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한복·드레스 입고 고궁 갔더니...“외국인 보기에 혐오스러워 안돼”
퓨전한복·드레스 입고 고궁 갔더니...“외국인 보기에 혐오스러워 안돼”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6.10.07 17:18
  • 수정 2016-10-12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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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시작된 1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찾은 관람객들이 한복을 입은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추석 연휴가 시작된 1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찾은 관람객들이 한복을 입은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경복궁·덕수궁 측, 퓨전한복·드레스 입은 관람객 제지

이유는 “타인에게 혐오감 주는 복장” “문화재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

‘자의적 규정’ ‘개인의 자유 침해’ 논란 확산

문화재청 “고궁 유료 입장 시 복장 제한 없다...현장에서 혼선 빚어 죄송”

“그런 걸 입고 쓰면 외국인들, 관광객들이 혐오감을 가져요.” 지난 2월, 경복궁에서 웹툰 ‘견우와 직녀’(유리아 작가) 속 퓨전한복 차림으로 코스튬플레이(만화의 주인공처럼 분장하는 것) 촬영을 하던 여성 A씨에게 경복궁관리소 직원이 한 말이다. A씨는 결국 궁궐을 나와야 했다. 

그는 지난 5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 경험담을 올리며 “(복장 문제로) 무료입장 혜택을 받지 못한 데다가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흔히 알려진 한복이 아니고 가면까지 썼으니까 일부 이해하지만, 명확한 규정 없이 직원 개인의 ‘혐오스럽다’라는 평가로, 엄연히 대가를 지불하고 들어와서 조용히 있던 저희에게 나가라고 한 것이 정당한가”라고 반문했다.

지난 6일 친구와 함께 덕수궁에 간 여성 B씨도 복장 때문에 관람을 제지당했다. 이들은 ‘로리타 드레스’(로코코·빅토리아 시대의 의상·문화적 영향을 받은 장식적인 의상) 차림이었다. 덕수궁관리소 직원은 “문화재와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을 한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며 이들을 막았다. 드레스는 “특수복장”이라서 사진 촬영을 하려면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B씨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덕수궁 입장 시 복장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내 옷이 특수복장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주체가 왜 덕수궁인지, 왜 남자직원을 불러와서 강압적인 태도를 취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요지의 글을 남겼다. 

때아닌 고궁 관람 복장 규제 논란이 일고 있다. 4대 고궁에 적용되는 한복 무료입장 가이드라인은 ‘젠더 차별’이자 ‘개인의 자유 침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여성은 치마, 남성은 바지’를 입어야만 한복 차림으로 인정하고, 여성 한복 치마 규정엔 ‘과도한 노출 제외’를 덧붙여서다. (▶관련 기사 : ‘여자는 치마, 남자는 바지’ 고궁 한복 무료입장 젠더차별 논란) 여기에 최근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옷차림’, ‘문화재에 맞지 않는 옷차림’ 등의 이유로 고궁 관람을 제지당했다는 증언이 잇따르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이에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주호(35) 씨는 “다른 것도 아니고 개인의 복장을 문제 삼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여자가 남자 한복을 입건, 로리타 드레스를 입건 모두 헌법으로 보장된 개인의 자유다. 고궁은 초법적인 공간이 아니다. 직원들이 말하는 모호한 복장 규정이 헌법에 앞설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구에 사는 직장인 이호연(28) 씨는 “누군가의 불편함이 타인을 차별하고 억압할 근거는 될 수 없다. 성별과 기존 디자인을 떠나 한복을 자유로이 입는 게 ‘전통 왜곡’이라는데, 대체 어느 시대 누구의 어떤 전통을 말하는가. 문화재청이야말로 자의적인 전통 해석에 근거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게 아닌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그런 논리라면 민소매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오는 외국인 관람객들은 왜 제지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문화재청 측은 “고궁 유료 관람객의 복장에 관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료 관람객의 복장을 문제 삼아 내보내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 관계자는 “덕수궁 현장 담당자가 관람객의 복장을 지적한 건 잘못됐다. 대화 중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 그 관람객에게는 조만간 따로 사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젠더 차별 논란을 일으킨 한복 무료관람 가이드라인은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 이 관계자는 “한복 무료관람의 취지는 한복의 대중화·활성화다. 하지만 무제한으로 허용하면 한복 문화를 희화화하거나 전통적인 착용 방식을 왜곡하는 등 부작용을 빚을 우려가 있다. 야간 특별관람에도 한복 무료입장을 적용하면서 그런 문제가 부각됐고, 그래서 규정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장 한복 무료관람 규정을 바꾸면 혼란만 가중될 것 같다. 꾸준히 모니터링을 하면서, 오는 28일 올해 마지막 고궁 야간 특별관람이 끝난 이후 그간의 문제 제기를 검토해 수정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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