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은 시민들이 고궁을 걷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5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은 시민들이 고궁을 걷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여성 한복 치마 규정엔 ‘과도한 노출 제외’

“지나친 성별 고정관념 강요... 개인의 권리 침해”

문화재청 “전통 계승이라는 행사 취지 고려해달라”

‘여성은 치마, 남성은 바지’. 성별에 따른 복장을 요구하는 고궁 한복 무료입장 기준을 두고 젠더 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5일 문화재청의 ‘한복 무료관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여성은 저고리에 한복 치마 차림, 남성은 저고리와 한복 바지 차림만을 한복으로 인정한다. 여성이 남성 한복을 입거나, 남성이 여성 한복을 입는 경우는 ‘한복 차림’으로 볼 수 없어 무료입장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한복 무료입장은 문화재청이 한복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마련한 행사다. 지난 2013년 10월부터 한복을 입고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창덕궁, 조선왕릉, 종묘에 가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사전 예매 경쟁이 치열한 고궁 야간 입장에도 적용되다보니, 최근 전체 입장객의 30%가량이 한복 차림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러나 성별에 따라 복식을 제한한 것은 명백한 ‘젠더 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현모(30·남) 씨는 “지난해 트랜스젠더 친구와 함께 여자 한복 차림으로 경복궁에 갔다. 입구에서 ‘조상님이 보면 노하신다’라며 입장을 막더라. 외모만 보고 개인의 성별을 판단하고 차별한 데다가, 개인이 원하는 차림으로 고궁에 입장할 권리까지 박탈당했다. ‘사람’에 대한 고려가 없는 전통을 고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다”라고 말했다.

인천에 사는 대학생 김주현(25) 씨는 “최근 재미 삼아 남자친구와 서로 한복을 바꿔 입고 창덕궁에 갔는데, 관리자에게 ‘한복을 그렇게 입으면 안 된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다시 바꿔 입고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지나치게 강요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정”이라고 비판했다. 또 여성 한복 치마 규정에 형식 제한이 없다면서도 “과도한 노출 제외”를 덧붙인 것도 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재청의 ‘한복 무료관람 가이드라인’ ⓒ문화재청 경복궁 홈페이지 캡처
문화재청의 ‘한복 무료관람 가이드라인’ ⓒ문화재청 경복궁 홈페이지 캡처

문화재청 측은 여성이 남성 한복 차림으로, 남성이 여성 한복 차림으로 무료입장하는 일은 “전통을 왜곡하는 일”이며, 행사의 취지에 어긋나므로 허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5일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최근 남녀가 한복을 바꿔 입고 오거나, 두 사람이 한복 한 벌을 빌려 상·하의를 하나씩 입고는 들여보내 달라고 우기기도 한다. 외국인들이 이런 걸 따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료입장 시행 초기에는 저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는데, 점점 항의가 빗발쳤다. ‘저것도 전통이냐’ ‘조상들이 본다면 혀를 찰 일이다’ ‘외국인도 많은데 보기에 안 좋다’ ‘문화재청은 왜 보고만 있느냐’ 등 지적을 받았다”라며 “고궁 한복 무료입장의 취지는 전통 계승이다. 이런 일은 전통 왜곡이다. 적어도 문화재청은 기본을 지켜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최근 고궁 부근의 한복 제작·대여점들에 재차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고, 행사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고궁 유료 관람 시에는 성별에 따른 복장 규정이 없다. 자유로운 차림으로 입장하길 원한다면 유료 관람을 고려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규정을 둘러싸고 ‘전통 계승’ 주장과 다양한 성 정체성·성적 지향의 문제, 개인의 자유 문제 등이 충돌하면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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