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단식… 의회민주주의 파괴한다고

야당 삿대질하는 건 설득력 약한 태도

대통령에게 할말 하면서 국회 권능을 지켜야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닷새째 단식중인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 누워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 대표의 체력이 많이 떨어져있는 상황이라며 두통 등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시스·여성신문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닷새째 단식중인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 누워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 대표의 체력이 많이 떨어져있는 상황이라며 두통 등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시스·여성신문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돼 정국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모든 국감 일정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집권여당의 전면적 거부(보이콧)로 국정 감사가 파행을 겪은 것은 1988년 제13대 국회에서 국정감사 제도가 부활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편파적 진행’을 지적하며 의장 사퇴를 요구하는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집권당 대표의 단식 농성도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 대표와 새누리당은 의회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단식하고 투쟁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의회민주주의와 관련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우선 대통령이 집권당 의원들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한 원내 대표를 배신자로 규정해 사퇴시켜 3권 분립의 원칙을 깨고 의회민주주의를 위기로 몰고 갔을 때 왜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나?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비판하면서 단식한 사람이 있었는가?

둘째, 과거 새누리당 출신 국회의장이 야당과 협의 없이 일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후 의사진행을 했을 때 왜 비판하지 않았나. 2010년 아랍에미리트연합 파병동의안 처리 당시 박희태 의장은 야당인 민주당에게 전화와 팩스를 통해 일정을 통보한 후 처리한 적이 있다. 이번에 정 의장은 국회 의사과장을 통해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 수석 부대표에게 차수 변경을 통보한 다음 해임건의안을 처리했다.

새누리당은 “종이 전달이지, 협의가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과거 헌법재판소 판결을 보면 정 의장은 국회법을 위반하지 않았다. 헌재는 “협의의 개념은 의견의 교환·수렴 절차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으며 결정은 종국적으로 국회의장이 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셋째, 의회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국감에 참여하려는 자기 당 소속 국방 위원장을 국감장에 못가도록 사실상 감금시킬 수 있는가. 김영우 국방위원장은 새누리당 국방위원들에게 “의회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양심과 소신이 시키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며 “국감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이 김 위원장을 사실상 감금해 국방위 국감을 무산시켰다. 김 위원장은 “지금 국방위원장실에 갇혀 있다. 이래선 안 된다.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의회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호소했다. 분명 현재 새누리당이 보여주고 있는 과거 야당식 투쟁은 궁색하다. 오죽하면 추미애 더민주 대표가 “정세균 의장에 대한 퇴진 요구는 핑계에 불과하다”며 “이정현 대표의 단식 투쟁은 대통령한테 잘 보이고 싶은 것뿐”이라고 말했겠는가.

논란의 핵심에 있는 정 의장은 한 대학 특강에서 “국회의장이 되면 당적이 없도록 해 중립 의무가 그런 것과 연관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게 아니다” “정치인이 어떻게 정치색이 없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또 “아무 때나 그 색깔을 표현해서는 안 되지만 국가의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소신껏 말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정 의장과 김 위원장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없다. 추석 직전 SBS와 TNS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은 20대 국회가 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19대 국회보다 별반 나아진 게 없다고 응답했다. 19대와 ‘비슷하다’는 응답이 48.3%로 절반에 육박했고, ‘더 못하다고 있다’가 ‘21.2%’였다. ‘더 잘하고 있다’는 대답은 17.5% 불과했다. ‘더 못하고 있다’는 응답자 가운데 34.1%는 새누리당의 잘못이, 31.6%는 더민주 잘못이 크다고 응답했다. 여야 모두에게 똑같이 책임을 물었다.

민심이 이런데도 야당이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삿대질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제 이 대표는 명분이 약한 단식을 조속히 끝내고 대통령에게 할말은 하면서 국회의 권능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진정성이 생기고 의회민주주의도 정상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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