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출산부터 낙태 문제, 외모에 대한 간섭까지…

 

“애 언제 낳을 거야?” 임신 강요하는 한국사회

“낙태죄 처벌할 것” 여성 자기결정권 박탈

 

“살 빼면 예쁘겠다” “화장하고 다녀라”

외모 지적·평가도

 

영화 ‘임브레이스’(Embrace)의 감독 타린 브럼핏이 2013년 본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사진이다. 여성의 몸에 몸무게에 따른 각종 편견이 담긴 단어들이 새겨져있다. ⓒ타린 브럼핏 감독 트위터
영화 ‘임브레이스’(Embrace)의 감독 타린 브럼핏이 2013년 본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사진이다. 여성의 몸에 몸무게에 따른 각종 편견이 담긴 단어들이 새겨져있다. ⓒ타린 브럼핏 감독 트위터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

1989년 미국의 페미니즘 미술가 바바라 크루거(71)는 작품을 통해 말했다. 당시 낙태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여성들의 시위 포스터로 쓰인 이미지에는 낙태 여부가 남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분노가 담겨 있다. 그때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크루거의 작품은 한국 여성들에게 고스란히 적용된다.

여성들은 묻고 싶다.

“누가 나의 몸 위에서 싸우는가?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여성이 겪는 고통은 30년 전 그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여성의 몸은 여전히 국가권력에 의해 통제 당하며, 사회의 시선에 의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평가 받는다.

출산 안 할 자유, 임신 중단할 자유도 없다

20대 후반의 김모씨는 최근 들어 아버지에게서 ‘애 낳을 나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비출산주의이자 비혼주의인 그는 “나이 서른이면 생산할 나이”라며 결혼과 임신을 권유하는 아버지의 말을 들을 때마다 곤혹스럽다. 애를 낳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뒤 임신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비출산주의로 살아갈 것”이라 말하고 있지만 ‘임신은 여성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부모님은 김씨의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성은 가족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 의해서도 임신을 강요받는다.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은 13일 페이스북에 정부의 “내년 출생아 2만 명 늘린다”는 뉴스 보도를 게재한 뒤, “국가가 국민을 도구로 삼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 중 하나는 국민의 존재를 자궁으로 치환하고 그 자궁을 ‘국민 재생산 공장’으로 파악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저출산 대책을 꼬집었다.

이에 누리꾼들은 “(국가가) 여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명백하게 보여주는(행태다)” “신생아가 늘리고 싶다고 마음대로 늘려지는 건가?” “무슨 수로 늘리려는 건지. 누가 낳겠대? 너희가 낳을 거야?” “누구 맘대로 2만 명?”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여성을 출산 도구로 바라보는 국가 대책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비출산에 대한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여성은 임신중단에 대한 결정권도 보장받지 못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2일 의료인의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기준을 담은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령안’을 공개했다. 개정안에는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 범위의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포함시켜 관련 의료진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이에 반발한 의사들은 낙태 수술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의료계에 맞서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는 한국판 ‘검은 시위’가 열렸다. 페미니스트 그룹과 시위에 참가한 500여명의 시민은 “자궁은 공공재가 아니다. 내 자궁은 나의 것!” “여성은 애 낳는 기계가 아니다! 낙태죄를 폐지하라” “낙태 권리는 여성 존엄의 권리”라고 외치며 낙태죄 폐지를 주장했다.

대학생 이수아(23‧가명)씨는 “중학생 때 낙태 관련 동영상을 보고 낙태는 살인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며 “그 인식은 성인이 된 후에도 꽤 오랫동안 남아 있어 무의식적으로 낙태는 나쁜 것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주의 활동을 하면서 임신중절은 여성의 권리란 것을 깨달았다”며 “정부는 여성의 몸을 더 이상 통제하지 말고, 학교는 여학생들에게 죄책감 심어주는 낙태 교육을 당장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금도 여성은 여전히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낙태 금지법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자 보건복지부는 17일 “낙태 의사 처벌 강화는 없던 일로 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여성들은 “여성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선 아직 멀었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계속 싸워나가야 한다”며 불합리한 낙태 법률 개정을 바꿔나가기 위해 투쟁의 의지를 보였다.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나의 자궁, 나의 것-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검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낙태금지법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나의 자궁, 나의 것-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검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낙태금지법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여성 몸에 엄격한 잣대 들이밀지 마!

크루거는 1981년 작품을 통해 “당신의 시선이 나의 뺨을 때린다”(Your gaze hits the side of my face)고 말하며 남성의 시선에 담긴 여성에 대한 소유와 지배욕을 꼬집었다. 여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남성의 욕심은 여성에 대한 간섭으로 나타나고 이는 여성의 몸매와 외모, 화장, 옷 등에 대한 평가와 통제로 이어진다.

“너 눈만 좀 집으면 진짜 예쁘겠다” “아이섀도우를 왜 그렇게 진하게 바르냐?” “야, 넌 살 빼고 나서 다 좋은데 상체는 좀 쪄야 돼” “넌 왜 이렇게 말랐어? 한 대 치면 부러지겠다” “여자애가 왜 이렇게 털이 많아?” “크롭탑이나 미니스커트 입으면 솔직히 완전 쉬운 여자로 보여.” 모두 여성의 몸을 평가하는 말이다. 여성의 몸과 관련된 것들은 오랫동안 남성의 시선과 기준에 의해 재단되고 점수 매겨져 왔다.

한국사회에서 외모에 대한 지나친 평가는 어제 오늘 이야기된 사안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는 줄곧 비판의 대상으로 꼽혀왔지만, ‘예쁜 여자’ ‘잘생긴 남자’를 추켜세우는 사회분위기는 견고해지고 있다. 그리고 외모에 대한 엄격한 기준은 특히 여성에게 모질게 적용된다. 아르바이트 전문구인구직 포털 사이트 알바몬이 2014년 대학생 700여명을 대상으로 ‘남녀 성별 만족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여학생들은 ‘여자에게 유난히 혹독한 외모지상주의(65%)’를 성차별 요인 1위로 꼽았다. 우리 사회는 외모부터 몸매, 화장법, 패션 등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항목에 따라 여성의 몸을 평가한다.

여성은 어렸을 때부터 외모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다. 대학생 김민경(23)씨는 “여자애들은 어릴 때부터 ‘우리 딸은 미스코리아 나가야지’ ‘너는 못생겨서 미스코리아 못나가겠네’ 같은 소리를 듣는다”며 “남자애들은 그런 말을 듣지 않는데 유독 여자 아이에게만 외모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성차별이며 외모에 대한 과도한 평가”라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24)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피부 이야기를 하더라. 특히 ‘여자애가 얼굴이 이래서 어떡해’라는 말이 가장 짜증났다. 그래서 피부 관리에 돈을 엄청 들였다”며 어렸을 때부터 겪은 피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털어놨다.

여성은 특히 성인이 된 후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다. 박씨의 말. “학생 때는 화장을 잘 안 하고 다녔는데 대학 동기가 ‘넌 화장 좀만 하면 예쁘겠다’는 말을 했어요. 당시에는 칭찬으로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화장을 해야 예쁘다’는 말과 같잖아요. 제 얼굴이 평가 당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빴죠.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칭찬이든 지적이든 상대방에게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하루에 1200kcal 이상은 먹지 않으며 식단조절과 운동을 통해 8kg을 감량한 서혜원(22)씨는 대학 선배에게서 “누구누구는 살을 빼고 나서 건강해 보이는데 넌 너무 힘없이 말랐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살을 뺀 후 자신의 몸에 만족했던 서씨는 “내 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지적하는 말에 굉장히 불쾌했다. 왜 남자들은 자기들 멋대로 기준을 세워 여성의 몸을 평가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유지은(23‧가명)씨는 털과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전 어렸을 때부터 털이 많았어요. 그래서 초등학생 땐 ‘원숭이 같다’ ‘남자 같다’고 놀림 받기도 했죠. 어릴 땐 그게 너무 창피해서 중학교 들어가자마자 제모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지금도 여름이 되면 제모하느라 바빠요. 집에서 제모기로 털을 뽑는데 너무 아프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어쩔 수 없죠.”

TV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여자 연예인이 제모에 대해 이야기하면 남자들은 별난 것으로 보고 신기해하거나 희화화한다. 또 간혹 여성 연예인의 몸에 있는 털이 화면에 비춰지면 시청자들은 그의 이름을 거론하며 ‘OOO 팔에 털’ ‘OOO 털 논란’ 등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어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뜨리고 이는 기사화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몸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 방증하는 대목이다.

 

영화 ‘임브레이스’(Embrace)의 한 장면. 여성은 자신의 몸을 생각하면 실제 몸매와는 상관없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타린 브럼핏 감독이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각지의 사람들과 나눈 여성의 몸에 관한 대화를 담았다.
영화 ‘임브레이스’(Embrace)의 한 장면. 여성은 자신의 몸을 생각하면 실제 몸매와는 상관없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타린 브럼핏 감독이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각지의 사람들과 나눈 여성의 몸에 관한 대화를 담았다.

‘몸의 다양성’을 배제하는 미디어

여성의 신체는 부위별로 나뉜 채 ‘V라인’ ‘S라인’ ‘베이글’ ‘꿀벅지’ 등의 이름이 붙곤 한다. 이처럼 여성의 몸은 얼굴, 몸매, 가슴, 허벅지 등 부위마다 완벽함을 요구받곤 한다. 미디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규격화된 미의 기준’은 일반 여성에게도 요구된다. 대한비만학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남성 비만율은 40.7%, 여성 비만율은 24.5%였다.

미디어를 통해 재현되는 여성의 몸은 대개 마른 몸매이며 특히 45~50kg대는 여성 몸무게의 표준으로 그려진다. TV 방송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 중 비만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고, 대부분은 마른 몸매에 굴곡진 선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6일 열린 ‘미디어의 몸 다양성 확보를 위한 실태조사 결과발표회’에서 “한국 드라마는 비만의 여자 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다”며 “비만인 출연자가 나오더라도 그 분량이나 출연 횟수가 매우 적고, 비만인 여성 배우들은 일상적으로 외모 지적을 받으며 ‘주연 맡으려면 살 빼라’는 이야기를 듣는 등 차별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돈의 화신’의 복재인(황정음) ‘오 마이 비너스’의 강주은(신민아) 등 뚱뚱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는 모두 분장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그들은 결국 살을 빼서 극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비만 여성은 그 자체로 주인공이 될 수 없으며 살을 빼고 외모가 변해야만 주인공의 자격을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국 미디어에서 ‘여성의 몸=마른 몸매’로 굳어져 있으며 뚱뚱한 여성은 주체성이 사라지곤 한다.

최근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몸은 그냥 몸일 뿐, 아름다움의 결정체가 아니다”라며 마른 몸매, S라인 등 정형화된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내 몸 긍정하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플러스사이즈 모델이 주목을 받으면서 여성의 다양한 몸을 이야기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의류‧화장품 업계에서도 여성들의 다양한 몸을 긍정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내세우면서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를 확산시키고 있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기본적으로 한국사회는 마르고 예쁜 여성을 선호한다”며 “뚱뚱한 여성은 외면하는 분위기라 그들에게는 기회가 돌아가지 않고 결국 방송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디어에서는 마른 여성을 ‘착한 몸매’라고 숭상하며 칭찬하는 반면, 뚱뚱한 여성은 욕하고 조롱하며 멸시한다. 이는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며 “뚱뚱한 여성을 욕하고 조롱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고 꾸준히 봐온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윤 소장은 “이를 해결하려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날씬하고 예쁜 사람만 주인공을 맡는 게 아니라 다양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 주연이나 긍정적 인물을 맡게 해 여성에 대한 다양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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