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10명이 말하는 낙태죄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 ③

“나의 자궁은 나의 것!” “진짜 문제는 ‘낙태죄’다!” 한동안 잠잠했던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 합법화 운동이 다시 일고 있다. 지난 17일 여성·성소수자 단체 등 67개 단체는 “인공임신중절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 입법예고안을 철회하고 형법상의 ‘낙태죄’를 폐지하라”는 요지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시민 3000여 명도 이 성명에 참여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여성을 낙태죄로 처벌하는 형법 개정을 위한 청원’ 1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임신, 임신중절,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국가가 이에 대한 권리를 통제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낙태죄’에 대한 논의는 여성의 재생산권, 복지와 가부장제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낙태죄 폐지’ 공동성명에 참여한 페미니스트 10명에게 왜 성명에 참여했는지, 낙태죄는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한국 사회가 언제 여성에게 모성을 선택할 권리를 줬나? 강요하기만 했다”

임신·출산을 할 수 없는 남성인 제가 낙태 문제에 직접 목소리를 높이려니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여성들뿐만이 아니라 남성들이 보기에도 비상식적이고 불평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언제 여성에게 모성을 선택할 권리를 줬습니까? 오히려 늘 출산을 강요해왔습니다. 그런 시대는 이제 지났습니다. 가부장제도, 정부도, 의사도, 종교도 여성의 몸과 삶을 함부로 판단하고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비난을 받아야 할 자들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낙태 처벌 강화 계획을 재검토하겠다는 복지부의 자세에서 희망을 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낙태죄’라는 개념이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여성도 마음 놓고 임신, 출산, 육아를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당사자인 여성들은 물론, 정계와 의료계와 머리를 맞대고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길 바랍니다. 시민들의 의식을 개선할 제대로 된 성교육과 성평등 교육도 꼭 마련하길 바랍니다. (최재혁·서울 서초구)

 

 

“생명 경시? 남녀 갈등? 낙태죄 폐지는 상식의 문제”

저는 이번 공동성명만이 아니라 지난 15일 서울 보신각 일대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에도 참가했습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제 주변에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거나 낙태 문제에 촉각을 기울이는 남성들이 별로 없는데, 이날 예상외로 많은 남성 참가자들이 보였거든요. 여자친구와 함께 온 분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덮어놓고 낳다보면 나는 인생 개망해/덮어놓고 낳다보면 나는 경력단절녀” 등 위트 있는 노래를 만들어 함께 불렀습니다. 낙태 경험, 여성이기에 받아 온 차별과 고통, 무지하고 무책임한 남성들 뒷담화 등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졌습니다. 때론 엄숙해졌고, 때론 분노했지만 사람들은 시종 유쾌했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중요한 가치를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데 흥분을 감출 수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임신은 여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태아가 이 세상에 나왔을 때, 하나의 소중한 생명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으며 자랄 수 있는지를 누가 알까요? 여성입니다. 보건복지부도, 사라진 남자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습니다. ‘낙태죄 폐지’는 생명 경시의 문제도, 남녀 갈등을 유발하는 문제도 아닙니다. 이것은 상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OO·경희대)

 

“‘낙태는 죄’라는 정부와 사회, 남성의 문제여도 그랬을까?”

남성이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래도 낙태가 ‘죄’였을까요?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보험조차 안 되는 불안전한 수술을 몰래 받으며 몸과 마음의 고통에 시달리는 남성들이 한 해 20만 명에 이르는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해 최소 5000여 명의 미혼부가 생겨나고, 아동 양육비로 월 2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 사회의 낙인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회가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낙태는 죄’라는 정부와 사회에 요구합니다. 이것은 여성의 문제입니다.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폴란드에서, 아일랜드에서도 같은 논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으십시오. 여성의 성(性)과 신체를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모든 규범과 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전복하려 싸우는 이들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박예진·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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