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P 정치 지탱해온 남성지배 불평등 구조 깨야 할 때

핵심은 ‘평등 민주주의’ 여성 차별 말아야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위민관에서 국무회의(화상)를 주재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위민관에서 국무회의(화상)를 주재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대한민국이 복합적 위기 속에서 사면초가에 빠졌다. 정치는 실종되고, 안보는 불안하며, 경제는 침체되고, 사회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가 ‘5무(五無) 정치’의 깊은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공학만 있고 철학이 없다. 정치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통찰력(insight)과 비전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예리하게 통찰해서 비전을 만들고 이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권 후보들은 ‘공정 성장, 국민 성장, 혁신 성장’ 등 현란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구호는 비전이 아니다. 슬로건 정치에서 통찰력과 비전을 기대할 수 없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구호가 많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새로운 대한민국’,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 성공 시대’,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 행복 시대’가 이에 해당된다.

통상 통찰력과 비전은 철학과 학습을 통해 만들어진다. 습관적으로 살아온 삶에 변화를 주는 것이 철학이다. 따라서 투쟁 중심의 정치가 펼쳐지는 현실 속에서 철학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 정치의 문제는 철학의 빈곤 속에서 민생을 포함한 모든 문제를 공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드 배치와 같이 국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도 초당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파적 이해로 접근하고 있다.

국가의 100년 대계를 좌우할 개헌 문제도 오직 공학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어떻게 권력을 나누어 대선에서 승리할지에만 혈안이 되어 권력구조 개편에만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일자리 창출 등의 민생 문제도 내년 대선에서의 유불리만을 따지는 공학적인 접근으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둘째, 대표만 있고 책임은 없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이 국가 이익에 우선해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정활동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권력의 눈치만을 살피면서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있다. 심지어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자를 받들고 모시는 일에 목숨을 거는 완장 정치가 판을 친다.

강경 친박 세력들이 의혹 부풀리기와 흔들기로 대통령의 레임덕을 부추길 수 있는 일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철벽 방어를 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개입 의혹이 있는 각종 사건에 대한 증인 채택을 둘러싸고 여당이 보여준 행태는 그야말로 국민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협치는 사라지고 대치만이 판을 치게 된다.

셋째, 비판만 있고 대안은 없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선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합리적인 의혹 제기가 보장된다. 대화와 타협이 일상화된다. 문제는 비판만 있고 대안이 없으면 공허해진다. 반대를 위한 반대에 매몰되기 쉽다. 더구나 자신의 비판을 정당화하기 위해 걸핏하면 거리 투쟁에 나서고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간다.

심지어 명분 없는 단식 투쟁으로 정치를 마비시킨다. 자신들의 정체성과 직결된 이념과 정책을 바탕으로 사드 배치를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하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발사에 성공하면서 안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 없이 무조건 사드배치를 반대하면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받는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서비스 산업 발전 기본법 등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각종 법안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야당을 시도 때도 없이 공격하고 비판했다. 하지만 야당을 설득할 만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핵심 대북 정책으로 삼았다. 현 정부는 신뢰를 깨고 군사적 도발을 일삼고 있는 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은 있지만 북한을 설득해서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정치권에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넷째, 정쟁만 있고 정치는 없다. 정치가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데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극단과 배제의 정치, 오기와 선동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이런 어둠의 정치 속에서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정치로 풀어야 할 일을 정치로 풀지 못하고 있다.

각종 의혹에 휩싸인 우병우 청와대 민정 수석 거취 문제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실세 개입 의혹으로 도마에 오른 미르·K스포츠재단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로 풀어야 한다. 우 수석은 국회 운영위의 국정 감사 출석에 앞서 사퇴하고,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은 국회 차원에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다섯째, 과거만 있고 미래는 없다. 정치는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는 과거에 누가 잘못했는지 파악하는 일에 매몰되기 보다는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 상황은 어떠한가?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해 끊임없이 상대의 과거를 공격하고 질타한다. 산업화 세력은 민주화 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민주화 세력은 산업화 세력을 거부한다. 선진화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결합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은 상대방에 대해 마음의 38선을 긋고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풍토에서 관용과 배려가 숨을 쉴 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뒤틀리고 왜곡된 한국 정치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 틀에 변화를 줘야 한다.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의 이행 단계를 넘어 공고화를 위해 노력했다. 두 번의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87년 민주화 운동이후 오히려 민주주의가 퇴보했다는 부정적 평가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시기의 민주주의는 ‘권위주의적 민주주의’시대였다.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고나서 두 대통령은 민주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보다는 모든 정치 과정을 주도하는 권위주의적 통치 행태를 보였다. 제도와 법치보다 권력과 인치가 판을 쳤다.

그 이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대의 민주주의는 ‘대결적 민주주의’ 시대였다. ‘진보 대 보수’ ‘영남 대 호남’ ’친미 대 반미’ 등 진영의 논리에 빠져 사생결단식 대결의 정치가 일상화됐다. 여기에 ‘포퓰리즘(Populism), 양극화(Polarization), 힘에만 의존하는(Power-oriented) 추악한 ‘3P 정치’가 핵심이 되었다.

이런 일그러진 3P 정치로는 더 이상 복합적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할 수 없다. 한국 정치를 정상화시켜 희망찬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동안 3P 정치를 지탱했던 남성지배적 불평등 구조를 깨는 것이다. 그 핵심에 ‘평등 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민주주의를 바치는 두 축은 자유와 평등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동안 ‘자유 민주주의’에는 관심을 많이 가졌지만 ‘평등 민주주의’에는 소홀히 한 면이 있다. 평등 민주주의에서는 타협(Compromise), 협조(Cooperation), 합의(Consensus)의 ‘3C 정치’가 중시된다. 남녀간, 노사간, 중앙과 지방간, 정규직 대 비정규직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실적적인 평등이 이뤄지면 정치 갈등은 사라지고 숨어있던 협치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더 이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않는다. 조직 문화가 바뀌어서 일과 가정의 양립이 이뤄지고 ‘평등이 있는 삶’이 만들어진다. 평등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부패 없는 청렴한 국가를 만드는 일에도 일조한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고, 부패 없는 청렴한 나라라고 칭송받는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의 북유럽 국가들은 ‘평등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이제 우리는 정치를 정상화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며 사회 양극화를 해소해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선 평등 민주주의로의 위대한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애플의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을 가슴깊이 새기며 행동했다. 그리고 성취했다. 우리도 평등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우공(愚公)이 산을 옮기듯 우직하게 그리고 ‘미쳐야 미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의 도전 정신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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