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우리 갑순이에서 갑돌(송재림)이 갑순(김소은)의 팔뚝을 거칠게 잡아끌고 있다.
SBS 드라마 '우리 갑순이'에서 갑돌(송재림)이 갑순(김소은)의 팔뚝을 거칠게 잡아끌고 있다. ⓒSBS

적나라한 성폭력 묘사, ‘로맨스’로 포장되는 데이트폭력.... 한국 주류 미디어가 여성을 그리는 방식이다. 4일 서울 마포구 KT&G상상마당에서 열린 ‘여성인권영화제 10회 기념 포럼 - 당신이 보는 여성은 누구인가’에선 이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나왔다. 이날 포럼은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했다. 

이날 포럼에서 정민아 영화평론가는 “대부분의 한국 영화는 한 성별에 일방적으로 초점을 맞추거나 ‘남성 서사’ 위주다. 장르영화가 성장하면서 폭력 재현이 과잉 남발되고 있는데, 여성에 대한 강간도 일반적 폭력 장면으로 받아들여졌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 속 성폭력 묘사를 예로 들며 “일본군에 대한 적개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성폭력 장면을 공들여 찍었겠지만, 관객들은 불쾌해질 뿐이다. 이러한 꼼꼼한 묘사는 피해자를 단순한 성적 묘사의 대상으로 만들며, 관객들이 객관적·구조적 폭력을 응시하기 힘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트렌디멜로드라마가 여성폭력을 ‘로맨스’로 포장해왔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1990년대에 등장한 트렌디멜로드라마에선 남자 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강제로 키스한다거나 손목을 잡아끄는 등 폭력적인 장면이 낭만적으로 연출돼오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로맨스의 폭력성을 은폐해 온 '나쁜 남자' 판타지가 마침내 시효를 다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기대를 모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태후)와 ‘함부로 애틋하게’(함틋하게)의 흥행 성적표가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태후의 경우 남자주인공의 신사적 성품을 부각해 큰 인기를 끈 반면, 함틋하게는 남자주인공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서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다.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KT&G상상마당에서 여성인권영화제 10회 기념 포럼이 열렸다. ⓒ뉴시스·여성신문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KT&G상상마당에서 여성인권영화제 10회 기념 포럼이 열렸다. ⓒ뉴시스·여성신문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최근 종영한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는 여주인공이 강제키스를 당하며 입술에서 피가 나는데도 이 장면이 로맨틱하게 묘사됐다”며 “이런 묘사는 여성들의 ‘안 돼’를 ‘돼’로 해석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또 “가정폭력을 다루면서도 폭력이 발생하는 장면만 묘사하고 처벌을 통해 가정폭력이 해결되는 과정은 보여주지 않는 드라마가 대부분”이라며 “실제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이런 드라마를 보면 ‘신고해봤자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무기력감에 빠지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윤 소장은 “많은 시청자가 드라마를 통해 연애를 답습하는데 실제로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등을 당했을 때 이를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연인이 나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될까 봐 염려된다”라고 말했다.

최근 ‘페미니즘 리부트’가 대중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도 나왔다. 정 평론가는 “최근 20-30대 젊은 여성·성소수자 수용자들은 여혐·남혐 논쟁, 온라인 젠더 논쟁을 거치며 ‘페미니즘 리부트’를 경험하고 있다. 이들은 대중문화의 주류 이데올로기가 지닌 젠더 편향성에 의문을 가지며, 수용자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주체적으로 대중문화 소비 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관객들이 지속해서 영화 속 성폭력 장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주류영화에선 남성 서사의 장르영화가 많지만, 여성 캐릭터 표현이나 여성에 대한 폭력 장면 연출에서 여성관객을 의식하는 점이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김 평론가는 “드라마에서도 ‘지배자로서의 남성, 희생자·약자로서의 여성’이라는 서사를 넘어 새로운 여성 서사를 더 적극적으로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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