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민(가명)씨 이력서 ⓒ여성신문
강혜민(가명)씨 이력서 ⓒ여성신문

Q. 저는 올해로 직장생활 만 4년이 지난 서른 살 여성입니다. 지금 다니는 곳은 기업용 업무프로그램을 개발·판매하는 중소기업입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이고, 이제 일도 익숙해져 회사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다 보니 연봉도 안 오르고,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에 성공했거나 새로 학업을 시작하는 대학동기 얘기를 들으면 이대로 한 회사만 다니고 있는 제가 뒤처지는 기분이 듭니다. 주변에서는 너도 어서 이직을 해라, 지금이라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 하고요. 저는 취미도 딱히 없고, 결혼도 아직 먼 얘기로만 들립니다. 일상은 무료한데 미래나 노후를 생각하면 불안하기만 하네요. 진짜 이직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인지, 남들은 어떻게 준비하는지 궁금합니다.

A. 맹목적 이직은 금물, 새로운 동기 찾아보세요

요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30대 중에는 치열한 스펙 전쟁을 뚫고 취업한 후에도 직장에서 안정을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더 성취해야 한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에서 직장인 10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입사 후 3년 이내 ‘무기력증, 출근 거부감, 업무 스트레스’ 등 ‘직장 사춘기’를 겪는 경우가 95.4%에 이른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신입 사원이 겪는다는 이야기지요.

저는 이렇게 ‘직장 사춘기’를 겪는 신입사원 후배들을 만나면, 우선 무언가를 계속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라고 이야기해줍니다. 더 공부를 하고, 또 무언가를 배우고 성취하는 일은 분명 앞날을 위한 준비로는 멋진 일입니다. 하지만 방향이 없는 노력은 그 결실을 맺기 어려운 법입니다. 바다로 나가는 배를 띄우기 전에, 방향키를 잡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니까요.

이직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물으셨는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단순히 ‘이 직업, 이 직장이 아닌 다른 곳’을 생각한다면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혜민씨는 지금 하는 일 말고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혹은 새로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지요? 저의 이 질문에 답을 떠올릴 수 없다면, 저는 혜민씨의 이직 준비에 반대하고 싶습니다.

이직이란 어떤 정해진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던 일을 통해 소개나 추천을 받아 동종업계로 이직하기도 하고, 또는 회사 사정상 자연스럽게 다른 회사로 합병되거나 인수되는 경우도 있지요. 또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는 경우는 해당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른 조직에 소속되어 일을 이어나가기도 합니다. 물론 공부나 전문 자격증 취득을 통해 전혀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는 일도 있습니다.

막연한 ‘이직’이 아닌, ‘어떤 이직’을 할 수 있는지를 혜민씨 스스로 따져보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하는 일과 비슷한 일을 하고 싶은지, 혹은 직무가 달라지더라도 동종업계에서 일하고 싶은지, 그것도 아니라면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분야가 있는지를요. 이 답은 누구도 대신 골라줄 수 없답니다.

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은 반드시 이직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혜민씨에게는 ‘일하는 나’로서의 새로운 동기를 찾아낼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동기는 반드시 직장 안에서 찾지 않아도 됩니다. 현재 생활이 무료하면서 동시에 불안하다면, 이는 일-생활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흔히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고들 하는데, 퇴근 후의 삶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일하는 시간 역시 의미 있게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혜민씨는 취미가 없다고 했는데, 평소 좋아하던 일이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일이 있었다면 그것을 찾아 취미로 발전시켜 보는 것은 어떨까요?

혹은 직장 내에서 새로운 동기를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조직 내에서 혜민씨의 역할을 스스로 달리 설정해보세요. 입사 5년차라면, 혜민씨는 이제 교육이 필요한 새내기를 벗어나 업무나 역량으로써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일 확률이 큽니다. 개인의 역량이 곧 팀의 역량으로 이어지는 중추적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는 얘기죠.

저는 혜민씨에게 여성 중간관리자로서의 준비를 시작하라 권하고 싶습니다. 회사 내·외부의 여성 사원 또는 중간관리자들과 네트워킹을 하거나, 이게 너무 거창하다면 주변의 일하는 여성 친구들과의 모임을 만들어 보세요. 자기계발, 회사 내 유리천장 문제 다루기, 기업공헌(CSR) 등을 주제로 모임을 하다보면, 객관적으로 조직 내에서의 나의 위치를 점검하고 자연스레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한 맵도 그려질 것입니다. 우선 차분하게 주변을 탐색해보고, 혜민씨만의 방향을 정해보세요. 목적지가 정해지면, 이제 그곳으로 가는 여정만이 남아있을 테니까요.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