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듯” 만연한 성차별에 울분 느껴

퇴사하고 쉬면서 ‘페페미’ 활동

‘버자이너 빅토리’ 페미니즘 굿즈 만들어  

3개월 만에 고객 수 200여명

“수익금의 일부 여성단체에 기부할 것”

 

페이스북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강철씨. 지난 7월 ‘버자이너 빅토리’(Vagina Victory)라는 상호를 낸 후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페미니즘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페이스북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강철씨. 지난 7월 ‘버자이너 빅토리’(Vagina Victory)라는 상호를 낸 후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페미니즘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보코백, 보우치, 젖탱이 파우치, 젠더 퀴어 팔찌, 서프러제트 초커…’ 이것들은 모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서 많은 친구 수를 자랑하며 페미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강철씨의 페미니즘 상품들이다. 올해 7월 ‘버자이너 빅토리’(Vagina Victory)라는 상호를 낸 후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에코백이나 파우치에 여성의 가슴과 성기 모양의 자수를 놓고, 서프러제트·젠더 퀴어를 상징하는 색깔의 원석을 사용해 팔찌와 초커도 만든다.

이화여대에서 조소를 전공한 강철씨는 20살 때부터 온라인상에서 ‘키보드 배틀’(인터넷상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댓글로 벌이는 토론·싸움을 일컫는 말)을 하며 페미니스트로 활동했다. “이대생을 ‘이대녀’라 부르며 ‘된장녀·어장관리녀’ 프레임을 씌워 욕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어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키배를 뜨고 있는데 갑자기 ‘너 메갈이냐’고 묻더라고요. 그 때 처음으로 ‘메갈리아’ 사이트를 알게 됐죠. 그 곳에서 글을 읽으며 ‘나도 이 사람들처럼 내가 그동안 배워온 것, 직접 겪은 것을 글로 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철은 올해 초부터 페이스북에 페미니즘 관련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한 달 만에 친구 수가 1500여명, 팔로워 수가 600여명이 됐다. 활동 초기에는 얼굴과 실명, 출신학교, 나이를 모두 공개하고 싸웠지만 현재는 강철이란 가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때 키배 뜨던 남자들로부터 페북 메시지로 ‘너 내가 강간할 거다. 고소할 거다’는 협박을 엄청 많이 받았어요. 또 남성 커뮤니티에서는 제 댓글을 박제해서 ‘조리돌림’(인터넷상에서 특정인의 게시물이나 댓글을 캡처해 해당인의 신상을 노출하며 비난·비방하는 것을 일컬음)까지 했죠. 그걸 직접 본 애인이 충격을 받았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5월 계정을 새로 바꿨어요.”

 

강철씨가 자수를 놓아 만든 페미니즘 상품들. 에코백이나 파우치에 여성의 성기와 가슴 모양의 자수를 놓고, 페미니즘 문구를 새기기도 한다. ⓒ이정실 사진기자
강철씨가 자수를 놓아 만든 페미니즘 상품들. 에코백이나 파우치에 여성의 성기와 가슴 모양의 자수를 놓고, 페미니즘 문구를 새기기도 한다. ⓒ이정실 사진기자

“어렸을 때부터 ‘계집애가 왜 이렇게 나대냐’ ‘넌 예쁘니까 나중에 의사 남편 만나겠네’라는 소리를 듣고 성차별을 의식하게 됐다”는 강철은 “‘난 왜 의사가 못 되고 의사 마누라가 되어야 하지?’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여성주의 감수성을 지니게 됐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성차별에 대한 의식이 있었던 그는 대학에 들어간 후 본격적으로 여성학·여성주의를 공부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막연하게 차별이라 느꼈던 것이 이론으로 존재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페미니즘 강의를 들으면서 깨달았다”는 그는 성인이 된 이후 더 견고한 감수성을 가질 수 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여자라서 안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강철은 사회에 나오면서부터 여성혐오로 얼룩진 두터운 벽과 마주해야 했다. “대학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성희롱과 차별이 너무 만연했어요. 희롱하는 문화가 ‘숨 쉬듯’ 당연한 곳이어서 굉장히 힘들었죠. 여자가 대다수였는데도 성차별이 심해서 더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그 시기에 여성주의를 깊이 사유하고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게 됐다.

“면접 때부터 ‘언제 결혼하냐’고 묻는 건 당연한 일이고, ‘회사 남직원들 건드리지 마라’ ‘주말에 애인이랑 뭘 했기에 그렇게 피곤해 하냐’며 아무렇지 않게 성희롱을 했어요. 그리고 직책이 있는데도 남자 부하직원은 대뜸 저를 ‘누나’라고 부르며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죠. 또 제가 승진을 좀 빨리 했는데 사람들은 ‘일을 잘해서 그런가보다’가 아니라 ‘쟤 부장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여서 그런다’라는 소문을 만들어내더라고요.”

직장 내 만연한 성희롱·성차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그는 결국 2년의 직장생활 끝에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퇴사한 후 페이스북에서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던 강철은 지난 5월부터 사업구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탄생한 게 ‘버자이너 빅토리’(이하 버빅)다. “원래는 ‘보지를 긍정하자’는 의미로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버자이너 벌바’(Vagina Vulva)를 상호로 사용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너무 성기 단어만 늘어놓으니까 ‘좀 그렇다’는 반응이 있어서 뒤에 브이(v)를 빅토리(vigtory)로 바꿨죠. 그래서 ‘보지(여성)들이 승리하는 세상’이라는 의미로 ‘버빅’이라는 이름을 짓게 됐어요.”

 

자수 제품 외에 서프러제트·젠더 퀴어를 상징하는 색깔의 원석을 사용해 팔찌와 초커 등 액세서리를 만들기도 한다. ⓒ이정실 사진기자
자수 제품 외에 서프러제트·젠더 퀴어를 상징하는 색깔의 원석을 사용해 팔찌와 초커 등 액세서리를 만들기도 한다. ⓒ이정실 사진기자

‘버빅’의 제품 이름에 ‘보지’가 들어가는 이유다. 보지와 에코백을 결합해 만든 ‘보코백’, 보지와 파우치를 결합해 만든 ‘보우치’가 그 예다. 파우치에 가슴 모양의 자수를 놓아 만든 ‘젖탱이 파우치’도 있다. “고객들이 주문을 할 때 ‘파인애플(모양) 보지 주세요’라며 메시지를 준다. 그런 주문을 받을 때 가장 재밌다”는 강철은 여성들이 자신의 성기를 더 당당하게 언급하고 드러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회는 여성의 성기를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은밀한 것이나 감춰야 하는 것, 혹은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죠. 하지만 여성의 성기는 그냥 신체의 일부분일 뿐이에요. 여성들이 좀 더 당당하고 자유롭게 보지를 말하고, 그 단어가 온전히 여성의 것이 되면 좋겠어요.”

강철은 “원래 터프한 성격이라 세밀하고 꼼꼼한 걸 잘 못하는 편이었다”며 “자수를 놓아 페미니즘 굿즈를 만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에서 전통자수 수업을 듣게 된 후 뜻하지 않게 자수에 눈을 뜨게 됐고, 그 이후 오랜 취미가 됐다. 그리고 지금은 ‘밥 벌어 먹는’ 수단이 됐다. 직업으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자수가 인생의 키가 된 것이다.

“자수가 옛날부터 여성의 영역에 속하는 일로 여겨지다 보니까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어요. 예술로 받아들여진 것도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도 자수 장인들 보면 다 여성분들이에요. 그래서 자수를 이용해서 제품을 만드는 게 페미니즘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적게는 1시간 반, 많게는 6시간의 품이 드는 고된 작업임에도 그가 자수를 택한 이유다.

 

“보지(여성)들이 승리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상호 이름을 ‘버자이너 빅토리’라고 지었다는 그는 여성들이 자신의 성기를 더 당당하게 언급하고 드러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보지(여성)들이 승리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상호 이름을 ‘버자이너 빅토리’라고 지었다는 그는 여성들이 자신의 성기를 더 당당하게 언급하고 드러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디자인 구성부터 제작, 판매, 발송까지 혼자 해내고 있는 그는 연말에 나올 정식 사이트도 준비하고 있다. 요즘은 ‘비건 페스티벌’ ‘하는 여자 페스티벌’ ‘버자이너 모놀로그 부스행사’ 등 페미니즘 관련 오프라인 행사도 많이 다닌다. 강철은 “앞으로 핸드폰 케이스나 배지처럼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 액세서리 상품 등을 계속해서 내놓을 예정”이라면서도 “궁극적으로 제 목표는 이 사업이 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페미니즘이 너무 보편화돼서 이런 사업들이 사라지도록 하는 게 목표예요. 지금은 페미니즘이 부상하면서 유행을 타는 것 같아 걱정되기도 하죠.”

‘버빅’이 지금의 페미니즘 열기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환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영광이죠. 사람들이 ‘페미니스트’에 부담을 갖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제 역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오프라인 행사에는 페미니즘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많이 오거든요. 그런 분들에게 페미니즘·젠더 퀴어 개념을 알려줄 때마다 보람을 느껴요. 이런 것들이 다 페미니즘 활동에 속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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