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넷페미사] 배운여자·여시·페미나치·메갈… 넷페미 수난사
[대한민국 넷페미사] 배운여자·여시·페미나치·메갈… 넷페미 수난사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6.10.13 16:18
  • 수정 2016-10-13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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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 ‘변화하는 온라인 환경, 다중화된 여성 주체들’

2000년대 중반 이후 온라인은

2030 여성 삶의 일부·기반

지금은 ‘포스트 메갈’ 시대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 ⓒ이정실 사진기자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 ⓒ이정실 사진기자

배운여자, 여시, 트페미, 페미나치, 메갈…. 온라인 공간에서 만들어진 이 단어들은 페미니즘을 외치는 여성들에게 덧씌워진 ‘멸칭’이다.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은 이러한 표현을 “온라인 페미니스트의 멸칭의 역사이자 넷페미 수난사”라고 설명했다.

손 연구원은 이날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재까지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진 젠더 이슈와 페미니즘의 변화를 소개했다. 그는 1990년대 중반의 사이버 페미니즘과 2010년대 중반의 온라인 페미니즘의 차이점에 대해 “90년대 페미니즘은 사이버 공간이 페미니즘 운동의 가능성 보여주고 젠더 벤딩(gender bending·일반화된 성적 정체성과 남녀 구분을 허무는 것)을 시험하며 안전하게 여성들이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며 “반면, 2010년대 광대한 네트는 2030 여성들의 삶의 일부이자 조건이며 기반이 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2000년대 중반 페미니즘 운동이 대중운동으로서 말걸기를 실패했으나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단절된 것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삶의 조건이 척박해지면서 페미니스트들은 ‘설명충’, ‘진지충’으로 치부됐다”면서 “영페미니스트 운동은 일종의 기억 잠재성으로 남아있었고 지금 이 시대와 만나면서 페미니즘이 ‘리부트(reboot)’ 됐다”고 표현했다.

리부트란 영화산업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로, 기존 시리즈의 캐릭터와 기본 설정들은 유지하면서 완전히 다른 내용을 구성하는 것을 뜻한다. 페미니즘도 기본 설정은 유지하면서 트위터 같은 새로운 온라인 환경에서 전혀 다른 형태로 드러났다는 뜻이다.

손 연구원은 페미니즘 리부트의 시작으로 2015년 ‘#나는페미니스트다’ 해시태그 운동과 페미니스트가 싫어 IS를 택한 김군 사건, ‘무뇌아적 페미니스트’라고 쓴 김태훈의 칼럼을 꼽았다. 손 연구원은 “‘무뇌아적 페미니스트’라는 칼럼은 2015년 현재는 페미니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그동안 페미니즘이란 단어는 한국 사회에서 여러 의미로 텅 빈 기표에 가까웠던 것”이라고 짚었다.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이 10월 8일 서울 서대문구 벙커1에서 열린 ‘대한민국 넷페미사’ 라운드 테이블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이 10월 8일 서울 서대문구 벙커1에서 열린 ‘대한민국 넷페미사’ 라운드 테이블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등장한 ‘배운여자’도 넷페미 역사의 한단락을 차지한다. ‘삼국카페’로 불리는 소울드레서, 쌍코, 화장발 등 다음 카페 회원들은 촛불집회에 앞장서고 십시일반 돈을 모금해 진보 언론에 광고를 게재한다. 손 연구원은 “10대 시절 2002년 월드컵을 거치고 미군 장갑차 사건 당시 ‘촛불소녀’로 나서고 2008년 노무현 탄핵을 거친 이들이 배운여자로 성장한 것”이라며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자본주의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민주주의가 무엇이며,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고민한 사람들”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들이 보여준 에너지를 인터넷 팬덤 문화와 연결짓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배운여자라는 말은 5~6년 후 여성혐오의 한 축을 구성하며 부르주와 여성으로 호명된다. 또 배운여자는 다음 카페 여성시대 회원을 뜻하는 ‘여시’,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인 ‘트페미’, 페미니스트와 나치가 합쳐 페미니스트를 얍잡아 부르는 ‘페미나치’, 메갈리아 이용자인 ‘메갈’로 불린다.

손 연구원은 특히 젠더 의제를 공유하고 공론화하는 공간으로서 트위터를 주목했다. 한진 투쟁, 최고운 작가의 죽음, 잡년행진, 나꼼수 비키니 사건이 트위터의 성격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특히 손 연구원은 한진 투쟁에서 배우 김여진이 만삭의 몸으로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당시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난 순간을 “디지털 매체 환경의 변화와 새로운 시민 등장, 법제도 안에서의 투쟁을 얘기할 수 없는 문제 등을 한번에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 ⓒ이정실 사진기자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 ⓒ이정실 사진기자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드디어 메갈리아가 등장했다. 그리고 메갈리아를 경험한 여성들은 현재 ‘포스트 메갈’ 시대 열어가고 있다. 페미니즘 정당 창당을 모색하는 ‘페미당당’, 부산 지역 페미니스트들의 모임 ‘부산페미네트워크’, 페미니스트 그룹 ‘불꽃페미액션’, 디지털 성범죄 근절 운동을 하는 ‘디지털포르노아웃(RPO)’ 등이 활동하며 페미니즘 의제를 확장해가고 있다.

손 연구원은 “페미니즘의 이름을 유지하는 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 페미니즘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때도 늘 존재해왔고 단절된 적이 없다”며 “새로운 주체들이 페미니스트로 남을 수도 있고 잊어버리고 그냥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페미니즘도 ‘휴덕은 있되, 탈덕은 없다’(팬 활동을 쉴 수는 있어도 영원히 그만두지는 않는다는 뜻)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먹고사는 문제, 소위 ‘먹고사니즘’에 부딪쳐 잠시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지울 순 있어도 한번 페미니즘을 접하고 ‘코르셋’을 벗으면 결국 우리의 삶이 페미니즘이라는 정치적인 언어를 필요로하는 순간을 마주할 때는 언제든지 페미니즘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손 연구원은 강연 말미에 ‘워마드’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그는 “워마드 활동을 하는 여성들 중 일부가 고소고발로 인터넷상 시민권을 박탈당한 상태라고 들었다”며 “워마드를 페미니즘이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워마드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이라는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워마드 회원들의 정치적 올바름은 누가, 어떻게, 왜 구성하는가“라며 “나와 나의 동료들은 이들과의 연대나 연결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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