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가 불꽃같은 경쟁, ‘다’는 풀꽃 같은 공생…

모두 함께 잘 사는 더다이즘 중요”

광화문 주말학교서 청춘 데이트 “젊은이들 응원한다”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지금 내가 왜 사는지 의문이 들 때 ‘우리가 인간이었지’라는 자각을 되살려주는 게 문화”라며 “결국 문화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지금 내가 왜 사는지 의문이 들 때 ‘우리가 인간이었지’라는 자각을 되살려주는 게 문화”라며 “결국 문화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서울시가 출연해 2004년 세운 서울문화재단 대표로 주철환(61) 전 PD가 지난달 1일 취임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에게 잘 맞는 옷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국어교사, 방송 PD, 대학교수, 방송사 사장 등 방송·교육 현장을 두루 거쳤다. 서울문화재단은 일곱 번째 일터다.

지난 8일 서울 사직동의 한 커피숍에서 마주한 주 대표는 듣던 대로 동안에 웃음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문화,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것

-서울문화재단 대표로 “즐거운 문화도시를 연출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불만이 많지요. 있는 집 자식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혜택을 많이 받으니까요. 또 중산층 이하는 생활에 여유가 없어요. 이들이 문화를 즐길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민 모두 생활문화 주역이 되는 풀뿌리문화주의를 구현하고 싶어요. 지난 30여년간 주로 방송, 교육 현장에 있었어요. 어느 때인가 혼자 더 잘살기 위해 발버둥치기보다는 함께 다 잘사는 것이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더다이즘이라고 불러요. 서울문화재단을 스팍(SFAC)이라고도 하는데 얼핏 들으면 불꽃의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문화가 불꽃이라면 교육은 풀꽃입니다. ‘더’가 불꽃같은 경쟁이라면 ‘다’는 풀꽃 같은 공생이죠. 더 즐겁고 다 행복한 문화도시를 향해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그는 서울문화재단 대표로 취임한 후 각오를 밝힌 글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을 인용해 눈길을 끌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입니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범 선생의 ‘나의 소원’ 중 ‘내가 바라는 우리나라’라는 대목이다.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는 농담처럼 문화라는 단어와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청소년기를 문화동(지금은 신당동)에서 보내고 힘이 넘칠 때 PD로 일한 곳도 문화방송(MBC)입니다. 문화재단에 오기 전에는 문화콘텐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하지만 문화가 뭐냐고 물으면 한 마디로 답을 못합니다. 문화가 뭐냐는 것은 삶이 뭐냐는 질문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주 대표는 “지금 내가 왜 사는지 의문이 들 때 ‘우리가 인간이었지’라는 자각을 되살려주는 게 문화”라며 “결국 문화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좌우명이 ‘재미있게 살고 의미 있게 죽자’로 알려져 있죠. ‘즐거운’ 삶을 많이 강조해 왔는데요.

“재미는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의미는 남에게 행복을 주는 것입니다. 저는 즐겁게 살고 싶어요. 즐거움이 행복으로 가는 길 아닐까요. 즐거운 삶, 즐거운 만남, 즐거운 직장, 즐거운 학교를 만들었으면 해요. ‘즐거움’은 제가 좋아하는 단어죠.”

-오랫동안 PD로 일했으니 PD 마인드가 행정에도 반영되겠네요.

“PD 마인드는 사람들을 새롭고 즐겁고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예요. 이제 시민의 행복을 위해 아이디어 경쟁을 해야죠.”

-주 대표가 문화재단 직원들에게 평소 “회사 생활이 즐거우세요?”라는 던진다면서요. 또 대표에게 보여줄 보고용 서류를 힘들게 만들지 말라고 했다던데요.

“옛날부터 그런 게 싫었어요. 이른바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 단 한 사람을 위해 모든 사람이 준비하는 과정이 딱 질색이에요. 예컨대 대표에게 보고할 PPT를 만들기 위해 새벽 2시까지 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권위주의잖아요.”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문화재단이 더 효율적인 조직이 되겠네요. ‘주철환식 행정’은 그런 모습이겠죠.

“효율은 노동을 줄여주고, 창의는 시간을 절약해주고 즐겁게 만들어주죠.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을 가장 많이 하는 국가입니다. 요즘이야 많이 사라졌지만 부장이 자리를 지키니 퇴근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죠. 저녁 때 ‘오늘 딴 약속 하지 마. 회식이야’라고 상사가 그러면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찍힐까봐 회식 가서 원샷을 하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죠. 그런 걸 완전히 바꿔보고 싶은 게 제 부질없는 꿈이에요. 저는 창의와 협의, 두 개의 축으로 일할 겁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고, 아이디어가 아무리 많아도 협의해 잘 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죠.”

세종대왕은 대한민국이 배출한 최고의 PD

그러면서 주 대표는 세종대왕 이야기를 꺼냈다. 그를 만난 날은 한글날(9일) 전날이었다. “한글이 없었으면 우리가 인터뷰하면서도 얼마나 시간이 걸리고 불편할까요? 세종대왕은 대한민국이 배출한 최고의 PD입니다. 그의 창의와 효율성,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주 훌륭하지요.”

주 대표는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였다. 여성신문과 인터뷰하는 내내 미소를 짓고 웃음을 터뜨렸다. 긍정적 사고에 대한 소신도 남달랐다.

“긍정적으로 살지 않으면 세상을 살 의미가 없다고 봐요. 살아 있을 땐 긍정적으로 살아야 해요. 저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되니까요.”

-서울거리예술축제가 얼마 전 시민들의 호응 속에 막을 내렸지요. 내년 가을에 선보일 구상이 있다면.

“저는 거의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데 역마다 특징이 있고 2번 출구, 3번 출구라는 약속 장소가 있고 근처에는 학교가 있지요. 지하철 주변에서 축제 기간에 동창회를 연다든지 TV 예능 ‘런닝맨’처럼 지하철 안에서 술래잡기, 보물찾기를 해봐도 재밌을 것 같아요. 예능 ‘비정상회담’에 한국말을 잘하는 다문화 친구들이 출연하는 데요. 서울에 있는 모든 세계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를 꾸려보고 싶어요.”

그는 군 제대 무렵 우연히 치른 MBC 입사시험에 합격해 PD가 됐다. ‘퀴즈 아카데미’ ‘우정의 무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 ‘대학 가요제’ 등 참신하고 기발한 방송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예능 PD로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프로그램의 보증수표가 된 스타 PD의 원조다. 이후 이화여대 교수, OBS 사장, JTBC 제작본부장을 지냈으며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에 임명됐다. 대학은 휴직계를 낸 상태다.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 등 15권을 낸 베스트셀러 저자, 두 장의 앨범을 낸 싱어송라이터 등 이력이 다채롭다.

그는 가벼운 것을 좋아하고 가볍게 살고자 한다. 온건하게, 친절하게, 따뜻하게 살았던 덕분에 그동안 많은 축복을 받고 누렸다고 생각한단다. 그러면서 “돈을 버는 데 혈안이 되지 말고 행복을 벌고 사람을 벌라”고 권한다.

자신의 정체성은 리더나 멘토보다 친구라고 생각하며 특기는 친절하기, 좋아하는 것은 젊은이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제자들과 함께 소풍 가는 것을 즐겼는데, 학생들과 친해지고 싶고 학생들끼리 친해지길 바랐기 때문이다. 비용은 주 대표가 부담한다. 학생들을 위한 일종의 장학금인 셈이다.

외아들 친구들 모아 매년 여행

1988년생인 외아들 친구들을 모아 매년 정기적으로 여행을 다니는 점도 이채롭다. 주 대표는 “돈을 통장에 쌓아두는 것보다 젊은이의 심장에 꽂아두는 것이 훨씬 행복하고 좋다”며 웃었다. 지금도 광화문에서 젊은 대학생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그는 “광화문 주말학교를 제가 직접 만들었다”며 “아주대 학생들을 만날 수 없으니까 주말에는 언제든지 내게 찾아오라고 했지요. 예전에는 그걸 광화문 데이트라고 표현했어요(웃음). 앞으로도 계속 활성화할 생각이에요.”

특히 주 대표는 소외된 10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아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라며 “문제아는 없다. 문제어른이 있을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문제아는 세상이 잘못 굴러가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어린이예요. 문제를 야기하는 어린이가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어린이입니다.”

-교육에 대한 신념이 강한데요.

“교사 출신이니까요. 대학 졸업 후 서울 동북중에서 1년, 동북고에서 1년반 교사 생활을 했어요. 배우 최민수가 동북고 제자입니다.”

이 대목에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가 다섯 살 때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유년기부터 아버지와는 한 번도 같이 살아본 적이 없었다.

“제 또래 친구들과는 다르죠.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아이들이 또래에서 2∼5%가량 되겠지요.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아빠의 존재가 없었던 점도 매우 독특하죠. 어떤 사람들이 보기엔 어려운 시절, 불쌍한 시절, 혹독한 시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저는 지금 행복하거든요. 결핍과 궁핍의 시절은 아주 유익해요. 더욱이 인생 초년기에 겪었으니 지금 겪었던 것보다 더 나았지요.”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매주 광화문에서 대학생들과 만나 주말학교를 연다. 주 대표는 “돈을 통장에 쌓아두는 것보다 젊은이의 심장에 꽂아두는 것이 훨씬 행복하고 좋다”며 웃었다. ⓒ이정실 사진기자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매주 광화문에서 대학생들과 만나 주말학교를 연다. 주 대표는 “돈을 통장에 쌓아두는 것보다 젊은이의 심장에 꽂아두는 것이 훨씬 행복하고 좋다”며 웃었다. ⓒ이정실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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