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성 페미니스트입니다 ②

 

왼쪽부터 6일 오전 구글에서 각각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길거리’라는 키워드로 이미지 검색을 한 결과. ⓒ여성신문
왼쪽부터 6일 오전 구글에서 각각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길거리’라는 키워드로 이미지 검색을 한 결과. ⓒ여성신문

구글에서 ‘길거리’를 검색하면 어떤 사진이 나올까? 시원하게 뻗은 대로의 풍경, 거리를 메운 인파의 모습을 기대했겠지만, 실제로 나오는 것은 일반인 여성들의 ‘몰카’ 사진이다. 짧은 치마나 반바지, 스키니진을 입은 젊은 여성들의 엉덩이, 다리, 전신 등을 몰래 촬영한 사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나온다. 

영어(‘street’), 일본어(‘通り’)로 검색해 보니 일반적인 길거리 사진들이 뜬다. 구글 코리아의 검색 기능에 문제가 있나? 대한민국이 ‘몰카 왕국’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일 뿐이다. 몰래 남의 신체를 촬영하다가 적발된 이들에 관한 기사가 매일같이 올라오는 나라다. 몰카 범죄는 때도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대낮의 지하철, 국가대표 선수촌 수영선수 탈의실, 서울대 도서관, 도심의 공용화장실, 여성 혼자 사는 원룸의 천장.... 무수한 몰카 촬영물은 지금 이 시각에도 암암리에 랜선을 타고 누군가의 하드디스크로 전송되는 중이다. 

인터넷이 널리 보급된 이래로 몰카는 늘 우리 일상의 일부였다. 1990년대 캠코더가 국내에 보급되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선 자신들의 성관계 장면을 찍은 이른바 ‘셀프 동영상’이 유행했다. 청소년들이 직접 자신들의 성행위를 촬영한 것으로 밝혀져 당시 큰 충격을 던진 ‘빨간 마후라’, 유명 연예인의 성관계 영상으로 파문을 일으킨 ‘O양 비디오’, 일반인들의 성관계 장면을 몰래 촬영해 유포한 ‘비디오방 몰카’ 영상 등도 연달아 세간의 화제에 올랐다. 몰카와 관음증은 심각한 범죄라기보다 ‘불장난’ 혹은 쾌락의 수단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지금은 경찰도, 의사도, 국가대표 수영선수도, 집주인도, 서울대 재학생도 몰카를 찍는다. 

한국 사회에 몰카 범죄가 어쩌다 이렇게 만연하게 된 걸까? 1982년 세계 최초로 인터넷을 구축한 나라 중 하나이자, 유무선 초고속 네트워크를 선도하는 나라라서 그렇다고들 한다.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누구나 볼펜이나 테디베어 인형 등으로 위장한 초소형 녹화 장비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나라라서 그렇다고들 한다. 남성의 성욕은 참을 수 없는 본능이라, 몰카 영상이나 리벤지 포르노 등을 감상하면서 분출할 방도를 찾지 못하면 오히려 더 큰 악영향을 부른다고들 한다. 

진짜 이유는 한국 남성 대부분이 몰카가 ‘범죄’라고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국내 포털사이트에서 간단한 검색을 통해 최소한 스무 개의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고, 별도의 성인인증 절차 없이 몰카 사진·영상을 볼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 남성들이 10대 때부터 미성년자, 술이나 약에 취한 여성, 일반인의 몰카를 돌려 보기 시작한다.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이들은 별로 없다. 대신 남성들은 여성의 신체를 품평하는 데 익숙해지고, 폭력적이며 철저히 남성 중심적인 성적 쾌락을 ‘성’이라 착각한다. 정부, 수사기관과 법원마저도 몰카 범죄를 ‘경미한 범죄’로 취급한다. 몰카 범죄의 1심 형량은 약 70%가 벌금형이다. 

남성들은 억울하다고 말한다.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말라면서, 남성의 성욕이 존재하는 한 몰카 본능은 손 쓸 도리가 없다고 말한다. 몰카 시장은 필요악이며, 경찰과 페미니스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뿌리 뽑을 수 없을 것이라고 예단한다. 나는 성적 충동의 노예요, 언제든 본능을 주체하지 못해 성폭력을 저지를 예비 전자 발찌 착용자라는 자기 고백을 하는 남자들이 이토록 많다. 우리 집 강아지도 먹지 말라고 하면 안 먹고 자제할 줄 아는데, 이렇게 스스로 개만도 못한 인간임을 입증하는 논리를 펼치는 남성이 주변에 있다면 피하고 볼 일이다. 남성의 성욕은 자제할 수 없는 강력한 욕구고, 여성의 성욕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것 역시 얼토당토않은 일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왜소해진 한국 남성들을 그만 공격하라며 ‘광광’ 우는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몰카는 어떤 단서가 붙더라도 범죄다. 이 기회에 남자라서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키워 온 자신의 폭력적인 성욕과 지배욕을 억누르고 인간성을 회복하길 바란다면, 우리 사회가 성범죄에 제대로 철퇴를 내리기를 바란다면, 한국 사회가 안전하고 보다 평등한 사회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면, 답은 페미니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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