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젠더 이슈가 연일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여성신문은 2030 젊은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사회적 쟁점에 관한 논의의 폭을 넓히고자 ‘나는 남성 페미니스트입니다’ 기획 기고를 싣습니다.

나는 남성 페미니스트입니다 ①

 

Q. 아침에는 어머니, 점심에는 아내. 저녁에는 딸인 것은?

A. 바로 너다. 어려서는 어머니께 기대고, 커서는 아내에게 민폐를 끼치고, 나이 들어서는 딸에게 의지하는구나. 너 남자여.

며칠 전 SNS에서 본 글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남성들만 모르는 성차별을 꼬집는, 뼈 있는 글이다. ‘귀한 장손’으로 자란 나와 우리 아버지, 그리고 다른 수많은 한국 남성들의 삶을 요약하는 글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성차별은 매우 일상적인 것이었다. 할머니는 우리 남매를 모두 예뻐하셨지만, 밥을 먹을 땐 내 앞에만 맛난 고기반찬을 밀어 놓으셨다. 노릇노릇 잘 구운 생선은 뼈를 다 발라서 내 밥그릇에 올려주셨다. 맛이 없는 부위나 남은 부분은 여동생 몫이었다. 가족 중 은수저로 식사하는 사람도 아버지와 나뿐이었다. 여동생은 명절 때마다 부엌으로 불려가 송편을 빚거나 그릇을 날랐다. 나는 아버지 옆에 앉아서 어머니가 깎아 주신 과일을 먹으며 프로야구 경기를 봤다. “나도 TV 볼래요. 오빠랑 바꿀래요”라며 불평하는 여동생에게 할머니는 “그걸 오빠가 하랴!”라며 호통을 치셨다. 

가부장제는 공기와도 같은 것, 아무런 노력 없이도 받을 수 있는 공짜 선물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러한 삶의 방식을 몸소 보여주셨고, 내게 가르치셨다. 가족 누구도 딱히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런 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자주 침묵했고, 내 몫의 선물을 조용히 챙기는 법을 배웠다. 

페미니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평생 그렇게 살았을 것 같다. 지난 5월 강남역 부근에서 일어난 페미사이드 이후 터져 나온 여성들의 외침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그것은 평생 오빠의 그늘에 가려 살아온 내 여동생의 이야기였다. 불공평한 현실을 규탄하고 자신들의 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다가 명예훼손과 위협을 당한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여성들은 부모님이나 학교에선 알려주지 않았던 온갖 불합리와 사회 문제를 폭로했으며, ‘남녀 모두에게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함께 행동하자’고 제안했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수십 년간 외면했던 마음속 불편함과 미안함, 겸연쩍음이 밀려들어 어쩔 줄을 몰랐다. 시대가 변했으니, 늦게나마 나도 변해야만 한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성들의 말을 귀담아듣지조차 않았다. 대신 이런 말들이 나왔다. 관계가 지속될수록 더 멋진 데이트와 선물을 기대하는 여자친구가 피곤하다, 주말엔 쉬고 싶은데 육아와 살림에도 참여하라는 아내의 잔소리가 싫다, 성차별은 머나먼 중동에서나 심각한 문제지, 한국엔 ‘여성 상위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 여성들은 지금껏 남성들 덕분에 여러 혜택을 누리고도 고마워하기는커녕 쓸데없는 페미니즘이나 하고 앉았다, 일부 갈등 조장 세력들의 ‘가짜 페미니즘’에 혹하지 말고 남녀 간 더는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

 

지난 9월 3일 정의당 내 일부 당원들의 모임인 당원비상대책회의에서  서울 시내 곳곳에 내건 현수막 중 일부. ⓒ정의당 당원 게시판 캡처
지난 9월 3일 정의당 내 일부 당원들의 모임인 당원비상대책회의에서 서울 시내 곳곳에 내건 현수막 중 일부. ⓒ정의당 당원 게시판 캡처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많은 남성들은 살면서 여성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여겨 본 경험이 없다. 여성도 인간이며, 남성과 동등한 헌법적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에선 인정하지 않는다. ‘의무’를 다하지 않는 여성을 비난하면서, 엄마가, 애인이, 아내가, 딸이 제공하는 헌신과 희생은 ‘도리’로 치부해 버린다. ‘꽃’이나 ‘여신’, 혹은 ‘몸종’이어야 할 여성들이 분노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들끼리 연대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당황해 어쩔 줄을 모른다. 

남성들의 당혹감은 정치적 성향과 계급적 이해를 초월한 거대한 ‘남성 연합’을 낳았다. 그 아래에서 쑥쑥 자라난 여성혐오는 ‘사회 안정’에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지금 한국은 여자들을 ‘맘충’이라며 인간만도 못한 ‘벌레’로 싸잡아 깔아뭉개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페미니즘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멀쩡한 사람을 갑자기 해고할 수 있는 사회다.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일들이 계속되는데도, 이를 묵인하고 방조하는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사회’다. 

페미니즘이 진정 세상을 바꾸려면 얼마나 많은 남성의 지지와 참여를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라는 말을 들었다.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페미니즘의 바람이 아무리 강하게 불어온들, 남성들이 당장 가부장제가 제공하는 온갖 달콤한 혜택을 거절하기란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남성들은 깨달아야만 한다. 가부장제가 제공하는 혜택은 순간적이며, 이에 집착하는 일은 퇴행일 뿐이다. 세계 꼴찌 수준의 성 불평등 지수는 지금 한국이 얼마나 후진적인 사회인지 보여준다. 이를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성평등 의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무지하고 미성숙한 남성들의 방해와 비협조로 인해 페미니즘의 목소리조차 억압당하는 여기가 ‘헬조선’이다. ‘요즘 페미니즘’이 문제가 아니다. 그걸 문제시하는 남성들, 여성들에게 발언권조차 주지 않으려는 남성들이 진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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