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미군기지 건설 반대운동 이어온

일본 오키나와현 나고시 헤노코 주민들

 

‘홍대 여신’ 요조 지지발언 “제주 강정마을 떠올라”

평화와 환경 지키는 ‘착한 여행’ 다녀와보니

 

‘피스&그린보트’ 참가자들이 일본 오키나와현 나고시 헤노코만에 위치한 미군기지 ‘캠프 슈와브’ 앞에서 기지 철폐를 주장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맨앞은 가수 요조씨. ⓒ정희정
‘피스&그린보트’ 참가자들이 일본 오키나와현 나고시 헤노코만에 위치한 미군기지 ‘캠프 슈와브’ 앞에서 기지 철폐를 주장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맨앞은 가수 요조씨. ⓒ정희정

아직도 낮 기온이 30도 이상으로 치솟는 늦더위가 남아 있지만, 완연한 가을입니다. 정말 뜨거웠던 지난 여름, 더위를 피해 떠났지만, 더 뜨겁고 치열한 현장을 방문하게 되었던 제 여름휴가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그 여행에서 만난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여성들 이야기도 함께 들려드리겠습니다.

평화와 환경을 지키기 위한 착한 여행, ‘피스&그린보트’를 아시나요? 일본의 비영리단체 피스보트, 한국의 환경재단이 공동주최하는 피스&그린보트는 한일 양국민 1000여 명이 한배를 타고 여행하면서 어제와 오늘에 대해 공부하고, 평화로운 내일을 위해 토론하는 아주 특별한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7일까지 8박 9일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중국 상하이와 일본 오키나와 등을 여행하며 아름다운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8월 3일, 오키나와 여행은 빼어난 미모로 ‘홍대 여신’이라 불리는 가수 요조와 함께했습니다. 일반적인 오키나와 여행객이라면 일본 최대 규모의 추라우미 수족관이나 문화유산을 구경하고, 아름다운 해변에서 레포츠를 즐겼을 텐데, 우리들이 함께 간 곳은 본섬 북쪽 나고 시의 헤노코 미군기지 건설 반대운동 현장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헤노코 연안에는 세계적인 희귀 어족이자 바다소로 불리는 ‘듀공’이 살고 있으며 멸종위기종인 바다거북의 집단 서식지이기도 합니다.

오키나와에는 미군 기지가 많습니다. 일본 전체 면적에서 오키나와가 차지하는 비율은 ​0.6%인데 비해 전체 미군 기지의 74%가 오키나와에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오키나와 본섬 남쪽에 있는 후텐마 기지는 주택가 인근에 자리 잡고 있어 문제가 많은데다 1995년 미군 병사 3명이 12세 초등학생을 납치해 집단 성폭행하는 사건까지 일어났습니다.

 

일본 오키나와현 나고시 헤노코 해변의 천막 농성장에 미군기지 반대 연좌농성이 4490째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간판이 서 있다. ⓒ정희정
일본 오키나와현 나고시 헤노코 해변의 천막 농성장에 미군기지 반대 연좌농성이 4490째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간판이 서 있다. ⓒ정희정

분노한 오키나와 주민 수만 명이 시위를 하는 등 기지 이전 요구가 거세지자 미일 정부는 기지 반환을 합의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지가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할 것이라는 주민들의 기대와 달리 기지 이전 대상지가 헤노코로 정해졌고, 주민들은 20년 동안 줄곧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올해 봄에도 미국 해병대 출신 군무원이 20세 여성을 성폭행한 뒤 살해해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 벌어져 대규모 규탄 시위가 열리는 등 미군 철수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이라고 합니다. 우리 일행은 헤노코 해안의 천막에서 연좌농성을 하는 주민들과 대화를 나눈 뒤, 미군 부대 앞 도로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도 함께했습니다. 가수 요조는 주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한국인 대표로 지지 발언도 했습니다.

“이곳과 비슷한 문제로 대립중인 한국 제주도의 강정마을이 생각납니다. 저는 서울에서 작은 책방을 하고 있는데, 강정마을 소식지와 동영상 등을 배포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돌아가면 강정마을에 관심 갖는 사람들에게 헤노코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옳은 것을 위해 싸우는 여러분, 평화를 위한 투쟁을 오래오래 응원하겠습니다.”

피스&그린보트는 기항지마다 10여 개의 투어 프로그램을 마련해 승객들이 선택하도록 하는데, 그중에는 일반 관광지를 찾는 코스도 있지만 시위 현장을 찾거나 환경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현지 주민들과 교류하는 등 특별한 코스가 있습니다. 가수 요조는 매번 역동적인 현장을 찾는 프로그램을 선택했습니다. 8월 6일 후쿠오카에서는 강제연행의 역사를 배우고 재일 한국인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에 참여했습니다. 그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세상을 향해 열린 감수성으로 더 좋은 음악들을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재일 한국인들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알리고 토론하는 것은 피스&그린보트에서 빠뜨리지 않는 중요한 프로그램입니다. 8월 2일 선상에서 열린 ‘자이니치로 살아가다’라는 제목의 토크쇼에는 6명의 재일 한국인들이 소수자로서 차별 받으며 살아가면서 깨달은 바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어-일어 통역을 담당하는 4인의 젊은 여성들은 “나의 한국과 일본 : 이 배에서만 할 수 있는 한국인, 일본인, 재일교포 스태프의 리얼한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일본 오키나와현 나고시 헤노코 해변의 농성장 주변에 설치돼 있는 입간판. 주민의 뜻은 기지 건설 반대임을 분명히 알리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정희정
일본 오키나와현 나고시 헤노코 해변의 농성장 주변에 설치돼 있는 입간판. 주민의 뜻은 기지 건설 반대임을 분명히 알리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정희정

분단되기 전 일본으로 건너가 차별 받으면서도 국적을 유지하며 살아가던 재일교포들은 국적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차별을 피하기 위해 일본에 귀화할 것인지 여부도 고민이고, 국적을 유지하더라도 조국이 분단되면서 남한과 북한 중 어느 한 곳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재일교포 3세 김희천 씨는 17세 때 첫 해외여행을 갔는데, 북한이었다고 합니다. 몇 년 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골을 묻어드리려고 할아버지의 고향을 가게 되었는데, 할아버지의 고향이 남한이라 여권을 남한 여권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남북 분단 전의 한반도가 고향이었던 조상 덕분에 일본에서 태어난 내 국적은 한반도였는데, 나라가 갈라지면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면서 “두 나라가 된 조국,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일본, 세 나라 모두 내게 소중하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재일교포 2세이고 어머니는 일본인인 이유향 씨는 고교생 때 일본으로 귀화해 이마모토 유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는 “나와 오빠는 일본으로 귀화를 했지만, 아버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슬퍼하실 것 같다면서 국적을 바꾸지 않으셨다”면서 “나도 대학 입학 후 자이니치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내 정체성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고 국적을 안 바꿔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고 말했습니다.

유카는 대학 때 한국 여행을 와 ‘난타’ 공연을 본 뒤 매료되어 대학 졸업 후 2007년부터 한국에 와서 7년간 살면서 한국어도 배우고 ‘난타’의 여주인공 배우가 되어 무대를 누비기도 했습니다. 통역요원으로 이번 여행에 참여한 그는 바쁜 와중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한일 양국의 승객들에게 언어를 가르쳤는데 “양국인이 서로 상대방의 언어로 인사를 나눌 때 감동했다”면서 “한국인과 일본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내 존재 자체가 그렇듯, 앞으로도 한일 양국을 이어주고 소통시키고 싶다”며 눈빛을 반짝였습니다.

성공한 기업인이자 인권운동가인 재일교포 3세 신숙옥 씨는 우리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절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환호와 혐한 시위대의 폭력이 공존하는 일본 사회에서는 보수 우익들이 교포들이 운영하는 상점에 찾아와 ‘다케시마, 센카쿠 열도는 누구 땅이냐?’는 식으로 행패를 부려 망한 상점이 수백 곳에 이르지만, 여전히 일본의 주류 정치가들은 우익 세력의 입장을 비호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재일교포는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선거를 통해 싸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신 씨는 “일본 사회는 여전히 성숙하지 않다”고 일갈하면서 절망의 끝에서 찾아낸 평화라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축구를 하거나 전쟁을 하면 어느 편을 들 것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곤 합니다. 어느 편을 응원하든 자유일 테지만,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전쟁이 나면 제일 처음으로 죽임을 당하는 존재가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사는 우리는 평화를 만들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차별과 고통을 극복하고 평화와 소통을 위해 힘쓰고 있는 여성들에게서 받은 감동은 지난여름 휴가에서 제가 받은 큰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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