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강동원 중학생 신은수에게 “오빠라고 불러”

블락비 박경 “키썸이 오빠라고 불러 설렜다”…

오빠란 단어는 왜 남자에게 남다른 감정 불러일으킬까

가부장제 사회에서 ‘오빠’ 호칭 바라는 건 남성 역할에 대한 집착

“나 아직 오빠야/ 오빠로 돌아갈래/ 제발 아저씨라 부르지 마/ 오빠라고 불러다오.”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장미여관과 노홍철이 함께 부른 노래 ‘오빠라고 불러다오’에는 여성에게 오빠라고 불리길 바라는 남자의 갈망이 응축돼 있다. 한국사회에서 남자들에게 ‘오빠’란 호칭은 단순히 단어를 넘어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는 듯하다. 주변의 지인뿐만 아니라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광고 등 미디어에서도 ‘오빠’ 호칭을 원하는 남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오빠’ 서사에선 배우 강동원도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강동원의 ‘오빠’ 발언은 온오프라인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배우 강동원(35)이 지난 11일 서울 압구정 CGV에서 열린 영화 ‘가려진 시간’ 제작보고회에서 한 ‘오빠’ 발언이 알려지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논란이 됐다.

강동원은 이번 영화에서 함께 주연을 맡은 배우 신은수(14)에게 “은수가 내게 계속 선배님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편하게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래도 (오빠라고) 잘 못 불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본인 매니저에게는 오빠라고 하더라. 분명히 나보다 나이가 들어보였는데 알고 보니 좀 더 어렸다. 그래서 은수한테 ‘아무리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왜 나한테는 오빠라고 안 부르냐’고 했다”고 말했다.

2002년생인 신은수는 현재 14살로, 35살인 강동원과 21살 차이가 난다. 신은수는 강동원과의 호흡이 어땠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강동원이) 너무 대선배님이시라 불편했다”고 답했다.

강동원의 ‘오빠’ 발언이 알려지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어린 신인에게는 그런 말 한 마디도 압박감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며 강동원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트위터 이용자도 “(본인과 20살 어린 후배 사이의) 권력위계 차이를 생각하길 바란다”며 “중학생에게 ‘오빠 드립’ 치기에는 너무 나이차이 나지 않냐”고 꼬집었다.

이에 맞서 한 누리꾼은 “강동원은 남자 아역 배우에게도 형이라 부르라고 한 적 있다”면서 “그냥 (나이 어린 후배가) ‘선배님’이라고 하는 게 불편해 보이니까 ‘형’ ‘오빠’라고 부르라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강동원 정도 되는 사람이 오빠란 말을 듣고 싶어 했을 리가 없다. 그냥 선배라는 호칭이 싫었을 것”이라며 강동원을 지지하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옹호 의견도 있지만 반발도 만만찮았다. 한 누리꾼은 “조카뻘이고도 남을 애한테 오빠 소리라니” “만약 평범한 성인 남자가 20살 이상 어린 여성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바란다면 그건 결코 친근한 호칭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길 바란다”며 한국사회에서 남자들이 여성에게 ‘오빠’라고 부르기를 기대하고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문화라고 지적했다.

지난 5일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가수 박경(블락비)은 키썸에게 오빠 소리를 들어 설렜다며 남자로서 오빠라는 호칭에 남다른 감정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박경은 “오늘 키썸과 같이 노래를 부른다. 제작진을 통해 전화번호를 교환해 제가 먼저 연락을 했는데 초면에 오빠라고 하더라. 그래서 저한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선배님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데 오빠라고 하더라. 그것도 두 번 연속으로 오빠라고 불렀다. 남자로서 오빠라는 단어가….”라며 오빠라는 호칭에 설렜다고 말했다. 이에 가수 키썸은 “아니, 그럼 뭐라고 불러요? 박경씨라고 하느냐”고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저희 친오빠와 나이가 같아서 그냥 자연스럽게 오빠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진행자 김구라도 “오빠를 오빠라고 하지, 뭐라고 부르냐”며 황당한 기색을 드러냈다.

페미니스트 그룹 ‘바람계곡의 페미니즘’은 15일 페이스북에 본지의 기사(배우 강동원, 20살 어린 후배에게 “왜 오빠라고 안 불러?”)를 링크한 후 “한국사회에서 ‘오빠’란 단어는 단순히 손윗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며 “남녀의 권력 위계가 대부분 상하 관계로 고정되는 한국 사회에선 오빠란 발화 자체가 일상 속에서 지나치기 쉬운 젠더 폭력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오빠란 호칭을 여성에게 강요하는 남성들은 주로 둘 사이의 젠더 차이를 부각하려 한다”며 “‘오빠’가 발화되는 순간 남성과 여성의 젠더는 발화 맥락과 관계없이 환기되고 강조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강동원은 실제로 ‘친해지고 싶어서’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오빠라 부르라고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며 “그러나 한국이라는 가부장사회 속에서 ‘오빠’가 주로 어떤 맥락으로 사용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허민숙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오빠’란 단어는 겉으로 보기엔 온화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남성성‧남성 역할에 대한 남자들의 집착을 담고 있다”며 “그 안에는 권력‧서열‧주종관계를 명확히 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특히 “‘오빠’가 발화되는 순간 여성은 아동화 되고 자기발언권과 주체성을 잃게 된다”며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들은 지위를 얻고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데, 그걸 ‘오빠’라는 호칭을 통해 손쉽게 획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단어 하나에도 권력관계가 매우 촘촘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사소하다’ 생각지 말고,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문제의식을 갖고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