기 때문에 시작하는 데 많은 심적 부담까지 짊어져야 했다. 그러

나 6년 만인 98년 4월에 23번의 재판과 함께 지리한 싸움에서 일본이 할머

니들에게 30만 엔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얻어냈다.



“일본돈 30만엔을 받으려고 재판을 시작한 게 아닙니다. 일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국제사회에 알림으로써 위안부 할머니들의 지난날

의 억울함을 풀어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측 검사들이 다시 항소를 올렸고 8월과 10월 또다시 재판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 여성운동 모태는 어머니와 김활란 여사



그가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드라마틱한 계기나 필연적인 운명같은

동기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러나 여성운동을 하게 된 모태는 어머니였다고

그는 말한다. 유난히 가부장적 문화가 짙은 부산이라는 지역에서 아들 딸을

차별없이 키우고 동등하게 교육시킨 어머니의 역할이 매우 큰 영향을 미쳤

다고 말한다. 이화여대를 다니면서 들었던 김활란 여사의 강연과 다른 선배

들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후 진주여고 교사로 일하면서‘적극적인 삶의 주체로서의 여성’을 가

르치며, 여성의식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48년 당시 여성의식 교육에 힘썼다.

또 그는 이미 70년대 불모지였던 관광시장에 뛰어들어 ‘아리랑 여행사’를

설립하고 부산에서 여사장 1호로, 여성경제인 모델 만들기에도 성공. 이렇게

교사로 여성경제인으로 생활 속의 여성운동을 실행하던 그가 80년대 들어서

서 좀더 전문적인 활동가로서 변신한다. 그것이 86년 부산여성의전화 설립

이다.



“주변을 보니 참고 사는 여자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전에도 여성단체를

운영하긴 했지만 여성에게 실질적인 힘이 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야겠다

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죠.”



그와 더불어 그는 90년 ‘부산 여성상’을 제정하여 여성의 목소리를 사

회에 알린 여성들을 표창하기 시작했다. 그 첫 수상자는 여공들의 급료를

떼어먹고 달아난 일본 기업주를 상대로 투쟁하여 월급을 받아낸 마산의

‘쓰미다’전기회사 노조위원장 정현숙씨와 부위원장 황현자씨였다. 또 독

도 수비대로 일하면서 민족적 긍지와 여성의 자부심을 살린 박영희 여사도

부산 여성상을 수상했다.



지역색 극복 위해선 GO·NGO연대돼야



지방과 중앙의 격차가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거기다 지도자 계층과 일반

여성의 격차가 또 존재하기 때문에 지방의 여성인권이나 여성의식은 매우

낙후돼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거기다 부산지역의 가부장적 특수성

까지 더해져 부산에서 여성운동은 매우 열악한 수준이라는 것. “현재 100

개 가까운 여성단체가 있지만 전문성 부족으로 봉사활동 수준에서 크게 벗

어나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국제대회에 나가보면 세계 여느 나라 여성

못지 않게 우수한 여성들이 많은데 말입니다”라며 여성운동이 대중 속까지

파고들지 못하는 현실을 아쉬워한다.



“‘대중에게 파고들 수 있느냐’는 여성운동의 성패를 가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운동을 남의 일로, 또는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부터 고쳐져야 합니다.”



김 회장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GO와 NGO의 연대. “부산같은 가부장

적 문화가 지배적인 지역에서 효율적인 여성운동을 위해서는 GO와 NGO의

연대가 매우 절실한 부분입니다”라고 말한다.



이와 더불어 여성단체 간의 연대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부산 여성단체연합 및 부산여성단체협의회와 더불어 ‘호주제 폐지’를 위

한 연대활동도 활발히 벌이고 있으며, 농협 성희롱 사태에 관련해서는 부산

시 여성단체 45개가 연대해서 신문에 성명서를 제출하는 등 활발한 연대활

동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프로전략이 바로 여성운동 전략



‘여성들여! 프로가 되라’는 김 회장의 오랜 구호이다. 문화, 통일 등 어

느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여성이기 때문에 배려를

하라’는 식의 소극적 여성운동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말한다.



또 스스로 독립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기대는 것이 여성운동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결혼을 생활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여성이 종속

적으로 살게 되는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이혼을 준비하

라’를 또 외친다. “하루에 천원씩이라도 모아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도록

항상 준비하고, 자식에게는 엄마 없이도 생활 가능하도록 준비시키라고 말

하죠.”



현재 김 회장은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을 준비하며, 위

안부 할머니들의 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이 할머니들이 돌아가시

기 전에 어서 빨리 일본측의 사죄가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김유 혜원 기자 dasom@womennews.co.kr]



(김문숙 이력)

48년 진주여고 교사. 81년 대한 여성경제인 연합회 회장. 85년 부산 여성

단체 총연합회 8대 회장. 86년 부산여성의전화 설립. 90년 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 설립. 91년 정신대 신고전화 설치. 92년 일본정부 상대 ‘사죄와

배상 청구소송’ 제기. 95년 성폭력피해상담소 개설. 98년 일본 법원에 ‘군

위안부 국가배상’ 재판에서 승리배상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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