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호 위안부 정의 연합 사무국장

샌프란시스코 기림비 건립과

교과에 위안부 포함 이끌어

 

김미호 위안부 정의 연합 사무국장 ⓒ이정실 사진기자
김미호 위안부 정의 연합 사무국장 ⓒ이정실 사진기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였지만 피해 사실을 알리고 목소리를 내면서 전시 성폭력의 심각성과 인권을 가치를 알린 평화, 인권 운동가입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도 손색 없으시죠. 그런데 할머니들의 활동과 성과를 자랑스러워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할 한국 정부가 오히려 피해자의 목소리를 도외시하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재일교포 3세 김미호(44·사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연합(Comfort Women Justice Coalition·CWJC)’ 사무국장은 영어로 인터뷰를 하다가도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지칭할 땐 어눌할 한국말로 ‘할머니’라고 표현했다. 애정과 존경이 담뿍 담은 그만의 표현일테다.

김 사무국장은 일본 내 재일교포 차별에 문제를 제기하며 인권과 다문화 이슈에 목소리를 내온 인권 운동가다. 재일교포라는 이유만으로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조차 심각한 차별을 겪고 지금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해 인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난 김 사무국장은 일본인들의 극심한 차별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국 국적과 한국식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8살 무렵엔 옆집 아이가 던진 돌에 맞아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재일교포 차별을 피해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고 하고, 한국으로 건너가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재일교포라는 출신은 낙인이 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특히 한국에선 “재일교포니까 월급 덜 줘도 된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김미호 위안부 정의 연합 사무국장 ⓒ이정실 사진기자
김미호 위안부 정의 연합 사무국장 ⓒ이정실 사진기자

차별로 인한 피해 당사자로 차별, 인권에 대한 관심이 키우던 그는 2000년 무렵 미국에 정착해 일본 오키나와의 인권 캠페인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2008년 도표 야요리 마츠이 여성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사무국장은 “일본에서 재일교포로 살면서 일본 식민지 시대 조선인들처럼 살아야 했다”면서 “같은 관점으로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을 보면 전쟁은 끝이 났지만 당시의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지금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이 몸담고 있는 CWJC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군‘위안부’ 이슈를 미국 사회에 알리는데 앞장서는 시민단체다. 지난해 미국 대도시 중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위안부 기림비 건립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킨데 이어 기림비 모금 운동에 착수해 현재까지 30만달러를 모금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중·고등 공립학교 교과과정에 위안부 역사를 포함시키는데 주요 역할을 했다. 샌프란시스코 중·고등 공립학교는 9월부터 학생들에게 위안부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 민감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인이 연대를 통해 인종차별 등 인권 이슈에 한목소리를 내며 대응해왔다”면서 “하지만 위안부 이슈만큼은 진보적인 일본 운동가들도 노골적으로 반대 입장을 말할 정도로 기림비 설립과 교과서 개정에 대한 일본의 방해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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